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방치되고 폐쇄된 세월호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1)]

강산은 변했는데 세월은 그대로다
입력 2024-04-14 20:19 수정 2024-06-14 10:28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4-15 1면

치우지 못하고, 치유도 못한 '악몽의 10년'

 

겨우 뭍으로 건져 올린 선체… 목포신항에 있지만 펜스에 가려져
본래 하얗고 파랗던 빛 잃고 잔뜩 녹슬어 성한 곳 하나 없는 모습
'잊지 않겠다' '돌아와라'… 은색 철창 마디마디 노란리본 그대로
안전 이유로 내부 출입 금지… 추모할 수 있는 공간 부재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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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4월16일, 꽃피우지 못한 이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는 사망 299명, 미수습자 5명을 비롯한 많은 사상자를 내며 유가족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10년 뒤 가족들은 아직 그 바다에 있지만, 세월호 선체는 우리와 떨어져 목포신항 한 편에 녹슨 채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2024.4.9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그 바다에 아직 배가 있다. 배는 더이상 바다로 나아갈 수 없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다. 아직 그 배를 끌어안고 사는 가족이 그 바다에 있다. 도시에도 아직 배가 있다. 봄이 되면 생각나는, 모두의 마음 속 그 배가 여전히 그 도시를 부유한다.

그렇게 10년이다. 엊그제 일처럼 생생한 그 장면들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그날 출항하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구해냈더라면, 그래서 살렸다면, 그간의 4월은 모두에게 흩날리는 벚꽃인양 내내 아름다웠을 것이다.

10년 동안 끊임없이 잊으라고 채근했다. 잊지 않는 마음을 오해하고 모독하기도 했다. 잊고 싶지 않아서 잊지 않는 게 아니다. 잊히지 않아서 잊지 못한다. 가족은 더 그렇고, 친구도 그러하고, 동시대를 사는 우리도 그러하다.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은 잊지 않는 것이다.

기억하면서 추모하고, 추모하면서 일상을 무사히 지내는 것이다. 우리의 기획은 세월호 참사 그리고 '추모'에 대한 지난 10년을 반추하며 추모와 일상이 어우러질 때, 우리의 안전이 보장된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 관련기사 3면(진도항 '팽목기억관' 지키는 유가족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1)])편집자 주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됐다. 3년이 지나고 세월호는 겨우 뭍으로 건져올려졌다. 그리고 지금은 목포신항에 있다.

지난 8일 저녁 9시께, 목포신항에서 장희윤(26)씨를 만났다. 희윤씨는 봄이 되면 목포신항을 꼭 찾는다고 했다. 7년째 목포신항에 있는 세월호를 보기 위해서다. 이날 저녁에도 희윤씨는 어머니, 동생과 함께 세월호 거치현장을 찾았다. 노란 리본이 둘러진 펜스 틈새로 세월호를 바라보았다.

 


세월호 참사가 있던 그 해에 희윤씨도 고등학생이었다. 사고현장과 가까운 목포에 살고 있어 유독 마음이 좋지 않았다. 가까스로 건져올려진 배가 목포신항으로 오고 나서는, 수년째 세월호를 보러 왔다. 하지만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올 때마다 세월호가 펜스안에 갇힌 채 방치되고 있다는 생각만 들었다.



희윤씨와 함께 세월호 거치현장을 둘러보았다. 밤인데다, 2m는 족히 되는 철창에 가려져 세월호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희윤씨 말마따나 철창 그 틈새로 겨우 세월호를 볼 수밖에 없었다. 어둠 속에서 세월호는 적갈색을 띠고 있었다. 은색 철창 마디마다 걸린 노란리본은 바닷바람에 삭을대로 삭아 갈색빛이 됐다. 그래도 '잊지않겠다', '돌아와라' 문구는 변치않고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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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4월16일, 꽃피우지 못한 이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는 사망 299명, 미수습자 5명을 비롯한 많은 사상자를 내며 유가족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10년 뒤 가족들은 아직 그 바다에 있지만, 세월호 선체는 우리와 떨어져 목포신항 한 편에 녹슨 채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2024.4.9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다음날인 9일 오전 10시께, 다시 세월호 거치현장을 찾았다. 철창 문을 지나 펜스를 넘어서 세월호와 마주했다. 지난 밤에 봤던 적갈색 빛은 녹이었다. 녹이 잔뜩 슨 세월호는 하얗고 파랗던 본연의 색을 잃었다. 선수에 찢어진 'SEWOL' 글자도 노란 철근으로 꿰매놓아 간신히 봉합해두었다.

세월호 오른편엔 사고 이후 파손된 부분을 흰 철판으로 덧대놓았다. 여러 곳을 손보긴 했지만 세월호는 성한 곳 하나 없었다. 여전히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고, 선미는 따개비들로 가득 덮여있었다. 사람의 출입은 삼엄하게 막아놓았지만, 뚫린 구멍들 사이로 둥지를 튼 갈매기들은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지난 2017년 목포신항에 거치된 이후 세월호는 폐쇄적으로 방치되고 있었다. 세월호를 둘러싸고 이중 철창이 설치됐고, 세월호 주변에는 내부에서 수거한 잔해들을 곳곳에 쌓아두어 물건을 적재해둔 고물상 같았다. 잔해들은 세월호만큼 녹이 슬었고 빗물도 잔뜩 고여 있었다. 찌그러진 자동차도 그물에 싸인 채 그대로 방치됐다.

현재 거치현장에 출입하기 위해선 사전에 출입 신청을 해야하고 사진 촬영도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안전상의 이유로 유가족들의 선체 내부 출입도 금지된 상황이다.

희윤씨는 "너무 방치된 게 아닌가 싶어 마음이 쓰여 계속 오고있다"며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사람들이 편하게 기도할 수 있는 공간, 10년 간의 세월호를 설명해주는 공간, 아니라면 최소한 편하게 다가가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폐쇄와 방치. 목포신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고, 그래서 유가족이 지키고 있는 진도항(옛 팽목항)의 '4·16팽목기억관'도 마찬가지다.

/고건·이영선·이영지기자 zero@kyeongin.com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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