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32]인천의 '산업역군' 화물차

항만과 내륙 잇는 물류 대동맥… 엔진이 멈추면 경제도 멈춘다

윤설아 기자

발행일 2018-08-30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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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바다이야기 화물차
화물차들이 배에서 내리는 화물을 싣기 위해 인천 신항 선광컨테이너터미널 입구부터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운전기사들 장거리·근거리·시내파 3부류로 나눠
긴 시간 대기·길에서 쪽잠 등 근로조건 악명 높아
지역 화물연대 120대 파업시 컨 처리량 66%로 '뚝'
운송료 현실화·번호판 거래 명의신탁제 폐지 절실


영업용 화물차 3만대 불구 주차장 3700여면에 그쳐
환황해권 물류 중심 도약 앞두고 인프라 확충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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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도로 위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화물차가 인천에서 모두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우선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배 안의 수입 화물들이 갈 곳을 잃고 적치돼 야적장부터 마비될 것이다.

인천의 철강, 제조, 목재, 자동차 업체는 물론 전국에 화물을 수입·수출하는 업체들은 영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텅 빈 고속도로만큼 마트·시장은 텅텅 비고, 매대 위 물건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를지 모른다.

그야말로 '물류 쇼크'다. 화물차는 대한민국 물류 대동맥을 잇는 핏줄이나 다름없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화물차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필요한 화물을 필요한 곳에 나르고 있다.

2000년대 들어 화물차는 환경, 안전 문제가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며 애물단지 취급을 받지만, 대한민국 그리고 인천의 경제 성장에 빼놓을 수 없는 '산업 역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27일 오전 11시께 인천 중구의 한 컨테이너 화물자동차 휴게소.

28년 경력의 화물차 운전기사 박신환(51)씨가 컨테이너를 실은 25t급 대형 화물차를 주차한 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박씨는 이날 아침 7시께 집에서 나와 8시께 송도 선광 컨테이너터미널에서 화물을 하나 실은 후 주차장에 정박하고, 10시께 다른 화물을 하나 더 싣고 오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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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 운전기사 박신환씨가 중구 항동 화물차 휴게소에서 경기도의 한 공장으로 화물을 싣고 가기 위해 운전을 하고 있는 모습. 박씨는 "1억 4천만 원대 차 할부금을 갚기 위해 장거리를 왕복할 땐 길에서 자며 1주일에 한 번 집에 가는 등 힘겹게 지낸 적도 있다"고 옛 기억을 떠올렸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먼저 실은 화물은 이날 오후까지 경기도로, 다른 화물은 내일 아침 일찍 서울로 간다.

하역장에서 화물을 받기까지 걸리는 대기 시간이 최소 30분에서 최대 3~4시간에 달하다 보니 여유가 있을 때 화물을 미리 받아놓은 것이다.

박씨는 "갠트리 크레인(컨테이너를 옮기기 위한 항만용 기중기)이 꼿꼿이 서 있지 않고 배 위로 내려가 작업을 하고 있으면 그날은 '망했다'고 보면 된다. 기본 3시간 이상은 대기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한진, ICT 등 그날 대기 시간에 따라 기사들이 화물 하나를 더 나를 수도 있고 덜 나를 수도 있어 항상 갠트리 크레인 위치를 예민하게 확인한다"고 말했다.

인천항을 오가는 화물차 운전기사들은 한 번 나가면 1주일씩 지방을 도는 '장거리파', 수도권 일대를 오가는 '근거리파', 인천 내 공장과 창고에서 화물을 실어나르는 '시내파'(창고발이)로 크게 나뉜다.

운송 회사에 속해 일감을 받아 일하는 기사도 있고, 개인이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물건을 직접 잡아 운송하는 기사도 있다.

작은 운송업체에 속해 있다는 박씨는 2년 전까지는 장거리를 왕복하다가 지금은 일이 없어 근거리 중심으로 하루에 1~3개의 화물을 나르고 있다.

그는 "1억4천만원대 차 할부금을 갚기 위해 장거리를 왕복할 땐 길에서 자며 1주일에 한 번 집에 가며 힘겹게 지낸 적도 있다"면서 "경유가 비싸 여름엔 창문에 방충망을 쳐놓고 모기와 사투를 하고 겨울엔 두꺼운 침낭과 이불에 의지해 차 안에서 먹고 자며 일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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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화물을 고정하고 있는 모습.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화물차 기사들의 근로 조건은 열악하기로 '악명' 높다. 이로 인해 대규모 파업을 할 때면 인천항이 '휘청'할 때도 있었다.

인천항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파업 중 하나가 2003년 8월이다. 당시 인천 지역 화물연대는 ▲운송료 인상과 단가 공개 ▲과속 강요 중단 ▲휴게소 마련 등 근로 여건 개선을 요구하며 약 1주일간 파업을 벌였다.

고작 차량 120여 대가 멈춘 것인데 하루 평균 컨테이너 처리량이 평소의 66% 선으로 줄었다. 당시 경인일보 보도를 보면 화물연대 파업으로 인천항 4부두의 컨테이너 반입량은 20%, 반출량은 40%가량 감소했다.

하역된 물품이 쌓이며 '야적장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정부와 인천시는 화물차 휴게소 설치 등 기사들의 복리 증진에 부랴부랴 나섰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불투명한 운송단가, 운송료 후려치기, 주차장·휴게소 부족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2004년 정부가 화물차량의 급증을 막고자 영업용 화물차를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면서 기사들의 근로 여건은 더 나빠졌다.

한정된 영업용 번호판을 '사고파는' 관행이 생기면서 운수업체들이 화물차 운전자들에게 차량관리비 명목의 위·수탁료, 일명 '지입료'를 받으면서다.

금액은 최저 2천만원선에서 4천만원까지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의 한 화물차 운전기사는 "운수업체가 지입료를 다 받고는 강제로 번호판을 뺏고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이 바닥에 비일비재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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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클릭아트
화물차 운전기사의 악순환은 곧 인천항 경제의 악순환이었다.

물량이 많고 운송료도 높아 화물차 기사들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던 1970~1990년대만 해도 인천항 인근 중구·동구 '먹자골목'이 화물차 기사들로 꽉꽉 들어찼지만, 이후 열악한 환경으로 기사들이 평택항 등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거나 일을 관두면서 식당 거리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

김근영 화물연대본부 인천지부장은 "화물차 값, 물가, 경유가 등 모든 제반 비용은 올랐지만, 운송료는 10년 전과 지금이 거의 다르지 않아 과적·과속에 내몰리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표준운임제를 통한 운송료 현실화가 필요하며, 번호판을 거래하는 악습을 끊을 수 있도록 명의신탁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인천시에 등록된 영업용 화물차 대수는 3만3천여대. 인천연구원이 2010년 발간한 '인천항 화물자동차 통행특성' 보고서를 보면 인천시 화물차의 통행량은 1일 20만2천여 대로, 전국 발생량의 6.53%를 차지한다. 서울(12.36%)을 제외하면 두 번째로 높다.

화물차 도착지로는 인천→경기가 36.2%로 가장 높고 그다음 인천→서울이 16%로, 대부분 수도권 물류를 책임지고 있다.

인천항 특성상 전체 화물의 55.7%가 컨테이너 화물차다. 일반 화물차는 하루 평균 1.93회를, 컨테이너 화물차는 하루 평균 3.06회를 오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화물이 많아 다른 지역에 비해 단거리·단시간 운송이 많은 게 인천 화물차의 특징이다.

화물차가 없던 시절 인천항의 물류는 '우마차'가 책임졌다. 사람이 직접 지게로 나르지 않는 한 우마차는 유일한 화물 운송 수단이었다.

인천~서울 교통편은 우마차를 이용한 12시간 거리의 육로와 인천~용산을 연결하는 뱃길이 전부였다. 1899년 우리나라 최초 철도인 경인철도가 개통하면서는 인천역~축현역~우각동역~부평역~소사역~오류역~노량진역 등 7개 역(33.2㎞ 구간)을 1시간 30분에 걸쳐 오전과 오후 하루 두 차례씩 왕복하며 사람과 화물을 실어 날랐다.

우마차는 1900년대까지 존재했다. 1940년 1월 12일자 동아일보 '세월 맞난(만난) 우마차'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우마차는 중공업 도시 건설로의 비약으로 중공업건설건축자재 운반의 좋은 세월을 만나 한 마차 하루 벌이가 7원 이상이라는 호황을 보고 있다"며 "한산한 정미 공업도 마차를 얻을 수 없어 크나큰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했다.

이후 소형 화물차가 도입됐지만 차량 대수 부족 등의 문제로 한동안 우마차는 꾸준히 시장의 운송을 책임졌다.

그러나 정부는 1960년대 중반부터 우마차 통행이 교통 소통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판단했다. 우마차를 통제하는 한편 화물차를 증차해 통행을 늘렸다.

그때부터 인천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인천항과 한반도 각지를 연결할 교통망 구축이었다. 1969년 대한민국 최초 고속도로인 경인고속도로 개통은 인천항~서울 수송 체계의 변혁을 가져왔다.

경인고속도로가 개통됐던 1969년 30.8%에 불과했던 화물차 비율은 불과 4년만인 1973년 50%를 넘겼다. 도로는 왕복 6~8차선까지 확장을 거듭했고 산업은 빠르게 성장했다.

1996년 경기도 성남과 인천을 연결하는 제2경인고속도로와 2010년 경기도 시흥과 인천을 잇는 제3경인고속도로가 추가로 확충되며 인천의 수도권 물류 인프라는 날개를 달았다.

화물차 모습 역시 계속해서 진화했다. 최초의 화물차는 1963년 일명 '삼륜 용달'로 불린 T-600이다. 500㎏ 정도의 짐을 실을 수 있었으며 좁은 골목에 제격이었다.

이후 1t 이상 적재가 가능한 T-1500이 생산되면서 화물차는 급격히 발달해, 지금은 약 20t까지 적재할 수 있다. 카고, 윙바디, 덤프 등 종류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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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물류 거점 도시를 넘어 통일 시대 '환황해권' 물류의 중심으로 도약할 인천은 이제 화물차와의 '공존'이 필요하다. 영업용 화물차가 3만여 대에 달하는데도 화물차 차고지(주차장)는 3천700여 면에 그치는 게 인천의 현실이다.

이마저도 서구·계양구 등 인천항과 먼 지역이거나, 승용차와 함께 쓰는 주차장의 경우 실제 활용 면은 턱없이 적다. 불법 주차와 교통 체증 등 화물차 민원은 갈수록 많아지지만, 정부와 항만 관련 기관의 인프라 확충이나 지자체의 도시계획 수준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인천시 화물자동차운송사업협회 박요화 전무는 "정부, 인천시, 인천항만공사 차원에서 화물차의 주차장 확보, 하역 효율화 등 물류 시스템의 선진화를 위해 지금보다 더 책임감 있게 노력해줘야 한다"며 "인천항 물동량 300TEU 시대에 화물차는 인천 경제의 원동력이자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고 있다는 인식 전환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글/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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