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봄은 왜 저 캐슬에만 오는 것일까

조승헌

발행일 2019-03-21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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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새 소득격차는 더 벌어졌는데
정치-경제권력은 '규제완화' 놓고
"투자 더하라" "경제는 경제에게"
국민에 와닿지 않는 줄다리기 급급
마스크값 걱정 미세먼지에 '한숨만'


경제전망대 조승헌2
조승헌 인천연구원 연구위원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지만 큰 어른들이 저러는 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양쪽의 말이 다 맞는다면, 우리의 행복과 평안을 위해서 둘 다 물러나게 해야 할 법하다. 둘 다 틀린다면 둘 다 유언비어 유포와 혹세무민, 민심교란죄로 자격증을 박탈하는 게 도리다. '수석대변인'이라 하니 '국가원수모독범'으로 받아치는 국회 싸움의 본질은 제3자인 국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자는 편가름이다. 양편 기세가 등등한 걸 보면 서로 다른 한쪽씩만 올바르다는 국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문제는 속성상 정답이 딱 있을까 싶다. 두 개의 정답이 공존하는 것, 설사 진리이며 정답이지만 그런 것 때문에 불편한 사람이 있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살이의 참모습인 것을. 각자 취향이고 성향이고 가치관이니 그럴 수 있다 하자. 맛집과 인증샷으로 하루 거리 행복을 찾는 평범한 우리. 그러니, 나라님들 다툼은 힘 있고 가진 그네들만의 자기보존이자 기득권을 지키자는 거니 신경을 쓰지 말자, 라고 하자?

정치 권력이 발끈거리며 서로 싸우는 사이 경제 권력의 성곽은 높아지고 굳어진다. 가장 가난한 가구 20%의 소득은 일 년 전보다 17.7% 떨어졌지만 가장 잘사는 가구 20%는 소득이 10.4% 올랐다. 처분가능소득은 격차가 더 벌어진다. 소득 하위 20%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2017년 4분기 124만9천원이지만 2018년 4분기는 99만1천원으로 20.7%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소득 상위 20% 가구는 2017년 665만7천원에서 722만7천원으로 8.6% 늘어났다. 가구별 소득배율이 5.3배에서 7.3배로 벌어진 셈이다. 통계청의 2018년 4분기 소득 부문 가계동향조사이다. 소득 200만원 미만 가구의 자녀 사교육 참여율은 47.3% 월평균 사교육비는 9만9천원이다. 800만원 이상 가구의 자녀는 84.0%가 사교육을 하고 50만5천원을 지출한다. 통계청의 2018년 사교육비 조사이다. 이런 통계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도 아니며 얼마든지 있다. 최근에는 미세먼지도 리스트에 가세했다. 자녀 학원비 9만9천원이 힘든 가정에 마스크를 두 번 사용하는 건 금물이고, 4인 기준 마스크값이 20만 원이라면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이런 문제를 교정하고 조율하라고 국민이 거두어 주는 세금을 받아, 밥 먹고 집 사고 학원 보내고 유학 보내는 분들이 핏대를 올리며 저리 한다는 건……. 국민은 서글퍼지고 세상이 싫어진다.

'빨갱이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역사적인 패배를 한 것은 결국 먹고사는 문제를 처리하는 역량이 지속가능한 정치 권력의 관건임을 검증한 것이다. 민주적이고 행복한 사회일수록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은 상호 창조, 혁신, 경쟁으로 단단해지고 사회적 지지를 얻으며 존속한다. 예를 들어보자. 2019년 대한민국.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은 규제 완화라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정치 편에서는 투자와 일자리를 내놓으라 하고 경제 편에서는 경제는 경제에게 맡기라 한다. 정치권은 규제라는 밥그릇을 내주기 아쉬운 것이고, 기업은 이 기회에 '기업 하기 좋은 조건'을 하나 더 챙기겠다는 속내이다. 지지부진할밖에. 국민에게 와닿고 국민을 위한 규제 완화라면 국민이 팔 걷고 나서야 할 터인데, 아닌 것은 기업의 돈벌이가 국민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을 알기 때문이다. 국민 관점의 규제 완화를 풀지 못하는 순간, 혁신이니 창조는 영 가능성이 없다. 지금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은 견제와 감시가 아닌 전략적 공생을 하는 셈이다.

살 만큼 살다 보니 배고프고 추운 시절을 겪곤 했다. 그때 누가 나에게 따뜻하고 마음 편한 밥 한 끼를 주었던가? 보수인가 진보인가? 타인능해(他人能解)를 찾는 시절이다. 여의도, 세종시, 청운동을 거쳐 도청, 군청을 기웃거린다. 끝내 이장 집까지 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쌀 한 바가지가 거기에 있을는지?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최승자 시, '삼십 세' 중에서), 바라는 건, 미세먼지만이라도 어찌 안 될까. 봄날 꽃놀이 사치는 애당초 포기했다. 우리들의 봄은 누가 가져갔는가? 봄은 왜 저 캐슬에만 오는 것일까?

/조승헌 인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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