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시 마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퀴어 문학 동아리 '무지개 책갈피' 회원 보배(왼쪽·활동명)씨와 다홍(활동명)씨가 팟캐스트 녹음에 앞서 경인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성 소수자 임을 밝히면 직장까지도 잃을까 걱정된다며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한국 사회에서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
"친구들 알지만 가족은 까맣게 몰라"
법이 차별 묵인할 때 문학으로 위로
"우리 방송 성감수성 높이길 바라"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이들이 성 정체성을 숨기도록 압박한다.
퀴어문학플랫폼을 표방하는 '무지개책갈피'에서 문학평론 팟캐스트 방송 '무책임라디오'를 진행하는 보배(32·활동명)씨도 이런 경우다.
보배씨는 "22살 무렵부터 친구들에겐 제가 성 소수자라는 사실을 이야기했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른다"며 "해고될까 하는 걱정에 직장에도 전혀 알리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2000년 방송인 홍석천씨가 자신이 게이임을 커밍아웃했다. 이는 성 소수자 관련 담론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됐다. 이듬해인 2001년엔 트랜스젠더 하리수씨가 광고 모델로 지상파 방송에 데뷔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보배씨는 "이성애자들은 연애 사실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직장을 잃을까 걱정하지 않는다"며 "성 소수자는 능력이 충분하더라도 성적 지향 때문에 해고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보배씨와 함께 '무책임라디오'를 진행하는 다홍(23·활동명)씨 역시 "군형법 제92조 6은 항문성교를 한 사람을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성 소수자에 대한 엄연한 차별"이라며 "지난해 인천퀴어퍼레이드에 갔을 때 일부 집단이 '동성애는 죄다,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라'며 제 몸을 밀쳐서 그 충격으로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법과 제도가 차별을 묵인할 때 이들은 문학에서 위로를 받았다. 보배씨는 지난 2015년 다른 성 소수자와 함께 퀴어문학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비영리단체 '무지개책갈피'를 창립했다. 지난해부터는 이 단체 회원 3명과 퀴어문학을 평론하는 팟캐스트 '무책임라디오'를 진행하며 청취자를 만난다.
모두 30회 진행된 이 방송은 회당 누적 조회수가 1천회가 넘는 등 반응이 좋아 지난달엔 첫 광고를 받기도 했다.
퀴어 당사자의 관점으로 문화 콘텐츠를 비평하는 것이 무기다. "여성의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지만 전형적인 '메일 게이즈'(남성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시선) 양상을 보이고 있다"(제29화 '이제 해도 될까요, 아가씨?' 중)와 같은 비평은 퀴어 청취자에겐 공감을, 비퀴어 청취자에겐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배씨는 "대놓고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이 드물어졌다고 해도 무례한 발언들은 일상에 여전히 존재한다"며 "수다를 엿듣는 것 같은 우리 방송이 한국 사회의 성적 감수성을 높이길 바란다. 이런 변화가 성 소수자가 해고될 걱정 없이 직장에서 커밍아웃하는 시기를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
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
사진 : 김도우기자
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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