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음대에서 가야금을 전공하며 황병기 음악에 푹 빠져 있었던 윤중강은 1985년, 스물다섯 나이에 제1회 객석예술평론가상을 수상하면서 국악계 최초의 '공인 평론가'로 등단한다. 당시의 국악 평론은 '수제천은 어떻고 산조는 어떻고' 하며 과거를 논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지만, 윤중강은 자신의 '연구대상 1호'로 황병기를 선택했다. 두루뭉술한 한국음악론이 아닌, 특정 작품에 대한 심도있는 비평은 국악계의 '환기'를 넘어 '발전'을 예고했다. 윤중강의 '튀는' 첫 걸음에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는 기성 국악인들도 꽤 있었다. 그 곱지않은 시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마냥 움츠려 있을 순 없었다. 월간 객석 2004년 7월호-박용완 기자의 '그에게 국악을 묻다' 중에서
지난 5월 선을 보인 국립부산국악원의 첫 창작기획공연인 '부산 아라'의 영문 제목은 'Welcome to POT land'이다.
솥은 물과 불이 있어야 제 기능을 하는 음양의 조화를 의미한다. 바다를 끼고 있으면서도 그 이름에 산이 들어가 있는 부산(釜山)을 솥으로 풀어낸 '부산아라'는 지명 이야기를 소리와 춤, 음악과 전통연희에 함께 담아낸 총체극이다.
지명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전통 공연의 각 장르를 단순히 한데 모아 종합선물세트로 구성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철학과 스토리텔링을 담았다.
'부산아라'의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윤중강씨는 "동양의 오방사상, 음양사상, 효와 같은 한국인의 철학과 기본적인 심성을 담아내려 했다"며 "이를 주인공인 아라가 아버지를 위해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당시 부산시민을 대상으로 첫 선을 보인 '부산아라'는 작품성과 함께 흥행에도 성공하며 5월 초연에 이어 6~8월에는 매달 둘째·넷째 주말에 상설 공연으로 부산시민과 만났다.
올해 초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로 선정된 윤씨는 이곳을 기반으로 집필과 방송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부산의 '부산아라'와 같은 인천의 정체성을 띤 무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도 착수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윤씨와 만나 인천에서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아트플랫폼이 들어선 이 공간은 어릴적 축구도 하고 뛰어놀던 추억이 있는 곳"이라며 "만 50세가 넘어 옛 기억을 떠올리며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 인천과 국악이 이어진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윤씨는 인천 중구 경동에서 태어났으며, 그가 태어난 집에는 여전히 어머니가 살고 계신다. 또한 고교까지 인천에서 다니고 서울대에서 공부를 하면서 활동 무대가 서울로 바뀌었지만, 그는 2002년까진 경동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했다.
"개항지였던 1900년대 전반기 인천은 서울보다 번화했으며, 유동인구도 많은 곳이었죠. 제가 경험한 것과 조부모님과 부모님에게 들은 것 등 당시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아요. 그중 1930~1940년대 용동 권번을 중심으로 인천 구시가지를 배경으로 한 기생(장일타홍 예정)을 중심으로 그의 삶과 예술을 녹여낸 무대극을 준비중입니다."
일제강점기의 지역 자료들과 유성기 음반을 바탕으로 근거있는 상상력을 동원해 팩션(Faction)의 무대극을 완성하겠다는 것.
그는 "과거의 복고 취향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칙릿(Chick-Lit) 경향을 띤 '인천, 여성, 스토리'를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내년께 공연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 작업과 함께 윤씨는 지난해 조직한 '만요(漫謠)컴퍼니'와 인천 배경의 만요극을 만들 계획도 갖고 있다.
국악방송에서 일제강점기의 가요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그는 국악계와 뮤지컬계 등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젊은이들과 '만요컴퍼니'를 조직해 1930년대의 만요를 무대에서 재연한 바 있다.
윤씨는 "일제강점기의 노래들은 직·간접적으로 인천과 연관된 작품들이 많으며, 만요컴퍼니와의 지난 공연 등을 참조해 차이나타운이 배경이 된 만요극을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작가 소개
윤중강은 서울대 국악과와 일본 국립 동경예술대학 대학원 음악연구과를 졸업했다. 평론집으로 '국악이 내게로 왔다' '국악이 바뀌고 있다' '국악을 방송에 담다' 등 5권이 있다. 제1회 객석예술평론상(1985년)을 받으며 음악평론가로 데뷔했고, KBS 국악대상에서 출판미디어상 및 대상(2004년)을 받았다. 국악FM방송에서 '꿈꾸는 아리랑'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공연기획자, 방송진행자, 음악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김영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