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문턱에서

 

심사부터 송환까지 오로지 법무부

출입국사무소가 체불 살피는 월권

과도한 권한 행사로 멀어지는 구제

 

‘똘레랑스’ 다름을 견뎌야 공존 있어

당신들은 우리를 견딜 용기 있는가…

한국사회에 이주노동자 던지는 질문

지난달 23일 오후 1시30분께 화성외국인보호소 앞에서 난민신청자 강제송환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법무부 소속 호송버스 앞을 가로막고 앉아 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활동가들은 호송 대상자의 탑승 여부 확인을 요구하며 송환 중단을 촉구했고, 현장에서는 경찰과의 대치가 이어졌다. 2025.4.23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지난달 23일 오후 1시30분께 화성외국인보호소 앞에서 난민신청자 강제송환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법무부 소속 호송버스 앞을 가로막고 앉아 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활동가들은 호송 대상자의 탑승 여부 확인을 요구하며 송환 중단을 촉구했고, 현장에서는 경찰과의 대치가 이어졌다. 2025.4.23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한국 땅에 서로 다른 얼굴과 언어를 지닌 난민과 이주노동자가 모였다. 국경은 땅 위가 아니라 마음 속에 먼저 그어졌다. 우리는 법과 제도의 울타리를 넘어 공존으로 가는 문턱 앞에 멈춰있다.

합법의 틀 안에서 반복된 비극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제도의 경계에서 밀려난 이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행정의 개선점 정도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대답해야 할 중요한 질문을 드러냈다.

지난 2023년 헌법재판소는 출입국관리법상 외국인 보호명령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무기한 구금 가능성과 독립적 심사 절차의 부재가 문제였다. 이에 따라 오는 6월부터 보호기간 상한(최대 20개월)과 외국인보호위원회 설치가 추진된다.

법무부는 위원회의 독립성을 위해 위원 9명 중 과반수에 해당하는 5명은 외부 위원으로 두도록 했지만, 국가정보원·경찰청 등 사실상 유관 기관의 공무원이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둬 형식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지난달 30일, 서울 정부청사 앞에서 이주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외국인 보호소 강제송환과 관련해 법무부를 규탄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5.4.30/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지난달 30일, 서울 정부청사 앞에서 이주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외국인 보호소 강제송환과 관련해 법무부를 규탄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5.4.30/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이종찬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비영리민간단체에도 외부위원 추천을 받았지만, 위원회 발족이 한달 남은 시점에도 추천 위원 현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문제는 시행령 상 위원회의 위원을 비공개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헌법소원 취지를 전면으로 위반한다. 위원회가 준사법기관으로서 법무부의 행정 결정을 감시하려면 위원과 회의록 등을 전면 공개하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무늬 뿐인 독립성’ 논란은 제도의 근본적 한계를 노출했다. 법무부는 심사·집행·송환 추진의 모든 권한을 독점한다. 일반 형사 사건에서 구속 여부를 법원이 판단하는 것과 달리 외국인 보호 명령은 행정기관의 손에 달렸다.

특히 임금체불 사건에서 출입국사무소가 본래 고용노동부의 업무인 체불 사실 확인까지 개입하며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는 현실도 이 연장선에 있다. 내국인 사건은 노동청이 맡지만, 외국인은 출입국사무소가 급여 내역과 사업주 출석까지 챙기며 절차를 복잡하게 만든다.

송은정 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은 “노동청에 피해를 접수하러 간 노동자를 구금한 것 자체가 일차적으로 문제”라며 “법무부는 임금체불 사실을 확인해 주는 기관이 아닌데, 권한 밖의 조사를 하는 것은 행정력 낭비”라고 짚었다.

화성시 외국인보호소의 모습. 2025.4.28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화성시 외국인보호소의 모습. 2025.4.28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앞선 다섯 인물의 사례는 법의 틈새에서 드러난 모순을 보여줬다. 이들은 모두 권리를 말하거나 생존을 지키려 애쓰다 통제와 배제의 벽에 부딪혔다. 이는 개인의 비극을 넘어 한국 사회가 ‘공존’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누구에게 그 문턱을 허락할 것인지 되묻게 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제도는 변화의 문을 열었지만, 그 너머로 넘어가기엔 아직 멀다. 심아정 화성외국인보호소 방문시민모임 ‘마중’ 활동가는 “프랑스는 외국인 단속에도 최소한의 행정심판 절차가 있다. 한국은 그런 장치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위원회가 새로 생긴다고는 하나, (심사·집행·송환 추진 권한을 독점한)법무부 틀 안에선 실질적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제도의 한계가 드러날 때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지난달 23일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송환된 Y씨의 초등학생 자녀는 지금도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를 빼앗긴 한 아이가 앞으로 마주할 한국 사회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한국에서 태어나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여기는 Y씨 자녀에게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추방된 아버지의 일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 어쩌면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것이 아닐까.

홍세화 저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1995). /창비 제공
홍세화 저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1995). /창비 제공

프랑스에서 정치적 망명자로 20년을 살아야 했던 홍세화(1947~2024) 선생은 지난 1995년 출간한 저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똘레랑스’, 즉 서로의 다름을 견디는 관용의 힘이야말로 공존의 조건임을 강조했다. 그는 귀국 후 시민모임 ‘마중’의 보호소 방문 활동에도 참여하며 현장에서 난민과 이주노동자들을 만나왔다.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은 그 사회의 가장 낮은 데 자리한다. 그것의 개선은 우리 사회의 노동인권 전반을 개선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한 사회의 관용이 가장 도드라지는 지점은 외국인이자 제소자, 즉 신체의 자유를 잃은 이방인의 사례다. 화성외국인보호소가 한국 사회 관용의 리트머스 시험지라는 말이다.

2010년 인하대학교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강연자로 나선 홍세화 선생의 모습. /경인일보DB
2010년 인하대학교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강연자로 나선 홍세화 선생의 모습. /경인일보DB
고 홍세화장발장 은행장이 생전  운영하던 토론모임 ‘소박한 자유인’ 서울 마포 사무실에서 2019년 인터뷰 하고 있는 모습. /오수진기자 nuri@kyeongin.com
고 홍세화장발장 은행장이 생전 운영하던 토론모임 ‘소박한 자유인’ 서울 마포 사무실에서 2019년 인터뷰 하고 있는 모습. /오수진기자 nuri@kyeongin.com

30년 전 한국 사회에 던져졌던 똘레랑스(관용)는 이제 낡은 말로 여겨질지 몰라도, 난민과 이주노동자를 둘러싼 갈등과 혐오 앞에선 여전히 유효하다.

심아정 활동가는 “제도가 아무리 바뀌어도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며 “불법체류자라는 호칭 자체가 형사범을 연상시키는데, 이런 용어부터 바뀌어야 인식이 달라진다. 공존은 결국 사회의 인권 감수성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아이를 남겨두고 송환된 아버지, “존재를 잃었다”고 토로한 보호일시해제자, 병상에서 치료를 견디는 난민신청자,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한 채 구금된 이주노동자…. 이들의 이야기는 공존이 제도 변화만으로 완성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들이 그 존재 자체로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당신들은 우리를 견딜 용기가 있는가. 우리를 이방인이 아닌 사회의 일원으로 품을 마음이 있는가.

이주 노동자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사회가 된 한국에서, 너무나 늦었으나 이제라도 이 질문에 답해야한다.

/유혜연·목은수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