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진 칼럼]열린 마음

홍창진

발행일 2019-08-27 제22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밥 잘 사주는' 누나·오빠들 인기
내 것 내어주는 건 사실 쉽지않아
결혼 후 가정 이루면 닫히는 지갑
산술적 돈 계산만 하면 친구 떠나
베푼 지출 내역 많을수록 더 행복

2019082501001736000083111
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성당의 남자 청년들에게 제일 인기 있는 사람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입니다. 여자 청년들은 밥 잘 사주는 잘생긴 오빠를 제일 좋아하지요. 젊은이들뿐이 아닙니다. 칠십이 넘은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지갑을 잘 여는 사람이 제일 인기가 좋습니다. 밥을 사준다는 행동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선 내 것을 준다는 기부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 것을 내어주는 건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쉽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을 비롯해 주변을 잘 살펴보면 가진 것을 움켜쥐고 끌어안기 바쁠 뿐, 여간해서는 선뜻 내놓지 않는 것이 보통의 모습입니다. 나 혼자 사는 것도 너무 힘겨워 작은 것 하나 나눌 여유가 없다는 사고가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가족조차 나누며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혼 전에는 손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용돈을 주기도 하고 사정이 어려운 형제가 생기면 없는 형편에서도 서로 돕곤 하지만, 결혼으로 각자 새로운 가정을 이루면 돈 지갑이 닫히기 시작합니다. 부모가 유산이라도 좀 남기면 변호사 비용을 들여서라도 제 것을 챙기기에 안달하지 먼저 나서서 양보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럴 때 유독 공평한 것이 정의라고 강조합니다.

천주교 사제로서 암으로 투병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분들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한결같이 깨닫는 것은 생명의 소중함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간 서로 사랑하며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소중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아서 보고 싶은 사람도 많고 해주고 싶은 말도 많은데, 하나같이 바쁘고 부담스럽다는 핑계로 피하기만 합니다. 가끔 안부라도 묻는 사람이라곤 병자 방문이라는 성당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찾아주는 성당 신부가 고작입니다. 그러다가 투병생활이 길어지면 가족마저 떠나고 돈 주고 고용한 간병인만 남고 맙니다.

어느 환우 분의 말씀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꺼져가는 생명 하나만 겨우 쥔 채 깨달은 것은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건 오직 나 자신뿐이었습니다. 살면서 누군가를 진정 사랑했더라면, 그래서 내가 가진 걸 함께 나누었더라면 그도 기쁘고 나도 기뻤을 텐데 나는 왜 이렇게 혼자 외롭게 살아왔을까요? 가족조차 나 중심으로만 사랑했지 그들이 원하는 사랑을 주지 못했습니다. 너무 외롭고 쓸쓸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처절히 후회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00세 시대'라는 보험회사의 선전 문구에 너무 매몰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100세 시대를 준비한다며 50세부터 남은 50년의 생활비를 저축하고 노후를 위협하는 지출은 절대 할 수 없다는 삭막한 셈법으로는 친구에게 밥 한번 사기 어렵습니다. 병문안을 가서 봉투를 전하기란 더욱 어렵습니다. 모처럼 오랜 친구끼리 가진 모임에서 식사비용으로 회비를 내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회비 내기도 어려운 친구들은 점점 모임에서 사라집니다.

돈을 산술적으로만 계산하면 친구가 떠나갑니다. 그러나 돈을 마음의 크기로 계산하면 친구들이 모입니다. 우선 마음을 열고 친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친구를 만나서 그가 아픈지, 기쁜지, 외로운지 살펴야 합니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다 보면 밥 살 일이 자연스럽게 생기겠지요. 어느 순간에는 내가 얻어먹을 날도 있을 겁니다. 서로 챙기고 사랑해주는 관계 속에서 돈은 수단일 뿐 결코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인생을 너무 산술적 계산에 맡겨두어선 안 됩니다. 숫자로 따질수록 친구는 사라지고 결국 외로움 속에 홀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통장의 잔고가 여생의 행복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생명과 재물은 절대 한 세트가 아닙니다. 세상에 마지막 인사를 고하는 순간 내 곁에서 울어줄 친구는 통장 잔고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생의 행복은 친구에게 베푼 지출 내역이 많은 사람에게 더 유리합니다.

/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홍창진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