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의 한국재벌사·102]엘지-10 이동통신시장 참가

'황금알 낳는 거위' 통신업체 LGT 설립

이한구 기자

발행일 2019-04-09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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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업체인 LG유플러스의 전신은 1996년 설립된 LG텔레콤이다. 1997년 LG유플러스는 PCS 식별번호로 019를 받아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진은 지난 2010년 LG전자가 내놓은 '옵티머스 시크(Optimus Chic, 모델명: LG-LU3100)'. /경인일보 DB

1997년부터 '019'로 서비스
데이콤·파워콤 계열사 편입
002패밀리·국제팩스 개시
2012년 와이파이존 전면무료
세계최초 LTE전국망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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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국내 이동통신산업은 새로 발돋움하면서 대기업들이 대거 참여했다.

1994년 1월 20세기의 마지막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치부되던 한국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입찰에서 SK텔레콤이 한국통신의 사업파트너로 선정됐다. 항간에는 SK가 노태우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탓에 선정됐다는 부정적 여론도 파다했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 장녀 노소영과 SK그룹 최종현 회장의 장남 최태원이 백년가약을 맺은 것이다.

 

1993년 실시한 제2 이동통신 선정작업에는 코오롱과 포스코의 컨소시엄인 신세기통신이 선정됐으며 1996년 개인휴대통신(PCS)사업자 선정에선 KT프리텔, 한솔엠닷컴, LG텔레콤이 뽑혔다.

PCS방식은 2세대 디지털 이동통신과 유사하지만 높은 대역폭과 주파수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기존 시스템보다는 높은 풀질의 음질을 제공할 수 있고 데이터 전송속도에서도 장점이 있어 화상서비스 등의 부가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었다.

>> PCS사업자 첫 선정


그러나 높은 주파수 대역으로 인해 많은 기지국을 세워야 하고 고속주행 자동차에서 통화품질이 안 좋다는 단점도 있다.

1997년 국내에서 시작된 PCS방식의 이동통신은 2000년 CDMNA2000을 시작으로 3세대 이동통신이 시작되면서 생명력을 잃고 시장에서 사라졌다.

통신업체인 LG유플러스의 전신은 1996년에 설립된 LG텔레콤이다. 1997년 1월 LG텔레콤은 PCS 식별번호로 019를 받아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0년 1월 데이콤, 2003년 12월 (주)파워콤이 각각 LG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됐다. (주)파워콤은 '한국전력공사가 통신사업을 해선 안 된다'는 정부의 결정에 따라 한국전력의 통신사업부문을 분리해 2000년 1월 26일에 설립한 것이다.

(주)파워콤은 종합유선방송 전송망 사업자로 지정되고, 2월에는 전기통신 회선설비 임대사업 기간통신사업자 허가를 받았다.

최대주주인 한국전력은 그해 7월 24일 (주)파워콤 민영화 계획으로 보유 주식 10.5%를 경쟁입찰 방식으로 20개사에 매각했다. 포항제철(주), SK텔레콤(주), (주)신세기통신 등이 낙찰받아 주주로 참여했다.

2002년 12월 16일에는 (주)데이콤을 인수해 LG계열사로 편입했는데 과정은 다음과 같다.

1982년 한국전기통신공사, 한국방송공사, 삼성전자, LG반도체, 오리콤, 대우통신 등 27개 업체가 주주로 참여해 한국데이타통신(주)를 설립했다.

체신부에 의해 정보통신 업무 허가와 공중통신 사업자 및 행정 전산망 전담업체로 지정받고, 1983년 세계 33개국과 연결하는 국제 공중정보통신망을 개통했다.

1984년 국내 공중정보통신망(데이콤 네트)을 개통한 뒤 특정통신회선 업무·화상형 '천리안' 상용 서비스, 신용카드 정보시스템 서비스 등을 개시했다.

1988년 올림픽 종합정보통신망(INS)을 개발해 서울올림픽 때 운영했다. 이어 세계에서 5번째로 다중매체 간에 국내외 교신이 가능한 MHS방식의 '데이콤 메일 400'이라는 소프트웨어 자체개발에 성공해 1989년 7월부터 시판하기 시작했다.

>> 국제전화 60개국 확대


1991년에는 상호를 (주)데이콤으로 바꾸고 1992년에는 국제전화서비스 지역을 60개국으로 확대하는 한편 국제전화 002패밀리서비스, 국제팩스서비스도 개시했다.

1994년에는 저궤도 위성통신사업에 참여했으며, 1996년에는 시외전화서비스를 개시하고 한솔PCS 컨소시엄에 참여, PCS 사업권을 획득했다. 1997년에는 시내전화 사업권을 획득하고 하나로통신(주)를 설립, 시외전화 사전선택제를 실시했다.

2003년 2월에는 (주)LG데이콤이 (주)파워콤의 지분 45.5%를 취득해 파워콤을 LG그룹의 계열로 편입했다.

2005년 개별 가정을 대상으로 초고속 인터넷 엑스피드(XPEED)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단기간에 100만 가입자를 확보했고, 이어 IPTV myLGtv, 인터넷 전화 myLG070을 서비스했다. 2006년 상호를 (주)파워콤에서 (주)LG파워콤으로 변경했고, 2008년 11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한편 LG텔레콤의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2004년 600만 명, 2006년 700만 명을 각각 돌파했다.

2008년에는 주식을 코스닥시장에서 증권거래소로 옮겨 상장했으며 2010년 1월 LG텔레콤은 국제전화와 시외전화 서비스업체인 LG데이콤,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LG파워콤을 흡수 합병했다. 통합 법인은 6월 회사 이름을 (주)LG유플러스로 바꿨다.

LG유플러스는 2010년 12월에는 LTE 장비공급업체로 선정됐으며 2011년 7월에는 4G LTE 상용서비스를 시작했다.

2012년 2월 와이파이존을 전면 무료 개방하고, 3월에는 세계 최초로 LTE 전국망을 구축했다. 2013년 7월 세계 최초로 '100% LTE' 상용화에 성공하고 LTE-A 서비스를 개시했으며 그해 12월에는 모바일 간편결제 페이나우(Paynow)를 출시했다.

2014년 6월 사물인터넷 아이오티(IoT, Internet of Things)기술로 스마트 무인 사물함을 구축하고, 'U+미디어플랫폼'을 출시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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