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기 안 먹는 이유중 하나는
어떤 음식에선 죽음 떠올리기 때문
"참 힘들겠다"고 할때 난 생각한다
힘든건 고기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사람들은 함부로 먹고 재단한다
박소란 시인 |
우선, 본의 아니게 타인에게 불편을 끼칠 때. 내가 끼면 그만큼 메뉴 선택의 폭이 좁아지니까. 대부분의 회식이 '고깃집 아니면 횟집'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동료들은 종종 나로 인해 한 가지 선택안을 잃게 된다. 엉거주춤 "삼겹살보다는 회가 낫겠죠…?" 할 때면 왠지 크나큰 민폐덩어리가 된 기분이다. 그러나 자신하건대 나는 매우 원만한 채식주의자다. (엄밀히 말해 채식을 지향하되, 그것을 내세워 주장하는 '-주의자'는 아닌 셈이다.) 필요한 경우 고깃집에서의 식사도 서슴지 않는다. 된장찌개와 공깃밥 한 그릇을 뚝딱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서 자진해 고기를 구워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는 되도록 미안해하지 않기로 한다. 우리 모두에게 기호라는 게 있듯이, 누군가는 매운맛을 싫어하고 누군가는 향신료를 원치 않듯이, 남들처럼 나도 그저 하나의 사소한 그러나 소중한 기호를 가졌을 뿐이다. 술을 마시지 않는 친구에게 억지로 술을 권하지 않는 나는 친구에게 고기를 강요당하지 않을 정도의 배려와 존중을 바란다.
뭐니 뭐니 해도 채식을 하며 가장 힘든 것은 처음 누군가를 만나 "저는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라고 밝혀야 할 때다. 이후 사람들이 보이는 각각의 반응을 맞닥뜨려야 할 때. 채식주의라는 것이 더 이상 특이한 취향이 아님에도, 여전히 신기하게 보는 이들이 많다. 아무래도 우리는 '평범'에서 벗어난 것을 받아들이는 데 아직 서툴고 인색하므로. 보통은 이런 식의 흔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언제부터 고기를 안 먹었어요?" "한 4년 전부터요" "아니, 왜요?" "여러 가지 이유로…" 모호한 대답 탓인지, 대체로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그리고 더 나아간다. "그 이유라는 게 대체 뭔데요?"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나는 되도록 상식적인 수준의 답을 제출한다. 사람들이 쉽게 납득할 만한 이야기를 고르는 것이다. "공장식 축산에 반대해서요" 공장식 축산? 상대는 눈을 부릅뜬다. "그렇담 우유나 계란도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꾸중 섞인 일침이 날아온다. 마치 내가 어떤 질서나 규칙을 그르치기라도 했다는 태도다. "생명을 해치는 게 싫어서요"하고 말한다면? 곧장 "가지도 오이도 생명이에요"하는 말이 돌아온다. "소나 돼지는 안 먹는다면서 고등어는 먹어요? 너무 모순이다"하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이런 식의 날선 대화를 반복하다 보면 차라리 내가 고집하는 것이 채식이 아니라 편식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싶다. 그렇다면 "에그, 초딩 입맛!" 정도로 끝나지 않을까.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데에는 정말이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우선은 때때로 어떤 음식 앞에서 죽음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고 난 후의 일이다.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는 것들이 종종 시체로 다가오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아무래도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다. 설명할 이유가 없는 것이기도 하다. 매 순간 타인에게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납득시키는 일을 나는 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 어떤 취향을 고집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란 당장 이해하기 힘든 무엇인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말줄임표로 생략되기도 하는 것. 그렇다고 해서 그 취향이 무시되어도 그만인 것은 아니다.
"참 힘들겠어요. 고기를 끊는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힘든 건 고기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사람들은 너무 함부로 먹고 마신다. 그리고 함부로 재단한다.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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