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쓸모를 잃어 20년간 방치되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수원 정자동 '111CM'이 개관 1주년을 맞았다. 지난 세월을 단박에 허무는 방식이 아닌 과거 모습에서 새 옷을 서서히 입혀가는 '리자인(recycle+design)' 방식을 택해서인지 아직 '핫플'의 수식어는 얻지 못했다. 다만 오간 이들의 뒷맛을 자극하는 역할 하나는 하고 있다. 관람객의 입에서 알음알음 퍼진 소문 덕에 이곳을 향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은근하게 쌓이고 있다.

■ '어제 본 하루 중에서'… 담배공장으로 쓰이던 당시 공간을 지금과 연결 짓다
일상의 모습과 주변의 이야기를 조각으로 표현하는 작가 양정욱의 '어제 본 하루 중에서'가 111CM 개관 1주년을 기념해 내년 2월 19일까지 열린다.
작가는 과거 담배공장으로 쓰이던 111CM의 '장소성'에 주목했다. 당시 이곳에서의 노동은 어땠을까. 작가가 어렴풋하게 그렸던 그때의 모습은 담배공장의 기록물을 담은 111CM의 앞선 전시('THE 담배공장' 사진전)를 보면서 구체화됐다. 당시 노동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일터에 나섰고, 일과 삶의 균형은 찾을 수 있었는지. 또 반복되는 노동에서 여기 모인 사람들이 이야기꽃을 피워 밥벌이의 지겨움을 떨쳐냈는지, 그림에 비춰 떠올려봤다. 작가는 이 같은 궁금증을 나무와 실, 모터 등을 재료 삼아 움직이는 형태의 조각으로 표현했다.

'균형에 대하여', '같은 마음으로', '기억하려 하는 사람의 그림', '서서 일하는 사람들', '구름에서' 등 총 9점의 움직이는 조각과 그림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작가가 전시장 벽 곳곳에 작품으로 못다한 이야기를 글로 남긴 게 인상적이다. 양 작가는 "거대하지만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골조나 다양한 사람들의 동선을 떠올리면서, 지금은 헛헛하지만 당시 크고 분주했을 무엇인가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 수원 예술인의 정체성 담은 미술 장터 '111CM 씨티 아트마켓'
수원에 터 잡고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 44인이 한데 모였다. 수원문화재단이 지난 13일부터 111CM에서 수원 예술인들의 미술 장터 '111 씨티 아트마켓'을 열고 그들의 회화·조각·미디어 등 작품 150여 점을 전시, 판매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지역 예술계에서 민관 협력 거버넌스의 가능성을 찾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기획 초기 단계에서부터 미술협회 수원지부, 민족미술인협회 수원지부와 문화재단이 머리를 맞대 행사를 구상했다. 권용택, 송태화, 조민아 등 수원의 정체성과 지역 예술의 흐름을 이끄는 이들의 작품도 볼 수 있다. 김현광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수원에서 활발히 창작 활동을 펼치는 예술인들이 모인 전시"라며 "코로나19로 예술 환경이 위축됐는데, 이번 아트마켓이 작가들간 교류를 늘리고 예술활동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장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25일까지 진행된다.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