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가 코로나 19 이후의 도시와 건축의 변화에 관한 의견을 이야기하고 있다. |
위치만 달라졌을 뿐 공간체계 같아
1·2기와 차이 미미… 베드타운 양산
경인 구도심 대부분 '서울 복제품'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교육도 변화
전교생 개념 시대 맞춰 달라질 수도
필수 기능만 하는 '위성 학교' 고민
테라스등 집의 실내공간 요구 증가
지역 '빈 시설' 사회 요구따라 이용
도시와 건축에 대한 참신한 해석으로 주목받은 건축가 유현준(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은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를 '변화의 기회'라고 강조한다.
프랑스 파리가 장티푸스와 콜레라 등 물을 매개로 전파하는 전염병 예방을 위해 하수도를 설치해 전염병에 강한 매력적인 도시로 탈바꿈한 것처럼, 한국의 도시도 매력을 갖출 기회이자 우리 생활을 둘러싼 공간과 시설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5일 그를 직접 만나 코로나19 이후의 도시와 건축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아니다. 위험한 시기가 지나면 예전과 똑같이 돌아갈 것이다'라는 의견이 모두 나옵니다.
"12시로 향하던 방향이 3시나 6시 방향으로 급격히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분명히 2시 정도로는 갈 거예요. 왜냐하면 한국이 근대화된 게 50~60년 됐다고 하면 그동안 한 번도 의구심을 지니지 않았던 데에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됐어요.
'회사나 학교를 가지 않아도 일하고 공부할 수 있구나'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죠. 왜 3시나 6시가 아니라 2시 방향으로 가냐 하면, 본래 12시로 밀어왔던 힘, 본능적으로 푸시(push)하는 힘이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바뀌지는 않고 방향이 수정될 것 같습니다."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가 코로나 19 이후의 도시와 건축의 변화에 관한 의견을 이야기하고 있다. |
- 변화의 중심에 학교가 있습니다. 재택근무와 원격수업으로 회사도 집도 변했는데, 학교는 어떻게 바뀔까요?
"학교수업이 온라인 원격수업으로 대체되고 있지만,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학교는 낮 시간 동안 아이를 맡아주는 탁아소 기능, 공동체를 체험하게 하는 기능이 있는데 이런 부분은 온라인으로 대체가 안 됩니다.
그런데 지금 학교의 모습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학교의 간격이요. 초등학교는 몇㎞ 간격으로 떨어져 있고, 그게 반경 2~3㎞ 내에 있는 마을을 '커버'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이 좋을지 하나의 초등학교를 10개로 쪼개는 게 좋을지 생각해 보면 돼요.
많은 사람이 모일 때 전염병이 한 번에 퍼질 수 있는데 우리 사회에 학교 같은 대규모 집합시설은 별로 없습니다. 어찌보면 회사보다 커요. 100명 넘는 회사는 많지 않지만, 학교는 동네마다 몇백 명씩 모여 있잖아요.
'전교생'이란 개념을 굳이 사용해야 하는지도 의문입니다. 우리 시대의 개념과 다른 세대의 '전교생' 개념이 다를 수 있어요.
아이를 봐주고 멘토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300명이 다니는 학교를 얼마든지 쪼갤 수 있습니다. 세틀라이트(satellite·위성) 스쿨 같은 거죠. 작은 학교를 여러 군데 만들어서 필수적인 기능만 할 수 있게 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교육이란 게 누군가 '학교는 9시까지 와야 하고, 하교는 4시에 하는 거야', '한 선생님이 한 교실을 담당하자'는 걸 정하고 그런 것에 의해 100년 정도의 교육이 결정된 것이거든요.
어떤 '라이프스타일'로 사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이 시점에 이런 걸 고민하고 구상하는 사람이 있다면 향후 100년에 영향을 미치게 돼요."
스머프 마을 같은 '위성 학교' 상상도. |
- 도시 디자인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지금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도시들을 만들어도 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앞으로 도시계획을 할 때는 코로나19로 발생한 변화를 감안해야 합니다. 3기 신도시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3기 신도시는 위치만 달라졌을 뿐 공간 체계가 같습니다.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진 게 없어요.
전면 재검토해야 하고, 더 이상 그런 식의 신도시 계획을 세우는 건 그만둬야 한다는 게 제 입장입니다. 베드타운을 만드는 방식인데, 사실 1· 2기 신도시와의 차이도 모르겠어요. 시기의 차이일 뿐인 것 같습니다. 자동차 회사가 신차를 내놨는데 보닛과 그릴만 바꾼 수준인 거죠.
지금 도시 계획은 몇백만 명이 아침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동시에 이동하는 걸 고려해서 짜여졌는데 이런 부분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경인 지역에 있는 구도심이라 할 만한 곳들은 대부분 서울의 카피(copy·복제품)된 모습이에요. '오리지널(원본)'이 있고, '카피'가 있다면 오리지널에 가지 카피에 머물지 않을 겁니다. 로컬 만의 매력적인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하고, 3기 신도시에는 '매력포인트'가 없으니 다른 방식의 도시 계획이 필요해요."
- 집의 변화도 나타날까요?
"벌써부터 건축 의뢰하시는 분 중에 실내 공간을 키워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예전엔 테라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 잘 안 듣더니 지금은 테라스가 꼭 필요할 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코로나19로 집 안에만 머물러 본 경험 때문이에요.
침실을 생각해보면 쉽습니다. 침대가 침실의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요. 예전에 요와 이불로 생활할 때는 개어 놓으면 그 자리가 밥 먹는 공간이 됐잖아요. 지금은 침대라는 가구가 들어간 자리는 하루 8시간만 사용하는 죽은 공간이 됩니다.
예전에 낮에 밖에서 생활할 때는 그 공간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집에만 있으니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접을 수 있는 침대, 가변형 침대 같은 걸 생각하게 됩니다. 실내에서도 야외를 볼 수 있는 테라스에 대한 요구가 많아질 거에요."
-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대규모 인구가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시설들, 예를 들어 크루즈터미널이나 컨벤션센터, 공연장은 어떻게 될까요. 사람이 모이지 않을 수 있는데 이 시설들은 사용을 못하게 되는 걸까요?
"도시의 빈 공간이나 비게 된 시설은 우리 사회가 필요로 했지만 만들지 못했던 도서관 같은 걸로 이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크루즈 여객선을 이용하지 못하게 됐다면, 그 시설은 물 위에 떠 있어서 완벽히 격리됐다는 게 특징입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병원으로 쓰기 적합한 거죠. 건강검진센터로 쓸 수도 있구요. 나머지 시설은 차차 이용 방법을 고려해봐야겠지만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은 역을 개조한 거고 루브르 박물관도 궁전이었던 곳이잖아요. 보물을 쌓아놓고 있다가 그냥 박물관으로 바꿔 쓰기로 한 거에요. 목적에 맞지 않아서 못 쓰는 게 아니라 시설이나 공간은 얼마든지 필요에 따라 용도를 바꿔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획취재팀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가 코로나 19 이후의 도시와 건축의 변화에 관한 의견을 이야기하고 있다. |
■ 유현준은…
▲ 1996.01 ~ 1996.12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아크 랩
▲ 2003.01 ~ 2005.02 리차드 마이어 아키텍츠
▲ 2005.03 ~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 2007.10 현준유아키텍츠 대표 건축가
▲ 2009.12 ~ 2010.12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교환교수
▲ 2010.10 한국현대건축 아시아전 초대작가
▲ 2013.04 ~ 유현준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
▲ 2019.04 스페이스컨설팅그룹 설립
▲ 2019.04 ~ 스페이스컨설팅그룹 대표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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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글 : 김성호·민정주차장, 신지영기자
사진 : 김용국부장, 김금보·김도우기자
편집 : 안광열차장, 장주석·연주훈기자
그래픽 : 박성현·성옥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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