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전 갑오년 돌이켜보면
동학난·청일전쟁·갑오경장 등
수난과 치욕, 변혁의 해
오늘날 얼마나 다르겠는가…
진정한 삶의 공동체 위해
성찰 통한 지혜들을 모으자

 
▲ 방민호 서울대 교수
새해다. 갑오년이다. 이 뜻깊은 갑년을 맞아 120년 전의 갑오년을 돌이켜 생각해 본다. 120년전 갑오년은 수난과 치욕과 변혁의 해였다. 그 해를 오늘날 우리는 동학난과 청일전쟁과 갑오경장으로 기억한다.

그 시대에 농민들, 민초들은 봉건적 관리들의 탐학에 시달리고 있었다. 멸망을 앞둔 왕조의 수발들은 예지력이 없었다. 고부군수 조병갑이 그런 사람의 하나였다. 황무지를 개간하는 농민들에게 면세를 약속해 놓고도 강제로 세금을 징수했다. 고을 백성들을 갖가지 죄목으로 붙잡아들여 재물을 강탈했다. 불효했다느니 음행을 했다느니 하는 이유였다. 자기 아버지의 공덕비를 세운다고 돈을 거둬들이고 동진강에 세운 보를 빌미 삼아 농민들에게 감당키 어려운 수세를 강요했다.

나라가 어지럽고 관리들이 학정을 일삼으면 난리가 나는 법이다. 동학 접주 전봉준이 장두로 나섰다. 옛날에 난리가 나면 장두는 반드시 죽어야 했으니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싸움이었다. 전봉준을 위시한 동학난의 장두들은 창의문을 써서 난을 일으키는 뜻을 밝혔다. 첫째, 사람을 죽이거나 재물을 상하게 하지 말 것 둘째, 충효를 다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할 것 셋째, 일본 오랑캐를 내쫓아 성스러운 도를 밝힐 것 넷째, 군사를 일으키고 서울로 가 권귀들을 모두 죽일 것 등이 그것이다.

황토현 싸움에서 이겨 기세를 올렸고 전주에 무혈입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해 말에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에게 대패하고 전봉준이 끝내 관군에게 붙들리면서 난리는 비극적인 결말을 고하게 된다.

동학난의 갑오년은 청일전쟁의 갑오년이기도 하다. 허약한 왕조가 난리를 평정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를 청하자 톈진조약에 따라 일본군이 국내에 진주하게 된다. 일본은 치밀한 계산 아래 조선에 대한 관할권을 획득하기 위한 전쟁을 일으켰고, 이 전쟁은 아산 앞바다 풍도, 성환, 평양 등을 무대로 일본의 연승, 청나라의 패배로 이어졌다.

일본은 청나라와 싸우는 한편으로 갑오경장으로 '일본식' 근대 개혁을 단행하고, 동학농민운동을 분쇄함으로써 조선 지배의 첫발을 내디뎠다. 갑오경장은 일본의 영향력 아래 단행된 근대식 개혁으로서 신분 타파, 노비제 폐지, 조혼 금지, 과부의 개가 허용, 청나라와의 불평등 관계 청산과 같은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으나, 이것은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이니셔티브를 공준하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오늘 그 길었던 갑오년의 나날들을 상상해 본다. 초겨울부터 그해가 끝날 때까지 숨가쁜 나날을 보내던 전봉준을 생각해 본다. 학정에 시달리다 난리에 뛰어들고 죽고 다치고 쫓기고 죽던 백성들을 생각해 본다. 무너져 가는 왕조체제를 떠받치던 인간 군상들과 나라의 운명에 관해서는 한 치 앞도 알거나 읽지 못하면서 오로지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던 탐관오리들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풍전등화처럼 위태롭게 팔랑거리던 나라의 운명을 생각해 본다.

1884년의 갑신정변에서 우리 스스로 위로부터의 변혁을 이루지 못하고, 1894년 갑오년에 아래로부터의 변혁의 흐름을 외세를 불러들여 압살한 왕조는,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마자 파국에서 벗어날 수 없이 되고 말았다.

120년 전 갑오년과 오늘의 갑오년은 얼마나 다른 것이겠는지 생각해 본다. 일본은 다시 군국주의 우파가 득세해서 남수단에서 우리 군대에 총알을 나눠주자마자 야스쿠니 참배를 하고 평화헌법을 무효화하는 수순에 들어섰다. 중국은 또 얼마나 무서운가. 독도도, 이어도도, 이웃 나라들은 우리 것이 아닌 양 멋대로 행동하고 있다.

나라 안은 어떠냐 하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코레일 사태는 이제 겨우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다른 정치적인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큰 지혜가 필요한데 위력이 넘쳐나고, 공유가 필요한 시점에 일방주의밖에 보이지 않는다.

성찰. 성찰이 있어야 한다. 남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주위를 넓게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어찌 이유가 하나뿐이겠는가. 어찌 원인이 그것뿐이겠는가. 우리가 저마다 어느 하나의 논리에 얽매여 있는 동안 진정한 삶의 공동체가 되어야 할 이 나라가 어지럽고 위태롭게 된다.

새로운 해가 떴다. 새해다. 갑오년이다. 새로운 변화를 기약해야 할 새 날이 열리고 있다. 아무리 어려운 일들이 중첩해 있어도 내일은 오늘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그러기 위해 우리의 남은 지혜들을 모으자.

/방민호 서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