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괭이부리말 아이들' 곁을 '물결치는대로' 걸어보았어

입력 2023-11-22 13:21 수정 2023-11-23 17:15
스튜디오MF, 지도없이 걸은 만석동
이름과 달랐던 비치타운아파트 인상
공장·판잣집 벽면 모습 작품 녹여내
만석동 위치 우리미술관서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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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만석동 '우리미술관' 공모 전시 '물결치는대로' 전시장 모습.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김중미 장편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 배경으로 유명한 인천 동구 만석동에서 수개월 동안 '표류'한 경험을 표현한 청년 작가들의 전시가 인천문화재단 우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인하대학교 조형예술학과 대학원생들이 뭉친 '스튜디오 MF'(유지수·윤지호·이행진·정찬웅·최서윤·추상민·황윤서)의 '물결치는대로'는 작가들이 탐구한 만석동이란 공간을 각자의 프리즘에 투과해 재구성한 결과물들이다. 작가들은 지난 5~6월 일부러 지도를 보지 않고 만석동 골목 곳곳을 목적지 없이 돌아다녔다. 이후 지난여름부터 작업에 돌입해 회화와 미디어아트 등 20여점을 선보였다.

작가 대다수는 만석동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황윤서는 만석비치타운 아파트 이름만을 보고 '바닷가 마을(비치 타운)'을 상상했다가 실제로 만석동에 도착했을 때 받은 인상을 바탕으로 '만석비치타운'이란 제목의 작품을 그렸다. 이 작품은 만석동 공장지대 도로를 지나는 대형 트럭과 매연이 낀 삭막한 풍경에, "여기 바다가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서핑보드를 든 인물을 모순적이지만 유쾌하게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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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만석동 '우리미술관' 공모 전시 '물결치는대로'에 전시된 황윤서의 작품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추상민은 만석동 공장과 판자촌의 틈새를 집중적으로 탐구해 느리게라도 조금씩 변화하는 풍경을 돋보기로 보듯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추상민은 멀리서 바라보면 알아보기 어려운 공장과 판잣집 벽면의 질감과 무늬, 불규칙한 선과 점들에 관심을 가졌다. 이행진은 어디에나 있는 익숙한 플라스틱 놀이터 풍경에 주목해 이곳이 그리 낯선 공간은 아님을, '표류'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의 텅 빈 공간을 묘사한 최서윤은 가깝고도 먼 이웃과의 물리적·심정적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정찬웅은 만석동에서 만난 식물의 질긴 생명력에 이끌림을 느껴 '불모지'와 '만석' 등 작품에 담았다. 윤지호는 무신경하게 쌓여 쓰임을 기다리는 목재 더미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자신('a')을 발견하는 미디어아트를 전시했다. 갈피를 잡지 못해 헤매고 있는 익명의 'a'가 누구나 될 수 있음을 함께 설치한 거울을 통해 경험하도록 했다. 전시장 중앙 바닥에는 작가들이 만석동에서 표류하며 못다 표현한 각종 스케치와 아이디어 노트 등이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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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민 作, Vernacular Space 025, 2023, 캔버스 위에 오일, 72.7×72.7㎝

이번 전시를 기획한 유지수는 만석동을 꾸준히 기록해왔다. 이번 전시를 일종의 '표류기'로 지칭했다. 유지수는 "물결치는 대로 정처 없이 흘러가는 표류는 일시적이며 주관적이고 감각적으로 도시를 바라보는 방법"이라며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목적지도 없이 만석동을 표류했다. 물리적으로 동일한 공간이지만, 어떤 대상에 이입할 것인가, 어떤 관계로 개입할 것인가에 따라 개인 주체의 새로운 장소로 변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2023 우리미술관 전시 공모'에 선정된 기획이다. 우리미술관은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쪽방촌(동구 화도진로 192번길 3-11)에 있다. 인천 동구가 인천문화재단에 운영을 맡긴 작은미술관이다. 미술관 주변을 거닐며 관람객 자신의 프리즘에 투과된 만석동의 모습을 보는 것도 좋겠다. 이번 전시는 이달 26일까지 열린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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