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스스로 체득·협력 가장 중요한 가치… 2년 남은 임기, 학교 철학 끝까지 지킬 것”

 

성공회 사제로 강화 인연, 시민모임도 창립

자연스레 대안학교 맡아… 평화·상생 지도

학생들 우느라 졸업식 길어, 내게도 큰 감동

졸업생 예소연 작가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도

아이들 늘 고마워… 밑거름 되는 경험 쌓길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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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산마을고등학교’는 올해로 개교 25년을 맞은 인가형 대안학교다. 학생 수가 50여명인 이 학교는 매년 인천을 포함해 서울 등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어우러지는 곳이다. 한눈에 봐도 여느 공립·사립 학교와는 겉모습부터 달랐다. 교실이 각 층마다 일자로 배열돼 있는 직사각형 건물은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20여개의 작은 단층 건물이 오밀조밀 모여 하나의 마을처럼 구성돼 있다.

천용욱 산마을고등학교 이사장은 지난 2005년부터 20여년 째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이번이 마지막 임기라는 그는 “아이들이 재밌게 지내면서도 앞으로 살아갈 날에 바탕이 되는 경험을 쌓았으면 한다”고 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천용욱 산마을고등학교 이사장은 지난 2005년부터 20여년 째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이번이 마지막 임기라는 그는 “아이들이 재밌게 지내면서도 앞으로 살아갈 날에 바탕이 되는 경험을 쌓았으면 한다”고 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천용욱 산마을고 이사장은 “우리들끼리는 스머프 마을이라고 부른다”고 웃으며 말했다.

천 이사장은 지난 2006년 완성된 산마을학교의 탄생 과정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산증인이다. 그는 성공회 사제로서 강화도와 인연을 맺었다. 가장 오랜 기간인 18년간 사제로 활동한 곳이 강화도다. 사제 활동을 하면서 ‘강화시민모임’을 창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대표도 맡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안학교 이사장직을 수행하게 됐고,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그는 “당시 이사였던 대학교수, 목사 등과 초기 학교 운영 방향, 교육 철학 등을 함께 논의했는데, 그때는 제가 막내였다”며 “지금까지 이사장 역할을 하게 될 줄은 그땐 몰랐다”고 웃으며 말했다.

산마을고는 초대 이사장인 김의중 전 이사장이 토지 매입 등 건축 전반을 주도했다. 이 전 이사장 부인인 고(故) 이은 건축가가 학교 전체 설계를 담당했다. 천 이사장은 “스머프 동네처럼 올망졸망한 건물들이 서로 어울려서 한 마을을 이루는, 자연· 평화·상생이라는 교육철학이 담겨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산마을고는 대안형 특성화고등학교이기도 하다. 특성화고등학교는 취업을 목표로 한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산마을고는 다르다고 했다. 천 이사장은 “고등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기본적인 교육과 더불어 지역사회 속에서 생태·역사·문화 등 다양한 가치를 직접 경험하고 체득하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이 학교는 전교생에게 개인 텃밭을 일구도록 한다. 씨뿌리기부터 수확까지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을 배운다. 또 학교가 운영하는 텃밭에서 벼, 배추 등을 키우고 이를 급식에 활용한다. 올망졸망한 건물 중 하나는 ‘생태뒷간’이름이 붙었다. 이 공간은 물을 내리는 방식이 아닌, 자원 순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학교 생활 자체가 자연을 배우는 학습이 되도록 설계됐다. 학생들 주도로 진행되는 자치활동 등은 산마을고가 가진 특화 프로그램 중 하나다.

‘산마을’이라는 이름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성경 마태복음 중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라는 문구에서 착안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천 이사장은 “‘빛을 드러내자’, ‘세상의 빛이 되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빛’이라는 것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산’이라는 말은 자연을 뜻하기도 하고, ‘살아 있는’이라는 의미도 함께 담기 위해 ‘산마을고등학교’라고 이름을 정했다”라고 했다.

천 이사장이 처음 이사장을 맡았을 때와 지금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중 하나가 이사회 구성이다. 초기엔 외부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농부, 시민단체, 교사 등 강화도 지역 인사들이 이사회 다수를 구성하고 있다. 그는 “졸업생 부모도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며 “학교 교육철학 중 하나도 지역사회와의 협력·유대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강화지역과 유대관계는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산마을고에는 큰 희소식이 전해졌다. 이 학교 졸업생인 전소연 작가(필명 예소연)가 올해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예소연 작가는 지난 2023년 산마을고 졸업생들의 이야기를 담아 펴낸 책 ‘산마을 너머 지금 뭐해?’에서 ‘물살을 가르는 마음으로’를 제목으로 한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아주 찬찬히, 삶에 있어서 힘을 빼고 더해야 하는 지점들을 알아가고 있고 그것이 무척 서툴렀던 때 대안학교에 가게 된 것을 커다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예 작가는 지난달 산마을학교에 와서 후배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는 학교에서 어떤 활동을 했고, 무엇을 느꼈는지 등을 이야기했다. 또 작가로서 후배들과 글쓰기와 관련한 대화를 나눴다.

천 이사장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졸업식이 가장 많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산마을학교 졸업식에서는 각자가 학교에서 3년간 생활하면서 느낀 점 등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래서 여느 학교와는 다르게 졸업식이 2~3시간이나 걸린다. 많은 학생이 이 시간에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그는 “정말 힘들고 어려웠던 이야기부터 즐겁고 좋았던 이야기를 쭉 들으면 나도 눈물이 난다”며 “아이들의 말에서 자기 자신을 생각할 줄 안다는 것이 느껴진다”고 했다. 이어 “그럴 때마다 감동을 느낀다. ‘역시 우리 학교가 잘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천 이사장은 오는 2027년 임기가 마무리된다. 그는 이번이 마지막 임기라고 강조했다. 2년 남짓 남은 임기에 그는 산마을고가 가지고 있는 철학을 지키기 위해 힘쓸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학생 스스로 체득하고, 서로 협력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어렵지만 앞으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라며 “이러한 가치가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만 유지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천 이사장은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그는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내겐 큰 보람”이라며 “아이들이 산마을고등학교에서 재밌게 지내면서도, 앞으로 살아갈 날에 바탕이 되는 경험을 쌓았으면 한다”고 했다.

■천용욱 이사장은?

▲1957년 서울 출생

▲1988년 성공회대학교 사목신학연구원 졸업

▲1989년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사제서품

▲1988~2022년 서울주교좌교회, 성남교회, 강화읍교회, 안양교회, 온수리교회, 영등포교회 관할사제

▲1990~1997년 성남시민모임 대표

▲1997~2006년 강화시민연대 대표

▲2005년~ 현재 산마을고등학교 이사장

/정운기자 jw33@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