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⑨봉담디지털스튜디오]38살 동네사진관에 깃든 추억

남는건 사진…한장만으로도 마법같은 과거로의 여행
이공섭 대표 "아들 백일때 개업" 필름에서 디지털로
주인뿐만 아니라 손님도 대 잇는것…지역 봉사 꾸준

배재흥 기자

입력 2021-04-01 1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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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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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담디지털스튜디오 앞에 선 이광신(왼쪽) 실장과 이공섭 대표. 2021.03.26.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38살 동네 사진관

'남는 건 사진'이라는 말이 있죠. 추억이 담긴 옛 사진을 가끔 꺼내볼 때가 있습니다. 그 당시를 한참 동안 잊고 살다가도 앨범 속 때 묻은 사진 한 장을 보고 있노라면, 그 즉시 과거로의 추억여행이 시작되곤 합니다. 사진의 힘이란 참 마법 같습니다.

요즘은 남녀노소 모두 스마트폰을 이용해 양질의 사진을 손쉽게 찍을 수 있습니다. 한번에 몇백 장도 찍을 수 있죠. 과거에는 사진 한 장 한 장이 무척 소중했습니다. 필름의 용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함부로 셔터를 누를 수 없었고, 다 사용한 필름은 사진관에 맡겨 인화를 해야 했으니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사진을 찍는 도구는 달라졌지만, 사진을 남기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일 겁니다. 소중한 순간을 두고두고 추억하기 위함이겠죠.

봉담디지털스튜디오의 이공섭 대표는 38년 동안 화성시 봉담지역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봉담이 북적거리는 도시가 되었지만, 그가 처음 사진관을 열 때만 하더라도 이곳은 젖소가 자라는 시골동네였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 동네의 가장 큰 추억창고는 이 대표가 운영하는 사진관일 겁니다.

"우리 사진관은 오로지 봉담에서만 쭉 운영하고 있어요. 아들 백일 때 사진관을 개업했죠. 백일잔치를 사진관에서 했는데, 항상 개업 연도를 물어보면 우리 아들 나이를 떠올리면서 '38년 됐구나' 라고 헤아리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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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신 실장의 어린 시절./봉담디지털스튜디오 제공

올해로 38살이 된 사진관은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봉담사진관'이 '봉담디지털스튜디오'로 이름을 바꾼 것만 보더라도 이 변화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배운 이 대표 역시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저는 디지털 시대에 일찍 눈을 뜬 편이에요. 코닥하고 거래를 하다 보니 다른 데보다 변화를 먼저 감지했죠. 봉담이 시골인데도 불구하고 고가의 디지털카메라를 미리 사서 대응했어요."

이 대표는 현재 아들과 함께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들인 이광신 실장은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부터 사진과 관련한 디지털 기술을 많이 배워뒀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처음부터 사진관을 이어받으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원래는 전공을 살려 컴퓨터 관련 업계에 취직하려 했다고 하네요.

"대학을 졸업할 즈음 아버지께서 사진관을 정리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나서 다리를 크게 다쳤어요. 그때가 학교 졸업앨범 납품기간이라 바쁜 시기였거든요. 일할 사람이 없다 보니 다친 아버지를 돕게 됐는데, 그게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죠."

결과적으론 사진 관련 기술을 배워 둔 게 선견지명이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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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웃고 있는 이광신(왼쪽), 이공섭 부자.2021.03.26.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동네 사진관이 살아남는 방법

이 사진관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단골손님이 많습니다. 이 대표가 사진을 찍어줬던 어린아이가 사진관 나이만큼 커서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다시 방문하는 일도 있고, 한 가족의 아버지는 이 대표가, 그의 아들은 광신씨가 사진을 찍어주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주인뿐만 아니라 손님도 대를 잇는 것이죠.

이 대표가 이렇게 오랜 기간 한 지역에서 사진관을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분명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죠. 다만 한가지, 지역에 대한 애착을 빼놓고는 그 이유를 전부 설명할 수 없을 겁니다.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손님들을 만나는 것도 보람이지만 저는 이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많이 했어요. 의용소방대 활동도 20년 넘게 했고, 봉담 출신들이 모인 단체의 회장직도 맡았으니까요.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한다는 게 참 보람있게 느껴지더라고요."

물론 이 지역에서 자리를 잡는 게 순탄하진 않았습니다. 시골의 사진관은 '사진을 잘 못 찍을 것 같다'는 편견과 맞서 싸워야 했기 때문이죠.

"왠지 화성이면 사진을 잘 못 찍을 것 같다고 생각해 인접 도시인 수원이나 외곽으로 빠지는 분들을 보면 내심 서운하죠. 제가 전국에 회원 3만 명을 둔 사진 관련 협회 부회장도 했었거든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실력에 대해 의심을 하는 분들이 있어요. 조금 안타깝지만 그런 부분은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들인 광신씨도 나름의 고민이 있습니다. 대를 이어 사진관을 잘 운영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30년 넘게 저희 사진관을 찾는 손님들은 아버지를 먼저 찾아요. 그런 게 조금 부담이죠. 아버지가 계실 때는 그냥 자연스럽게 촬영하는데, 저만 있을 때는 항상 '젊은 아들이 잘 찍을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하시죠. 그래서 처음에는 사진 찍기가 겁나기도 했어요."

이런 고민을 들은 이 대표는 "요즘에는 반대로 내가 있으면 걱정하고, 젊은 친구가 있으면 믿는다"고 웃으며 아들의 용기를 북돋았습니다.

이들 부자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오랜 기간 사진관을 일궈왔지만 마주한 현실이 녹록하진 않습니다. 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이 보편화 되면서 사진관에 '대목'이라고 할만한 시기가 사라진 것이죠. 여기에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쳐 사진관을 찾는 손님들도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그랬듯이 현재 닥친 위기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38년간 공들여 쌓은 탑이 쉽게 무너질 리 없기 때문이죠.

"저희 사진관이 봉담지역 학교의 졸업앨범을 제작하고 있는데, 화성지역 전체로 확대하면 지금보다 사정이 나아질 것 같아요. 사실 지금 가지고는 2대가 먹고 살기 힘들어요. 지금보다 실력을 갖추고, 영업활동도 많이 해서 아들이 대를 이어받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봉담디지털스튜디오 주소: 화성시 봉담읍 삼천병마로 1276. 영업시간: 오전 9시30분 ~ 오후 8시(토요일은 오후 6시까지/일요일은 휴무). 전화번호: (031)227-3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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