'진중일지'쓴 유정수는 누구인가

세계대전·한국전쟁 모두 경험… 봉건적 사고 벗은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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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서 3남2녀 집안의 장남 출생
의왕 부곡초교 교사 재직중 징집
노트·펜 챙겨 당시 행적들 기록


국민방위군 일기를 쓴 유정수(1925~2010)씨는 3남2녀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쟁통에도 일기를 집필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지식인이었다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전쟁 당시 유씨는 의왕 부곡초등학교(당시 화성군 일왕면)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선린상업학교 전수과(현재의 야간제) 3년을 졸업한 그는 일본에서 발행된 셰익스피어 작품을 통독할 정도로 문학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일본은 명치(1868~1912)·대정(1912~1926)·소화(1926~1989) 등 시기마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번역을 달리했는데, 각 시기의 번역본을 모두 섭렵할 정도였다.

서양작가 중엔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괴테, 도스토옙스키를 즐겨 읽었고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작품도 좋아했다. 일본 작가 중엔 일본 근대문학의 초석을 놓은 나쓰메 소세키,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에 큰 관심을 보였다.

삼국지·서유기·홍루몽 등 중국소설과 홍명희의 임꺽정과 같은 소설도 즐겼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경성 삼립상회의 직원으로 일하던 시기엔 점심 값을 아껴 문고판 서적을 구입할 정도였다.

그가 나고 자란 마을의 분위기도 전쟁 중 일기를 집필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화성시 요당리는 1960년대까지 24호 정도가 모여 있는 소규모 촌락이었는데, 작은 마을에서 15명의 박사 인재를 배출할 정도로 높은 학구열이 있었다고 한다.

1950년 12월 23일 국민방위군 징집에 응한 그는 노트와 펜을 챙겨 자신의 행적을 자세히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의 지식인 면모는 일기 속에도 잘 표현돼 있다.

51년 1월 17일 일기에는 "나는 내가 혹시 전장에 나가 죽는다 하더라도 나의 후계를 잇다는 봉건적 풍습으로해서 양자를 한다거나 하는 것을 싫여한다 인수가 있다 장자건 차자건 따질것 없이 집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면 고만이다 만일 내가 전사한다면 윤수(유씨의 아내)는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는 용감한 길로 나서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새로운 행복을 찾을 이 당연지사요, 신시대에 맞는 사상이다. 허례를 타파하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남존여비의 봉건사상에 매여 있지 않고 자유와 선택을 중요시하는 근현대적 사고가 엿보인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 1970년까지 교사로 근무한 유씨는 이후 과수원을 운영하고 지역활동에 참여하는 등 삶을 이어오다 지난 2010년 숨을 거뒀다. 교사 재직 시절엔 월부로 출판사의 책과 잡지를 구매할 정도로 문학에 관심을 이어갔다.

생전 그는 먼저 국민방위군 경험을 꺼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보다 불과 2~3살이 많은 청년들은 강제징용의 피해를 받았고,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갔던 동년배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국군에 자원 입대를 해야 하는 시대였다.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모두 겪은 그는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행운이라 여겼다고 한다. 유씨의 아들인 유창희 씨는 "아버지는 언제나 긍정적이셨고 무엇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셨던 지식인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진보적인 생각을 말씀하시곤 했다"고 회상했다.

/김태성·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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