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구상나무의 교훈

이한구

발행일 2019-06-12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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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자국발생 데이터 해외반출 막기 비상
외국기업들 국내 정보 무제한 수집 하는데
국내기업들 개인정보보호법으로 활용 못해
'데이터 패권주의' 종자전쟁보다 훨씬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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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세계인들에 가장 사랑받는 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이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지구촌 곳곳이 크고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들로 화려하게 장식되니 말이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트리는 소나무과의 상록교목인 전나무로 알려졌지만 진실은 한라산과 지리산에서만 자생하는 구상나무로 백 년 전 누군가에 의해 몰래 서양으로 반출돼서 크리스마스트리가 된 것이다. 구상나무 소유권을 가진 외국인이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지만 그는 매년 수십억 원의 로열티를 받고 있단다.

한국은 아열대와 한대가 접하는 전형적 온대 지역으로 사계절의 기온 변화가 심해 식물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특이한 것들이 많다. 국내 자생의 4천여 종의 식물 중 400여 종은 한반도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종이나 이중 상당수가 구상나무처럼 외국산으로 둔갑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국내 생물자원들의 국적이 세탁된 것이다. 1998년 외환위기 때는 토종(土種) 식량종자 소유권마저 경쟁국 육종기업들에 헐값에 넘겨져 한국인의 애용식품인 감자, 배추, 적상추, 버섯, 청양고추와 감귤 등은 더 이상 신토불이가 아니다. 육류를 제외한 농산물 종자 수입액만 매년 2천억 원을 초과하는데 한국특산식품 종자 수입금액도 상당하다.

미국과 중국이 정보자료(데이터) 선점문제로 정면충돌하고 있다. 최근 3~4년 동안 구글, 애플, MS, 아마존, 페이스북, 트위터 등 미국 테크기업들이 전 세계의 데이터를 독식했다. 중국정부는 이 기업들의 중국진출에 제동을 걸기 위해 2017년에 '인터넷안전법'을 제정했다. 중국에서 생성된 모든 데이터의 국외반출 금지는 물론 필요시 중국정부가 자국민의 데이터를 볼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작년 3월 '클라우드법(Claud Act)' 제정으로 즉각 반격했다. 테러 및 범죄 수사와 같은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미국정부가 해외에 저장된 미국 기업의 데이터를 들여다볼 권한을 갖도록 했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MS데이터센터에 저장된 중국인 데이터를 미국정부가 볼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미·중 양국이 데이터의 법적 관할권을 두고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오늘날은 정보의 홍수시대이다. CCTV에 찍힌 동영상부터 차량운행 데이터, 홍체, 지문, 걸음걸이와 같은 생체데이터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활동이 인터넷을 통해 수집되면서 전 세계 데이터양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 33ZB(1ZB는 1조1천억GB)에 달했는데 2025년에는 175ZB로 5배 이상 격증할 전망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첨예한 대립은 임박한 인공지능(AI) 시대를 선점하기 위한 패권경쟁이다.

세계인들은 스스로 도로상황을 판단해서 운전하는 자율주행차에 경악했다. AI가 획기적인 이유는 러닝머신(기계학습)과 같은 학습능력으로 기계가 데이터를 학습하면서 스스로 똑똑해지는 것이다. 러닝머신은 16만 건의 기보(碁譜)를 단기간에 학습해서 천재기사 이세돌 9단을 이긴 알파고의 방식이다. 데이터는 AI의 연료이다. AI를 개발할 때 데이터양이 많을수록 성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세계 각국도 자국에서 발생한 데이터의 해외반출을 막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유럽연합(EU)은 작년 5월에 GDPR(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발표했으며 베트남도 지난해부터 데이터 국외유출 금지법안을 통과시켰다. 호주는 작년 말에 외국기업이 해외에 보관한 호주국민의 데이터에 대해 호주정부의 접근 근거를 마련했으며 지난달 러시아는 자국 내 데이터의 해외반출 시 정부검열을 받도록 했다.

한국에서는 외국기업들이 국내 데이터를 무제한적으로 수집, 활용하고 있지만 국내기업들은 개인정보보호법 등 탓에 수집된 데이터마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 가관은 미국의 유튜브, 중국의 틱톡 등은 한국 이용자들에게 한국기업들의 광고를 팔아 막대한 돈을 벌면서도 한국정부에 세금도 거의 안 내고 있다는 점이다.

작금의 데이터 패권주의는 구상나무 사례와 같은 종자전쟁보다 훨씬 심각하다. 되풀이되는 역사에 넋을 놓고 있는 격이어서 개운치 못하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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