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1)치유의 부재-트라우마]또다른 유가족의 '비극

갑작스러운 이별… 파도처럼 밀려온 '가장의 책임감'

세월호 바라보는 유가족

동생 몫 '사명감' 할머니까지 돌봐야
추억의 물건으로 '옛 기억'만 떠올려
"6년이 지나… 또다른 피해를 막아야"

지난 20일 안산 중앙역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세월호 참사 유가족 김모(25)씨는 메고 온 가방에서 뽀얀 먼지가 앉은 게임기와 CD 2장을 꺼냈다.

하나는 아버지, 다른 하나는 동생과 어린 시절 즐겨 한 게임이라고 했다. 철 지난 게임이지만 그에게는 아버지와 동생에 대한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애틋한 물건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당신 삶의 변화는 어떠한 것이었습니까?" 그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안산 단원고 학생이었던 한 살 터울 동생은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났고, 지난해 12월에는 아버지마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김씨는 이제 한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 됐다. 그와 동생은 집안 사정 때문에 학창 시절 아버지와 꽤 오랜 기간 떨어져 지냈다고 한다. 동생이 떠난 뒤 아버지가 더 깊은 슬픔에 빠졌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세월호 6주기 선상추모식14
세월호 참사는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해 승객 304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며 국가 재난 안전 시스템의 경종을 울린 사건이다. 지난 12일 선상추모식에 참석한 한 유가족이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앞 사고 지점을 향하던 중 목포 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를 바라보고 있다. /기획취재팀

작은 아들이 수능시험을 보지 못한 채 떠난 걸 안타깝게 여겨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을 치르기로 마음먹은 아버지였다. 자격증을 딴 이후에는 영상 편집 기술을 배워 유튜브를 하고, 블로그도 운영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아버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일주일 전쯤 온 가족이 만난 자리가 마지막이었다.

아버지의 빈 자리는 컸다. 김씨에게는 동생의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다짐에 더해 이제는 할머니를 돌봐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큰 파도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동생은 내가 살아가면서 어려울 때 서로 도울 수 있는 '인생의 전우'였어요. 아버지는 '인생의 선배'라고 해야 할까요. 인생 선배로서 물어볼 것도 많은데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떠나 슬프면서도 화가 나요."

그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길 바란다고 했다.

"6년이란 시간이 지났어요. 지금 중요한 건 세월호 참사로 인한 또 다른 피해를 막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 입으로 하게 될 말일 줄은 몰랐어요. 세월호를 잊지 말았으면 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이 모여 여론이 되고, 그 힘이 다시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거라고 믿어요."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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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
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
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
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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