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현해원 '해파리의 밤' ②

경인일보

발행일 2020-01-02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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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파랗다 못해 아득했던 캄캄한 바다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것
우주에서도 외형 그대로 그저 부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잠시 '2'에 겹쳤던 시침 분침… 시곗바늘이 다시 겹쳐지려면 시간이 필요해
새파란 해파리가 내가 모를 곳에서 발광했다. 달도 없는 지독히 어두운 밤…

윤을 생각하면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기 전에 먼저 바다 냄새를 맡았다. 후각은 언제나 시각을 앞질렀다.

 

언젠가 우리는 함께 자연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다. 한밤중에 잠이 오지 않아서 무심코 틀었던 텔레비전에서 봤던 것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바다 깊은 곳의 영상이 재생되고 중후한 목소리의 외국 성우가 담담하게 내레이션을 읊었다. 

 

영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바닥을 닮은 목소리가 영상의 분위기와 꽤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큐멘터리 속 심해의 생물들은 모두 기괴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물고기들과는 너무도 다른 생김새가 이질적이면서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내가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무렵, 나를 보고 괴물이라고 놀리던 남자아이가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파랗다 못해 캄캄한 바다는 너무나 아득했고, 바다가 아니라 마치 우주의 한 공간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것은 해파리밖에 없었다. 수압 때문에 뒤틀린 외형을 가지게 된 다른 생물들과 달리 해파리는 원래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카메라가 바다를 부유하는 해파리의 모습을 오래도록 담았다. 

 

영상 하단에는 해파리는 지나치게 유연해서 외형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자막이 흘러갔다. 나는 그때 해파리는 어떤 장소에서도, 심지어 우주에서도 그 외형 그대로 그저 부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다큐멘터리는 곧 끝났고 곧이어 쇼핑 호스트가 나와 세라믹 냄비를 광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텔레비전을 끈 후에도 윤은 계속 빈 화면을 보고 있었다. 문득, 윤의 까만 눈동자에 비친 전등의 불빛이 마치 해파리 같다는 생각을 했다.

보름 후, 윤의 어깨는 해파리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무척이나 유연해 보이는 해파리였다. 그러나 어쩐지 윤의 해파리는 바다를 떠다니는 게 아니라 허공에 내던져지던 모습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심해생물에서 나를 발견했듯, 윤도 해파리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윤의 해파리를 발견할 때마다 그것이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윤의 유골을 가족들에게 돌려보내 주기로 하고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윤의 휴대폰의 전화번호부를 보는 것이었다. 윤의 흔들림의 원인이 가족이라면 그 가족을 찾으면 윤도 흔들림을 멈출 것 같았다. 

 

경찰은 개인정보 보호를 운운하며 윤의 가족에 대해서는 일절 말해 주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윤의 휴대폰에는 많은 이름들이 저장되어 있었지만 그중에 어떤 번호가 윤의 가족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윤의 가족의 이름은커녕 그녀에게 오빠나 동생이 있는지도 몰랐다. 막막했다. 나와 윤의 유일한 교집합이라고는 이전에 짧게 근무했던 잡지사뿐이었다. 

 

무작정 잡지사에 찾아가 윤의 기사가 실린 잡지를 받았다. 대부분 인터뷰 대상자의 사진이 실려 있었지만 윤이 같이 찍힌 사진도 간간이 보였다. 잡지에 실린 윤의 얼굴이 유독 해사했다. 

 

언젠가 내가 찍었던 사진이었다. 눈을 가늘게 휘며 미소 짓고 있는 윤의 모습이 낯설었다. 내게 윤은 언제까지나 흐린 눈을 한 모습으로 기억될 것 같았다.



커피가 썼다. 쓴맛을 없애 보고자 스푼으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크게 떠먹었다. 뭔지도 모를 아포가토를 시킨 게 문제였다. 

 

메뉴판에서 적당히 커피인 줄 알고 골랐을 뿐이었다. 설마 쓴 커피와 아이스크림이 같이 나올 줄은 몰랐다. 아이스크림 위에 커피를 끼얹어 한 스푼 크게 떠먹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같이 먹어도 지나치게 쓴 에스프레소 탓에 혀가 아렸다. 맛은 지극히 단순했다. 달콤하고, 썼다. 

 

그때 누군가 내가 앉아있던 자리로 다가왔다. 왜소한 체격의 여자였다. 언젠가 윤이 인터뷰했던 민영이라는 사람이었다. 북한에서 탈출하면서 경험했던 일을 얘기하며 눈물을 쏟던 모습이 유달리 기억에 남았다. 민영이 조심스레 내 맞은편에 앉았다.

내가 만난 건 민영만이 아니었다. 나는 잡지를 보고 윤이 인터뷰했던 사람들에게 연락해 윤에 대한 것을 물었다. 나는 윤과 많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윤은 내게 말 하나를 부적처럼 붙여줬지만 내가 윤에게 그러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윤이 인터뷰했던 사람들이 더 많은 대화를 나눴을 것이다.

 

윤은 타인의 말을 이끌어 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사람 중에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민영을 비롯해 많은 사람을 만났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과 접한 건 처음이었다. 낯선 사람 앞에서 때때로 혀가 굳어지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잘 버텼다고 생각한다. 나는 참을성 있게 얘기를 들었지만 윤에 대해서 건질 수 있었던 것은 별로 없었다. 

 

윤은 충실한 인터뷰어였고, 언제나 타인의 말을 이끌어내는 데에 집중했다는 걸 실감했을 뿐이었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윤은 전부 다른 사람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을 주는 열정적인 사람이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외로워 보여서 그녀를 위로하고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게 됐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언젠가 남들의 눈도 신경 쓰지 않고 윤의 앞에서 크게 울었던 사업가를 만나기도 했다. 그는 윤의 소식을 듣자마자 황망한 얼굴로 말을 더듬다가 끝내 눈물을 보였다. 

 

처음 그들에게 연락했을 때만 해도 그들이 모두 윤을 기억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단 삼십분, 기껏해야 몇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을 뿐인 상대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단 한 번 만났을 뿐인 인터뷰어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윤의 촉수에 닿았던 적이 있었다. 윤이 내게 그랬듯, 그들에게도 부적 같은 말을 붙여준 것일지도 모른다.

맨발로 걷는 집은 어딘지 낯설었다. 옷장에서 닥치는 대로 양말을 꺼냈다. 여러 개 겹쳐 신은 탓에 발이 답답했지만, 한결 걷기 쉬워졌다. 

 

윤을 만나고부터 부드러워진 내 발바닥은 아직도 단단해지지 못했다. 선반에 얹어둔 윤의 유골단지를 바라보았다. 

 

밀봉된 하얀 도자기 안에서 어렴풋하게 바다 냄새가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이 방에서는 여전히 윤의 냄새가난다. 느리게 움직이는 시곗바늘을 쳐다봤다. 

 

나란히 2를 가리키고 있던 시침과 분침이 잠시 겹쳐지는가 싶더니 이내 떨어졌다. 시곗바늘이 다시 겹쳐지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 윤과 사라진 슬리퍼에 대해 생각했다.




민영에게서 다시 연락이 온 것은 그녀를 처음 만나고부터 몇 주가 더 지나서였다. 

 

벌써 히터를 세게 틀어둔 카페 내부 탓에 자꾸만 땀을 훔쳐야 했다. 도톰한 모자 안에서 머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는 이마에 엉겨 붙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차가운 커피를 한 번에 들이마셨다. 

 

더운 카페와 달리 오늘따라 유난히 마음이 선득했다. 그때 멀리서 민영이 카페에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모자를 한 번 더 깊게 눌러썼다.

"동생이 있다고 했어요."

민영이 내게 낡은 사진을 한 장 보여주며 말했다. 귀퉁이가 조금 잘려나간 사진에서 퀴퀴한 냄새가 훅 풍겨왔다. 사진에는 지금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민영이 어린 남자애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민영이 그녀의 동생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민영의 동생의 이름은 만석이었다.

 

만석꾼이 되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했다. 이름의 무게와 다르게 만석이라는 남아 아이는 해골처럼 말라 있었다. 볼이 움푹 들어간 얼굴이 마치 해골 같았다. 무심코 모자 밑에 숨겨져 있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주먹 하나는 푹 들어갈 두상이 만져졌다.

민영은 동생을 남겨 두고 탈북했다고 했다. 가족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고 동생의 안부는 알 수 없었다. 만석이라는 이 아이는 만석꾼이 됐을까. 

 

가족도 없이 혼자 남은 아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그다지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것을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민영은 무슨 일이 있어도 동생을 데리고 나올 걸 그랬다며 심하게 자책했다. 내가 지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듯, 윤 역시 민영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을 것이다. 

 

윤은 그때 딱 한 번 자신을 드러냈다. 윤에게도 집에 두고 온 남동생이 있었고, 남동생의 이름은 민영의 동생과 많이 닮아 있었다. 

 

윤을 자극한 것이 남동생이라는 존재일지, 하필이면 그 이름이 비슷했기 때문일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할 수 없었다. 그것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윤은 이곳에 없었다. 

 

하지만 민영에게도 어떤 촉수가 있다는 것은 가늠할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그 촉수는 유려하게 윤을 꿰뚫었다. 그 순간 윤은 뭔가를 흘렸다. 윤이 흘린 감정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윤의 동생 이름은 민석이었다. 그는 인천의 작은 횟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윤의 휴대폰에는 수많은 민석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지만 윤과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윤의 유골단지를 안고 광역버스에 몸을 실었다. 유난히, 오늘따라 버스가 덜컹거렸다. 나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유골단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손에 잔뜩 힘을 주어야 했다. 멀리서 걸어오는 민석을 보자마자, 단숨에 그가 윤의 동생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민석은 윤과 전혀 다른 얼굴을 갖고 있었다. 윤처럼 쌍꺼풀이 있지도 않았고 하얀 피부를 갖고 있지도 않았다. 민석은 누군가 아무렇게나 깎아 만든 나무 조각처럼 투박한 인상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와 윤이 아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왜 나보다 머리 몇 개는 큰 키의 남자에게서 윤에게 느꼈던 감정을 느끼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민석이 가까이 올수록 그런 느낌은 더욱 강해졌다. 민석이 근처에 오자 그의 몸에서 풍기는 바다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풍기는 분위기도 윤과 상당히 비슷했다. 외양이 닮은 것은 아니었다. 몸을 트는 각도나 보폭의 정도, 냄새의 질감 등 정확히 짚어 말하기 힘든 것들에서 윤을 떠올리게 했다. 역시 윤의 동생이구나 싶었다.

"그때는 저희 어머니가 제 전화를 받으셔서……. 놀라게 해드린 점 죄송합니다."

민석이 난처한 얼굴로 사과했다.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민석은 몇 번이고 계속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체념이 묻어 있었다. 유골단지를 들고 카페에 들어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와 민석은 벤치에 앉기로 했다.

처음 민석의 전화를 받은 것은 그의 엄마였다. 내가 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는 이미 예전에 싫다고 하지 않았냐며 소리를 질렀다. 

 

그 반응에서 그녀가 이전에도 윤에 대한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높고 날카로워 졌다. 

 

당황한 마음에 일단 전화를 끊으려는 차에 민석이 전화를 바꿨다. 그가 서둘러 자리를 옮긴 듯 여자의 목소리가 아득해졌지만, 그 짧은 사이에 따개비처럼 귀에 달라붙은 목소리는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뛰어온 탓인지 민석의 얼굴에서 땀이 흘렀다. 인천은 서울보다 기온이 더 높았다. 민석이 얇은 니트 소매를 조금 걷어붙였다. 민석의 팔에는 날뛰는 횟감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는 보기 힘든 생채기가 여럿 나 있었다. 

 

피딱지가 맺혀 우둘투둘해진 생채기도 있었다. 그가 멋쩍은 얼굴로, 어머니가 치매기가 조금 있다며 변명처럼 읊조렸다. 그녀는 윤의 일을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불안정해지는 듯했다. 

 

애초에 민석이 아닌 내가 인천까지 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민석은 도우미 없이 오랜 시간 집을 비울 수 없었다. 날씨는 맑았지만 바닷바람은 생각보다 매서웠다. 모자가 바람에 벗겨지지 않도록 몇 번이고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그는 내게 많은 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주제를 빙빙 돌리며 변명처럼 몇 어절씩 내뱉었을 뿐이지만, 모든 것은 지극히 단순했다. 그녀는 민석의 엄마였지만 윤의 엄마는 아니었다. 

 

병약한 윤의 엄마는 윤을 끝까지 책임질 수 없었으므로, 이제는 죽은 그들의 아빠가 아내가 있는 집으로 윤을 데려왔다. 윤은 그녀의 엄마와 아주 많이 닮았다고 했다. 

 

그 이상은 듣지 않아도 윤의 처지를 대강 짐작하게 했다. 민석의 엄마는 윤을 좋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그녀의 시간이 어디에서 멈췄는지는 모른다.

 

민석의 팔에 그어진 생채기가 가로등에 반사되어 비늘처럼 번들거렸다. 아마도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련의 행동들에 권태를 느끼기에는 그에게도 가족의 무게는 무거웠을지도 모른다.

 

민석의 어조에서 윤에 대한 원망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윤은 아무런 짐도 없었기에 흘러갈 수 있었지만 민석에게는 그의 따개비 같은 엄마가 있기에 흘러갈 수도 없다. 역시, 그는 윤과 많이 닮아 있었다.

예쁜 여자였을 것이다. 윤을 아주 많이 닮았다는 이름 모를 여자를 떠올렸다. 예쁘고 청초하고 유부남의 아이를 낳아 기른 여자를. 그래서 그저 떠다니다 그대로 흘러갔을 모습을 상상했다. 윤의 흔들림은 그의 엄마로부터 내려온 것이었다.

"누나가 집에 오고 싶어 할까요."

민석이 한숨처럼 내뱉었다. 모든 흐름은 지극히 단순했다. 나는 언제나, 자기 자신의 정의하지 못하는 것은 선천적인 흔들림을 동반한다, 고 줄곧 생각했다. 

 

내가 윤의 말에 의지해 스스로의 몸에 부적을 붙였듯, 윤의 가족을 찾아 그녀의 흔들림의 근원을 알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아니였다. 이미, 모든 것은 박제되어 있었다.



돌아오는 내 손에는 여전히 묵직한 유골단지가 들려 있었다. 이번에는 버스가 아닌 택시를 탔다. 코트 주머니에는 5만원짜리 지폐 두 장이 들어있었다. 

 

먼 거리를 오게 해 미안하다며 민석이 내 손에 쥐어 준 것이었다. 나는 굳이 그 돈을 사양하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높은 상가 건물 앞을 지나갔다. 울퉁불퉁한 지면 때문에 차가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언젠가 이곳에 윤의 모양대로 하얀색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테이프는 자동차 바퀴에 휘감겨 어디론가 휩쓸려갔을 것이다. 근처 휴대폰 대리점의 풍선 인형이 혼자 춤추고 있는 게 보였다. 누구도 풍선 인형을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쳐갔다. 택시는 계속 집을 향해 굴러갔다. 

 

가로등 하나를 지났다 여전히 방치되고 있는지 아직도 불이 나간 채였다. 늘 파라솔 아래 취객이 앉아 있고는 했던 편의점 앞도 지나갔다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라면을 치우고 있었다. 

 

원 주변에 설치된 녹슨 헬스기구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날씨가 추워진 탓인지도 모른다. 잠깐 산책이라도 나온 듯 편한 옷을 입은 여자 한 명이 종종걸음으로 헬스기구 앞을 지나갔다. 여자는 슬리퍼를 신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집이었다.


계단을 올라갔다. 오래 걸은 탓에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다리 근육이 당겨왔다. 내일은 근육통이 올 것 같았다. 유골단지를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 손아귀에 더 힘을 주었다. 

 

창문을 열고 간 탓에 방안에는 싸늘한 냉기가 돌았다. 캄캄했다. 불을 켜려고 벽을 더듬다가 실수로 문 근처에 있던 빨래통을 발로 걷어찼다. 

 

토사물처럼 쏟아진 옷들은 모두 내 것이었다. 땀에 젖은 양말을 벗어 빨래통에 넣었다. 굳은살이 붙었는지 발바닥이 조금 단단했다.

윤이 슬리퍼를 신고 사라진 후 여러 개의 양말을 겹쳐 신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문득 이 습관이 오래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지 못해 산다던 윤을 오래도록 떠올렸다. 윤의 흔적을 더듬어 흔들림의 시작점을 알아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엇 하나 단순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내게 부적처럼 붙은 말을 기억했다.

 

금방이라도 다시 돌아올 사람처럼 나가던 윤의 뒷모습은 여전히 내 기억속에 선연했다. 

 

그렇게 나갔던 것처럼, 훌쩍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윤을 상상한다. 윤은 계단을 올라가며 녹슨 손잡이를 잡는다. 높은 계단 탓에 숨을 몰아 쉴 때마다 날갯 죽지의 해파리가 한 번씩 너울거린다. 

 

윤이 돌아올까. 아니면 또 다시 어딘가로 흘러가려고 할까. 흐르고 흘러 초인종 없는 현관문을 두드릴까. 나는 그런 상상을 했다.

새파란 해파리가 내가 모를 곳에서 발광했다. 달도 없는 지독히 어두운 밤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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