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②군포 재궁태권도장]태권도장을 지키기 위해 경비원이 되다

작은 키 때문에 시작한 태권도, 무한 사랑으로 평생의 길이 되다
어려움에 빠진 태권도장 지키기 위해 경비원 부업…"태권도 정신 부끄럼 없다"
아들, 딸 이어 사위와 손주까지 태권도의 길 꿈꾸는 '태권도 가문'

배재흥 기자

입력 2020-12-24 14:4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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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

#마약은 끊어도, 태권도는 못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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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궁태권도장 이영남 총관장. 도복을 입은지 벌써 45년이란 오랜 지났지만 그의 태권도 사랑과 열정은 초심 모습 그대로 인듯 했다. 2020.12.24 /디지털콘텐츠팀

여러분은 '태권도'하면 어떤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초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 여럿과 함께 태권도장으로 향했던 어린 시절 모습이 선명합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종목에 출전한 문대성 선수가 상대 선수를 멋진 뒤돌려차기로 제압한 장면도 기억 한편에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기억 속에서 태권도를 소환해 보려고 합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28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영남 재궁태권도장(군포) 총관장입니다.

이영남 관장이 태권도를 시작한 계기는 유년시절 남들보다 작은 '키' 때문이었습니다. 보통의 부모들이 그렇듯 이 관장의 아버지도 자식의 성장이 또래보다 더딘 걸 염려해 아들을 태권도장에 보낸 것이었죠. 부모의 손에 이끌려 시작한 것이지만, 그는 금세 태권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취미 생활 정도로 여긴 태권도가 어느새 그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고, '태권도의 길'을 가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습니다. "태권도를 시작한 뒤로는 몸집이 큰 사람들을 상대해도 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이 단련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니까 말 그대로 배짱이 아주 대단해졌죠."

그토록 사랑한 태권도였지만 한때나마 스스로 도복을 벗은 일도 있었습니다. 과거 태권도 관련 단체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에 동참했다가 승단 심사 등에서 불이익을 당한 경험이, 무도인으로서 그의 자존심을 짓밟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했던가요? 다시 도복을 입을 수밖에 없던 그였습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태권도는 마약 이상이라고 볼 수 있죠. 마약은 끊을 수 있지만, 태권도는 못 끊으니까요."

#낮에는 태권도 관장, 밤에는 경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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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가게로 선정된 재궁태권도장./이영남 총관장 제공

이 관장의 태권도 사랑은 말 그대로 흘러넘칩니다. 그를 보며 느낀 감정은 일종의 '부러움'이었습니다. 자신의 직업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의 모습에 저절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애정만으로 도장을 지켜나갈 순 없습니다. 28년 된 도장을 운영하는 그가 밤에는 강남의 한 빌딩에 경비원으로 취업해 밤샌 근무를 하는 이유입니다.

그의 도장에는 이요한 지도관장과 이다해 수석사범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이 관장의 아들, 딸입니다. 2대가 함께 힘을 모아 가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관원이 대폭 줄면서 둘의 인건비도 감당하기 벅찬 상황입니다. "태권도 가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누군가 뒷받침해야 합니다. 제가 체육학 박사이고 한 체육관의 총관장이지만 경비원으로 일하며 땀 흘리는 게 전혀 부끄러운 일은 아니잖아요. 이게 저의 태권도 정신이자, 철학입니다."

백년가게 선정은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국민추천 방식으로 백년가게가 된 재궁태권도장은 한 자리에서 28년 간 도장을 운영한 점과 앞으로도 도장을 이어나갈 가능성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여러 풍파 속에서도 꿋꿋이 도장을 지켜 온 이 관장의 노력이 빛을 본 것입니다. "자기가 중소기업 도와주는 쪽 직원이라고 하면서 전화로 백년가게 이야기를 하길래 처음에는 보이스 피싱인 줄 알았어요. (웃음) 주변의 도움을 받아 백년가게로 선정될 수 있었습니다. '한 길을 걸어오길 잘했구나!', 뿌듯함을 느낀 순간이었죠."

#한옥 도장에서 대통령 배출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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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궁태권도장의 이영남총관장과 이요한 지도관장(왼쪽), 이다해 수석사범이 품새를 선보이고 있다. 세 사람은 가족이다. 2020.12.24 /디지털콘텐츠팀

대를 이어 도장을 이어나가는 것은 그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아들과 딸이 모두 태권도를 업으로 삼고 있고, 곧 사위가 될 사람도 태권도인입니다. 말 그대로 '태권도 집안'인 셈이죠.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겠다'는 자식들과 이견(?)이 좀 있지만 손주들이 태권도를 했으면 하는 기대까지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 봅니다. "욕심인 건 알지만 손주도 다른 운동 말고 꼭 태권도를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웃음) IMF 등 많은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백절불굴'의 자세로 도장을 지켜왔습니다. 제 자식과 후손들이 이 도장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기틀 정도는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관장의 최종 목표는 한옥 도장을 짓는 것입니다. 당장 건물을 짓지는 못하겠지만 군포와 안산 경계지점에 이미 부지도 사놓았습니다. '올바른 정신과 건강한 신체 수련'을 강조한 그는 이 공간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자 합니다. 국기(國技)인 태권도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그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소임입니다. "많은 후배들이 자신의 꿈과 이상을 불태울 수 있는 멋진 도장을 짓는 게 남은 인생의 중요한 계획입니다. 제가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를 길러냈듯이 제 자식들은 실력과 인성을 갖춘 훌륭한 지도자가 돼 대통령까지 배출하는 도장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재궁태권도장 위치: 군포시 산본로 296-1 401호.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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