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생 김영수

[58년생 김영수-베이비부머 이야기]인천 문학선수촌 영양사 이은신씨

소떡소떡 센스… 아들·딸뻘 선수들에 엄마손맛 '인싸(인사이더)'
통큰기사 인천시체육회 운동경기부 숙소 식당4
인천시체육회 문학 선수촌 식당에서 일하는 영양사 이은신(52·오른쪽에서 두번째)씨가 평소 여사님이라고 부르는 조리원 김명순·구정숙·김정자씨와 아들·딸처럼 대하는 정현경(시체육회 소프트테니스팀)·성혁제(인천시청 육상팀) 선수가 함께 추억으로 남길 사진 한 장을 찍었다. 2020.9.22 /기획취재팀

시체육회 직원들 "살 쪄서 걱정" 하소연
트렌드 잘 이해… 대회전에 과일도 챙겨
나이에 비해 동안 "젊은 친구들과 지내서"
은퇴자들 연락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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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솥밥을 먹으면 그게 가족인 거죠. 우리 선수들은 제게 아들·딸이나 마찬가지인 걸요."

인천시체육회 사무처 임직원들의 책상 위에 저마다 작은 손편지와 마스크 목걸이 선물이 놓였다. '내 이쁜 동생. 너가 있어서 난 지치지 않아. 고맙고, 사랑해….' 손편지를 받아든 직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선물로 받은 마스크 목걸이를 자랑삼아 보여준 노경우 시체육회 스포츠서비스부장은 "우리 전 직원들이 큰 위로를 받았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태풍 '하이선'이 물러가고 모처럼 화창한 가을 하늘이 펼쳐진 지난 8일 오후 1시께 인천시 남구 '문학 선수촌' 식당. 이곳에서 선수들의 삼시 세끼를 챙기는 영양사 이은신(52)씨가 손편지를 쓴 주인공이다.

이씨는 아들·딸뻘인 20대 젊은 선수들과 친구처럼 격 없이 지내는 소위 '인싸'('인사이더'의 줄임말, 주변인과 두루 잘 어울리는 사람)로 통한다.

인천시체육회 소프트테니스팀 정현경(26) 선수는 그런 이씨를 엄마처럼 대한다.

"늘 반갑게 먼저 다가와 우리를 맞이해 주세요. 엄마같이 다정하신 분이죠. 제가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낯을 많이 가렸거든요. 그런데 영양사님을 만나면서 성격도 많이 활발해졌고, 그 덕분에 부모님과도 더욱 친해졌어요. 옷 입는 의상 콘셉트부터 저랑 코드가 잘 맞는다니까요. 비대면으로 열리는 어느 마라톤대회에도 함께 출전할 예정이에요."(웃음)

이씨는 기업과 유치원에서 일하다가 2008년 6월 시체육회의 '식구'가 됐다. 올해로 강산도 변한다는 10년하고도 2년이 더 지났다. 선수촌 식당 밥을 먹어보면 일단 그 맛에 한번 놀란다.

영양사 이씨와 긴 세월 호흡을 맞추며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조리원, 일명 '여사님'으로 통하는 김명순·구정숙·김정자·장옥자씨의 손맛이 기막히다. 음식에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라면 그 맛에 숨어 있는 신선한 식재료에 또 한 번 놀랄 것이다.

여기서 점심을 먹는 시체육회 직원들은 "자꾸 살이 쪄서 걱정"이라고 하소연할 정도.

운동 선수들에게 '밥심'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하지만 20대 선수들의 젊은 입맛을 맞춘 영양 만점 식단을 짜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또 체중 관리가 필수인 체조, 복싱 종목 등의 선수들까지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이씨는 선수들에게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보면서 식단을 짠다. 그는 이따금 '짜파구리', '소떡소떡' 등 유행하는 메뉴를 선수들의 식단에 올릴 만큼 남다른 '센스'를 발휘하기도 한다.

인천시청 육상팀 성혁제(30) 선수는 이씨에 대해 "우리들의 인싸"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가 입단했을 때 선배들은 "영양사님을 어머니처럼 깍듯이 잘 대하라"고 했다.

성혁제 선수는 "영양사님은 친화력이 좋고, 젊은 세대들의 트렌드를 잘 이해하셔서 그런지 대화가 잘 통한다"며 "밸런타인데이 등 기념일이면 잊지 않고 손편지와 작은 선물을 건네시곤 한다. 대회 전에는 따로 과일이나 음료수를 챙겨주시는데,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감동하게 된다"고 했다.

나이에 비해 무척 동안인 것 같다는 말을 건네자, 영양사 이씨는 "젊은 친구들과 지내서 안 늙는 것 같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최근 친구에게 마스크 목걸이를 선물 받았다는 그는 두 아들에게 하나씩 사주려고 인터넷 쇼핑을 하던 중 운동하는 아들·딸들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가족같이 여기는 시체육회 식구들도 눈에 밟혔다. 그렇게 이씨는 정성스레 손편지와 함께 마스크 목걸이 선물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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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육회는 최근 인천시청 여자핸드볼팀에서 불거진 선·후배 간 갑질 논란과 일부 직원들의 불미스러운 일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이씨는 "코로나19 등으로 다들 지쳐 있는 것 같았다"며 "(시체육회) 회장님과 부장님들까지 고맙다고 연락을 해와 몸 둘 바를 몰랐다. 과분한 사랑을 받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운동 선수들은 대부분 30대가 되면 은퇴해 가정을 꾸리고 새 삶을 시작한다. 이씨는 "선수 생활을 마치고 결혼해서 아이를 데리고 놀러 오는 친구들도 있다. 가끔 잘 지내느냐는 안부 전화가 오거나 집들이 음식 장만을 위해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이 올 때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에 그에게 소통이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세계 최고령 부부(110세, 104세)로 최근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에콰도르 노부부 이야기를 꺼냈다.

"79년을 해로한 비결에 대해 그 부부는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이라고 했다네요. 가슴에 와 닿았어요. 또 며칠 전 이낙연 전 총리가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아프리카의 한 부족 말인 '우분투' 연설을 했는데, 소통은 바로 그런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요."

내년 초 문학 선수촌 신축공사가 시작되면 식당은 당분간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다.

영양사 '엄마'와 조리원 '여사님'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도 있다. 그는 경인일보의 인터뷰 요청을 받고 부담스러워 한참을 고민했다고 한다. "우리 여사님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진 예쁘게 잘 나오면 하나 보내주실 거죠?" (웃음)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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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글 : 임승재차장, 김준석, 배재흥기자
사진 : 조재현, 김금보, 김도우기자
편집 : 김동철, 박준영차장, 장주석기자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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