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무·수당 미지급·근로계약 위반…
노동현장서 58.7% '부당 대우' 경험
특성없는 비정규직 사관학교 지적
"취업시장 일반계高와 차이 없어"
그렇다면 김씨가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정규직 취업에도 실패한 것은 개인 역량이 부족해서일까.
취재진이 만난 특성화고 졸업생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 김씨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었다.
도내 B 특성화고에서 전자분야를 전공한 박현수(21·가명)씨가 현장실습 연계로 취직한 업체에서 가장 처음 맡았던 업무는 '생산조립'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그 흔한 납땜 기술 한 번 쓸 일이 없었다. 박씨는 현재 품질관리팀으로 자리를 옮겨 생산된 제품의 불량 여부를 검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박씨는 생애 첫 직장에서 '무시'와 '차별'을 가장 먼저 배웠다고 말한다. 박씨는 "생전 처음 하는 일인데도, 일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며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여긴 학교가 아니잖아'였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특성화고 졸업생 이병준(21·가명)씨도 "특성화고를 통해 인력을 충원하는 업체들은 전문성 있는 기술자가 필요한 게 아니라, 일할 사람이 필요한 것 뿐"이라고 한탄했다. 도 소재 C 특성화고에서 전기계통을 공부한 그도 회사에서 전공과 무관한 '자재 업무'를 맡았다.
이씨는 "어차피 돈을 빨리 벌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특성화고에 왔고, 이점 말고는 학교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자조했다. 실제로 열악한 취업환경에 내몰린 특성화고 출신이 화를 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 10일 특성화고 출신 김모(25)씨가 수원시 고색동의 한 아파트형 공장 신축공사장 5층에서 추락해 숨진 것이다. 당시 김씨는 화물용 엘리베이터 양문이 모두 열려 있는 위험한 환경에서 안전장비도 없이 일을 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은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일찍부터 산업현장에 뛰어들게 되는 특성화고 졸업생들에게 같은 문제가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며 "더 이상 청년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일할 만큼 위험한 노동환경에 놓이게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경기비정규직지원센터 조사에 따르면 취업현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58.7%(176명)가 취업현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유형별(복수응답)로는 무시와 차별이 134건으로 가장 많았고 업무와 상관없는 잡무(125건), 수당 미지급(107건), 근로계약 위반(103건), 강제노동(89건), 최저임금 미달(54건)이 뒤를 이었다. → 그래프 참조
시민사회는 '특성화'가 되지 않은 특성화고는 사실상 '비정규직 취업 사관학교'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졸업자의 취업률에만 매달리는 학교와 이를 방치한 교육 당국이 자초한 일이라는 분석이다.
특성화고권리연합회 윤설 사무국장은 "문제는 고졸 취업시장에 나온 특성화고와 일반계고교 졸업생들의 차이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는 직업교육에 특화된 특성화고를 통해 고졸취업을 확대하겠다는 정부정책과도 맞지 않다"면서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고용형태, 업무, 급여 수준, 승진까지 각 분야에 뿌리 깊은 차별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지영·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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