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1)치유의 부재-트라우마]인터뷰·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분노만 키워온 공감의 격차… 명예 회복돼야 희망도 생겨"

경인일보

발행일 2020-04-27 제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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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투쟁, 나이 드는 유가족… 트라우마 본격적 발현 안돼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 위해 참사 새롭게 정의해야할 시점


세월호 기획기사 관련 인터뷰 트라우마 연구자 박지영 교수8
두 유가족의 이야기는 '트라우마'라는 공통 분모로 귀결된다.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슬픔에서 비롯된 정신적인 고통이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졌다.

누군가는 유가족들에게 "그 정도면 됐다"며 일상으로 복귀할 것을 주문한다. 이들의 말처럼 유가족들의 트라우마는 충분히 치유된 것일까.

"세월호 참사 이후 당신 삶의 변화는 어떠한 것이었습니까?"

동생에 이어 아버지까지 잃은 김씨에게 던진 이 질문을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 등에게 한 연구자가 있다. 그날의 시간에 갇힌 피해자들의 삶을 관통하는 물음이다.

이들은 건강 상태, 경제 여건, 사회적 관계 등 자신이 오랜 기간 쌓아온 것들이 모래성처럼 부서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2017년 11월부터 2018년 3월까지 5개월간 참사 피해자를 대상으로 인터뷰 기반의 연구를 진행했다.

'공감 격차'는 이 연구의 중요한 키워드였다. 캐나다의 인간공학자 캐런 메싱은 그의 저서 '보이지 않는 고통'에서 이 말을 썼다.

가령 일하기 위해 어깨를 반복적으로 써야 하는 노동자가 통증을 느껴 병원에 갔을 때 "어깨를 쓰지 말라"고 의사가 처방하는 상황을 일컬어 공감 격차라고 부른다. 의사는 증상만 보았고, 증상이 나오기 전까지 환자의 삶을 보지 못한 것이다.

박 교수도 외부인의 시각이나 전문가의 진단 차원의 관여에서 벗어나, 먼저 세월호 유가족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연구를 시작했다.

"우린 모두 증상만 봤어요. (트라우마가) 어디에서 왔고, 왜 왔는지 관심이 없었어요. 진상규명을 하지 않고, 운이 없어 죽은 걸로 만든 국가에 대한 좌절감이 생각보다 컸어요.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을 해줘야 유가족들도 희망이 생겨요. 희망을 주지 않고 치유만 하려고 하는 것도 공감 격차라고 할 수 있죠."

박 교수는 유가족들이 느끼는 이른바 '사회적 통증'에 주목한다. 가족과 동네 이웃, 직장 동료, 친구 등 가까운 이들(1차 지지 체계)과의 관계가 끊기는 사회적 고립을 체감했다.

자아 정체감도 흔들렸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유가족 신분,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채 먼저 세상을 떠난 '희생자 엄마·아빠'로 살아가는 경험, 진상규명을 위해 싸웠던 시간 등 그들은 '아픈 투사'가 되어 갔다.

"참사 초기 유가족들이 느낀 건 상실로 인한 분노와 억울함이었어요. 그 대상이 국가잖아요. 손에 잡히는 대상이 아니란 말이에요. 시간이 지나는 데도 진상규명이 안 되니까 그땐 자기 자신을 비난해요. 이 시점부터 주변 사람들과 고립되기 시작하죠. 한 유가족의 친척은 본인 아이가 고3인데, 사촌이 죽은 걸 알면 입시에 문제가 있을까봐 알려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어요. 많은 부모님이 본인 형제나 가족과도 관계가 멀어지는 경험을 해요."

그들도 언제까지나 '투사'로만 남아 있을 수는 없다. 유가족, 특히 부모들의 '나이 듦'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박 교수는 이를 '생존 기반의 흔들림'이라고 봤다. 참사 당시 40대 초반이었던 부모들은 어느새 50대가 됐다. 지독한 슬픔 혹은 처절한 싸움에 전념하느라 돌보지 못했던 주변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 곧 다가올 것이라는 분석이다.

"6년간 기나긴 투쟁을 하면서 부모님들도 나이를 먹었어요. 이젠 재취업도 어렵고, 긴 싸움을 하면서 건강도 잃었죠. 몸도 아프고, 정신적으로 우울함이 찾아오기 시작하는 단계예요. 모든 상황이 종결되면 혼자 청소년기를 보내고 성인기를 맞은 남은 자식들에게도 눈이 가면서 또 다른 미안함과 슬픈 감정을 느낄 거예요."

박 교수는 최근 유가족 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아주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몇몇 연구에서 유가족들의 사회 활동을 '외상 후 성장'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하기도 해요. 저는 그걸 말할 시점이 아니라고 봐요. 외상 후 성장이 되려면 아이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충분한 애도를 통해 사회가 아닌 자신에게 눈을 돌려야 해요. 본인의 상처가 나아야 성장이 되기 때문이죠. 저는 더는 규명할 게 없어지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부모님들이 그동안 놓쳐버린 많은 것들에 대한 상실을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유가족 부모님들의 남은 삶을 살피는 종단 연구를 계속 하겠다는 것도 그런 이유예요."

박 교수는 유가족들이 겪는 트라우마가 본격적으로 발현되지 않았음을 거듭 지적했다. 그러면서 6년이 지난 지금 세월호 참사를 새롭게 정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2020년의 시각에서 6년 전 세월호의 사회적 의미를 다시 정의하면, 우리 사회가 유가족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돼요. 유가족들은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죠. 그들도 곧 60대를 바라봐요. 참사 이후 자살을 하거나 알코올 중독, 이혼 등 어려움을 겪은 분들이 있었고, 동료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견뎌 온 유가족들이 많아요. 이들의 진상규명과 안전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헛되지 않고 명예로운 일이었다고 인정해야 해요. 국가와 사회가 이런 희망을 줘야 남은 가족들도 끝까지 살아갈 힘을 얻을 거예요."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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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
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
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
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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