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도 따라 리스트화 된 기록부 확인… 고가 선물·현금 전달도
총판 대표 "영업 강요받아"… 본사측 "채무 부담 피하려는 핑계"
초·중·고교 교과서 점유율 1위 출판 기업인 천재교육의 총판(대리점)이 일선 교사를 상대로 자사 교과서 채택을 위한 부적절한 영업을 한 사실이 경인일보 취재 결과 확인됐다.
교과서 선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교사들의 리스트를 작성한 뒤 이들의 가족관계까지 파악하는 등 밀착 관리한 구체적인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7일 경인일보가 입수한 천재교육 A총판(현재는 폐업)의 영업 기록부에 따르면 이 총판은 관할 구역 학교의 교사들을 그간의 영업 활동에 기초한 친밀도를 바탕으로 A에서 C까지 등급을 매겨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자사 교과서 선정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우호적인 관계의 교사에게는 A등급을, 다른 출판사의 교과서를 선호하는 교사에게는 C등급을 부여하는 식이다.
A총판의 영업직원이 교사들과 접촉한 이후 수기로 작성한 자료를 보면 특정 교사가 과거 근무했던 학교, 집 주소, 자녀 수 등 개인의 신상과 관련한 내용이 고스란히 담겼다.
또한, 자사 도서 관련 설문조사를 해준 대가로 영화 티켓을 선물하거나 고가의 화장품 세트를 선물한 메모도 남아있다. 일부 교사의 이름 뒤에는 괄호 안에 '30', '50' 등의 숫자가 적혀 있는데, 이 총판의 대표였던 B씨는 경인일보에 "현금을 지급한 것으로 '50'은 50만원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 자료들은 2011~2013년께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제정 이전에 발생한 일이지만 대가성 금품을 받은 교사들의 실명이 자료에 직접 거론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교육계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B씨는 총판 운영 당시 천재교육 본사로부터 영업 행위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본사가 '교과서 정산금'을 약속(2019년 7월 5일자 1면 보도='학생 1인당 1만5천원' 천재교육 수상한 정산금)한 뒤 영업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B씨는 "본사가 약속한 수억원에 달하는 영업 비용을 보전받지 못해 피해를 봤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천재교육 본사 관계자는 "해당 총판의 일방적인 주장이며 채무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핑계"라고 반박했다. 본사 측은 현재 B씨에게 물품 대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문제는 이런 방식의 교과서 영업 행위가 아직 업계 관행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기존 국정도서였던 초등 3~6학년 수학, 사회, 과학 교과서가 오는 2023년까지 순차적으로 검정도서로 전환됨에 따라 벌써부터 출판사 간 영업 경쟁이 치열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 과정에서 부적절한 영업이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다.
경기도의 한 총판 관계자는 "김영란법 제정 이후 줄어든 편이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교사 상대 영업은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