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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최후의 날 비극 간직한 유해. 상체 위의 사각돌은 문설주 받침로 추정된다. /AP=연합뉴스 |
서기 79년 화산 폭발로 잿더미가 된 고대도시 폼페이 최후의 날의 비극을 간직한 유해가 발굴됐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폼페이 당국은 29일 문설주 받침돌로 추정되는 큰 사각형 돌 아래로 삐져 나온 유해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이 유해는 3월부터새로 시작된 폼페이 'V구역' 발굴 과정에서 발견됐다.
3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이 유해의 주인은 화산재를 피해 달아나다 돌에 맞아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가슴 부위 뼈는 으스러진 상태였고 머리는 발견되지않았다.
이 남성은 정강 뼈에 감염 병변이 발견된 점에 비춰볼 때 걷는 데 문제가 있었으며, 이런 이동상의 불편 때문에 화산폭발 초기에 현장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연구원들은 분석하고 있다.
연구원들은 이번 유해를 통해 당시 주민들의 생활상과 질병 등을 파악하고, 화산폭발 당시 공황상태에 빠진 주민들의 대피 상황을 분석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 당시 폼페이를 비롯해 여러개 마을이 화산 재에 묻혔으며 18세기부터 고고학적 발굴이 이어지면서 세계 문화유산 유적지로 등재돼 있다.
/디지털뉴스부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폼페이 당국은 29일 문설주 받침돌로 추정되는 큰 사각형 돌 아래로 삐져 나온 유해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이 유해는 3월부터새로 시작된 폼페이 'V구역' 발굴 과정에서 발견됐다.
3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이 유해의 주인은 화산재를 피해 달아나다 돌에 맞아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가슴 부위 뼈는 으스러진 상태였고 머리는 발견되지않았다.
이 남성은 정강 뼈에 감염 병변이 발견된 점에 비춰볼 때 걷는 데 문제가 있었으며, 이런 이동상의 불편 때문에 화산폭발 초기에 현장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연구원들은 분석하고 있다.
연구원들은 이번 유해를 통해 당시 주민들의 생활상과 질병 등을 파악하고, 화산폭발 당시 공황상태에 빠진 주민들의 대피 상황을 분석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 당시 폼페이를 비롯해 여러개 마을이 화산 재에 묻혔으며 18세기부터 고고학적 발굴이 이어지면서 세계 문화유산 유적지로 등재돼 있다.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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