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가족·이웃 소재 성찰 담아

류병구 시인이 최근 '낮은 음역의 가락'을 내놓았다. '달빛 한 줌'과 '쇠꽃이 필 때'를 잇는 류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을 통해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아포리즘은 '겸손'과 '관용'이다. 경직되고 오만한 부정적 계열의 정신들은 되도록 배제하고 정감 어린 70여 시편들을 낮고 온화한 터치와 은유, 역설적 기법으로 펼쳐간다.
시의 소재는 주로 꽃, 산, 섬처럼 가공되지 않은 자연과 절기 그리고 가족, 이웃 등을 주요 대상으로 삼는다. 불문학을 공부한 유교철학자 류병구 시인의 내면적 성향과 가치의식을 '낮은 가락'을 통해 엿보게 한다.
그런 사유의 물줄기는 고궁과 사찰, 유적지에서 찾아지는 오래된 시간에 민감하고, 인류가 오래전부터 지혜의 원천으로 삼아온 종교들도 겸허하게 다룬다.
홍기삼 문학평론가는 "전 편에 흐르는 풍요한 시어들은 '고적한 현란, 순백의 생피'처럼 이질적인 품사들을 결합하는 복합감각이나 모순어법, 낯설게 하기 같은 시적 기법들로 충만해 있는데, 모더니즘 계열의 시, 그 중에서도 이미지스트 시인들을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많은 시들에서는 '콩댐, 자리끼, 골막하게, 꽃잠, 곤드라진다'처럼 아름답고 질박한 우리 옛말을 맛깔나게 되살려 냈다.
또한 시인은 북촌의 어느 골목을 따라가다 누구 집 앞에서 발을 멈추고 내당을 흘깃 들여다 보며 가슴 아린 그리움을 그리기도 한다. 시인이 가슴으로 그리는 '그리움'은 곧 '사랑'이다. 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사랑의 힘'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시인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충북 청주 태생인 류 시인은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불문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성균관대 대학원 석·박사과정에서 유교철학을 공부한 후 가천대에서 윤리학을 가르치고 정년 퇴임했다. 시집 외에 '서구 근세사에 있어서 중국사상의 역할' 등의 저서가 있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