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음악, 인간으로 가는 문

윤진현

발행일 2016-10-03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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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에 만들어지는 '음악도시'
특정 장르나 몇몇 사람들의
복안에 의지할게 아니라
저마다 꿈·희망 모으는 과정 필요
소원은 남이 이뤄줄순 없기에…
음악과 인간 어우러진 공간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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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올초 재개봉했던 1994년 영화 '쇼생크 탈출'은 현실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다시 보게 되는 영화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앤디는 짓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면서도 감옥 환경을 개선하고자 자신의 능력을 다해 교도소장을 위해 일한다. 그러나 교도소장은 앤디의 무죄를 알고도 정의를 외면해 결국 앤디는 감옥을 탈출하고 교도소장의 죄상을 폭로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동아시아의 적강신화(謫降神話)나 '구운몽'처럼 '몽'자로 끝나는 설화와 비슷한 구조이다. 어떤 신선이 천상에서 죄를 짓거나 억울한 모함을 받아 지상으로 쫓겨났다. 신선은 지상에서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이를 이겨내고 한층 더 성숙한 존재가 되어 천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기본 모티브이다. 이같은 구조를 염두에 두고 보면 외딴 바닷가에서 낡은 보트를 수리하고 있는 앤디와 그 너머로 펼쳐지는 짙푸른 태평양이 우리가 돌아가고 싶은 본향인 셈이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을 때 떠오르는 로망의 장소인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러한 설화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자신을 잘 모르던 주인공이 꿈이나 도인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내력을 이해하는 순간이다. 고통에 휘둘리던 존재가 고통을 넘어서는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도 같은 장면이 있다. 바로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3막에 등장하는 백작부인과 수잔나의 '편지이중창 - 저녁 산들바람은 불고'가 울려퍼지는 장면이다. 오페라에서 이 노래는 백작부인 로지나의 결단을 보여준다. 자신의 시녀 수잔나를 넘보는 남편 알마비바 백작의 바람기를 잡으려고 로지나는 여러 방법을 쓰지만 실패하고 결국 자신이 직접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로지나는 스스로 수잔나로 변장하고 남편이 외도하는 현장을 잡으려고 수잔나에게 편지를 쓰게 한다. 저녁 산들바람이 불면 정원 구석의 나무 그늘로 오라는 것이다. 이 노래는 여성이중창으로는 첫손에 꼽을 만큼 부드럽고 아름다운 선율이 일품이다. 그런 노래 속에 그렇게 비장한 결심과 술책이 들어있다니 얼핏 생각하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귀족계급과 대결하며 새로이 부상하는 시민계급의 일원이었던 모차르트는 그녀들의 음모보다 그녀들의 결단력을 더 강조하고 예찬했던 듯하다.

더욱이 '쇼생크 탈출'에서 이 노래는 남자 죄수들만 가득한 쇼생크 감옥에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는 조합만으로도 시청각적인 균형이 절묘하다. 아울러 교도소장과 간수의 이익에 헌신하면서 타협적인 성과에 만족하던 앤디가 그들을 거역하고 볼륨을 높이는 천진한 저항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객은 그 아름다움에 저절로 공감하며 로지나의 음모만큼이나 앤디의 이후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음악은 바로 이런 것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현실을 인정해 복종하면서 타협하던 죄수 앤디에게서 좋은 것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 앤디를 끌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음악이다. 음악은 위안이거나 유혹이거나 심지어 단순한 속임수일 때도 언제나 인간 그 자체에 말을 건다. 죄수뿐인가, 노동자거나 사용자거나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음악을 듣는 순간에는 자신 안의 존엄한 인간을 만나는 것이다. 영화는 당연히 이 장면 이후로 역학이 변한다. 포기를 모르는 앤디의 자유의지는 아무도 제거할 수 없는 앤디 머릿속의 모차르트만큼 자명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희망과 같다. 저마다 좋아하는 음악이 다를 수는 있지만 음악을 들을 때는 누구나 누추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 안에 있는 인간을, 존엄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인천 부평에 음악도시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허다한 사람을 흥분하게 할 만한 좋은 소식이다. 정말 멋진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특정 장르나 몇몇 사람의 복안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꿈과 희망을 모으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나의 꿈을 남이 대신 꾸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부디 음악과 함께 인간이 울려퍼지는 멋진 도시가 되기를 간절히 빈다.

/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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