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체제 출범 이후 임창렬 지사 외 모두 도전
직 유지한 채 경선 도전…현직 본선 진출은 1회
‘경기 더비’ 성사 가능성 주목됐지만 후보 교체

전국 최대 광역자치단체를 이끄는 경기도지사는 언제나 ‘대권 잠룡’으로 분류됐다. 기초단체만 31개로 전국 226개 시·군·구의 14%가 소재한 경기도엔 인구 100만을 넘는 대도시와 도농복합형 중·소도시가 공존하고 있다. 광역단체의 맏형, 대한민국의 축소판으로 불린다. 실제 민선 체제 출범 후 재임한 경기도지사 7명 중 민선 2기 임창열 전 도지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대권에 도전했다. 그러나 ‘잠룡’은 아직 한 번도 별의 순간을 맞지 못했다. 오죽하면 경기도지사직은 ‘대권의 무덤’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래서 제21대 대선에 더욱 시선이 쏠리고 있다. 경기도지사를 역임한 이재명 전 지사와 김문수 전 지사가 각각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서 ‘전직 경기도지사 더비’가 성사되나 싶었더니, 국민의힘의 후보 교체 결정으로 또 다시 안갯속에 접어들었다. 첫 민선 도지사인 이인제 전 지사부터 현직 김동연 지사까지 30년 가까이 줄기차게 이어져온 ‘대선 도전기’를 풀어본다.
■ 경기도지사들의 ‘대권 도전 연대기’

경기도지사의 대권 도전은 민선 1기 이인제 전 지사부터 시작됐다. 그는 지사 임기 중이던 1997년 3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49세였던 이 전 지사는 제13·14대 국회의원, 노동부 장관에 이어 민선 경기도지사까지 역임하며 중앙과 지방을 망라하는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다. 그는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낡은 시대, 낡은 가치는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가치에 자리를 내줘야 한다”며 3김 정치의 종식, 젊은 일꾼론을 내세웠다.
2002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민선 3기 도지사에 당선된 손학규 전 지사는 4년 임기를 모두 채운 후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당적을 바꿔 도지사 재선이 아닌 대선 도전을 선택했다. 당시 손 전 지사는 “민주주의가 발전해 경제에 도움이 되고, 경제가 발전해 민주주의를 더욱 튼튼히 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풍요 속에서도 존엄을 지키는 사회를 만들겠다”면서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민선 4·5기를 연임한 김문수 전 지사는 두 번째 지사 임기 중이었던 2012년 4월 대권 도전 의사를 밝혔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대권 주자 중 처음으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던 그는 ‘낮은 곳에서 국민을 섬기는 리더십’을 강조하며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박근혜 대세론’이 강했음에도 김 전 지사는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가능할 것으로 믿고 오직 앞을 보고 힘차게 나아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개혁보수’를 자임한 민선 6기 남경필 전 지사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자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후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이후 임기 중이던 2017년 1월 ‘50대 기수론·일자리 대통령’을 앞세워 대권에 도전했다. 남 전 지사는 “(지사 재직) 2년 동안 경기도에서 29만2천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경기도에서 먼저 대한민국의 미래가 시작됐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미 성남시장 재직 시절 대선에 한 차례 도전했었던 민선 7기 이재명 도지사는 임기 도중인 2021년 7월 대선 ‘재수’에 나섰다. 특유의 추진력과 강한 개혁성을 앞세웠던 그는 역대 대권에 도전했던 도지사 중 처음으로 당내 경선에서 승리, 본선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현직 도지사인 김동연 지사 역시 대선 ‘재수’에 나선 경우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했던 김 지사는 창당을 통해 2022년 대선에 도전했지만 당시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택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민선 8기 도지사에 당선됐고, 임기 중인 지난 4월 자신의 두 번째 대선 도전에 나섰다. ‘경제 대통령’을 자처한 김 지사는 트럼프발(發) 관세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 출장 직전 “정권 교체 그 이상의 교체가 필요하다.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 경기도지사 = 대권의 무덤?

역대 대선에 도전한 경기도지사들은 대부분 본선행 티켓을 잡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자 경기도지사직을 가리켜 ‘대권의 무덤’으로 부르기까지 했다. 징크스가 좀처럼 깨지지 않아 “도지사 공관 터가 좋지 않다”는 낭설마저 떠돌 정도였다.
1997년 대선에 출마한 이인제 전 지사는 신한국당의 강력한 대선 주자였던 이회창 전 대표와 결선투표까지 가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득표율 60%를 기록한 이 전 대표의 벽은 높았다. 결국 당내 경선에서 낙선했지만 이 전 지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경선 불복’ 논란에도 불구하고 같은 해 9월 몸담고 있던 신한국당을 탈당해, 며칠 뒤 경기도지사직까지 던지며 독자적인 대권 가도에 돌입했다.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제15대 대선에 출마했지만 19%를 득표해 3위에 그쳤다. 제16대 대선에서는 새천년민주당의 유력 후보로 주목받았지만 ‘노무현 돌풍’을 이기지 못하고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손학규 전 지사는 당내에서 지지율 3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2007년 3월 탈당을 단행했다. 오히려 탈당 후 범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급부상했지만, 정작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에선 정동영 후보에게 패배했다. 제18대 대선에선 ‘저녁이 있는 삶’을 앞세워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에 나섰으나 문재인 후보를 꺾지 못했다. 국민의당을 창당한 후 치른 제19대 대선 경선에선 안철수 후보에 밀렸다.

김문수 전 지사는 재선 3년차인 2012년 새누리당 대선에 나섰다. 하지만 ‘대세론’이 형성돼있던 박근혜 후보를 경선에서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남경필 전 지사 역시 2017년 바른정당 대선 경선에서 유승민 전 의원과 1대1 진검 승부를 펼쳤지만, 유 전 의원을 꺾지 못했다.
가장 최근엔 현역인 김동연 도지사가 ‘어대명(어차피 대통령 후보는 이재명)’ 분위기가 짙어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분전 끝에 2위를 기록했다.

대부분의 전·현직 도지사들은 지사 임기 중에 대선에 도전해, 직을 유지한 채 당내 경선에 뛰어들었다. 마찬가지로 지난 2021년 도지사 임기 도중 민주당 대선 경선을 치렀던 이재명 전 도지사는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된 이후에야 도지사직을 사퇴했다. 최근 김 지사의 경우처럼 휴가를 이용해 대선 경선 일정을 소화하거나, 경선 레이스를 돕기 위해 도청에서 근무하던 정무직 공무원들이 사표를 낸 후 경선 캠프에 합류하는 일 등도 번번이 반복됐다.

■ ‘전직 경기도지사 더비’ 목전… 첫 경기도지사 출신 대통령 탄생할까
거대 양당의 대선 후보로 이재명·김문수 두 전직 도지사들이 나란히 선출되면서 ‘경기도지사는 대권의 무덤’이라는 오명이 사라질 수 있을지 관심이 높았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모두 정치적 기반지인 경기도(두 정당 모두 고양 킨텍스에서 후보 선출을 진행했다)에서 나란히 본선 후보로 확정됐다. 두 전직 도지사를 향한 경기도 유권자들의 지지세가 이들이 양당의 후보로 거듭난 원동력이라는 반응이 제기됐다.
본선행 티켓을 쥔 이후에도 논란은 이어졌다. 이재명 전 지사는 자신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결정으로 사법 리스크를 온전히 벗지 못한 채 선거를 치르게 됐다. 파기환송 결정의 적합성을 두고 10일 대규모 찬반 집회가 열리는가 하면 오는 26일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소집되기도 했다.
김문수 전 지사는 아예 후보직을 박탈 당했다.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의 단일화 문제가 파국으로 치닫자 10일 새벽 당 비상대책위원회는 후보를 교체키로 결정했다. 출마가 불가능해질 상황에 놓이자 김 전 지사는 거세게 반발하며 법적 조치 등을 예고한 상태다.
역대 경기도지사들은 번번이 ‘잠룡’에 머물러왔다. 이번에야말로 별의 순간을 맞아 승천할 수 있을지 주목도가 한껏 높아졌지만 대권의 무덤은 쉽사리 잠룡들을 놓아주지 않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첫 경기도지사 출신 대통령 탄생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이 와있다는 평이다.
/한규준기자 kkyu@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