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2] 하늘 아닌 바다를 가르는 '파일럿' 도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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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가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그래픽 박성현기자
인천 대표 공원 중 하나인 자유공원으로 가는 중구 내동의 한 오르막. 고풍(古風)이 배어있는 붉은 벽돌의 저택을 볼 수 있습니다.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조금 특이한 점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배란다가 '서남향'으로 돼 있는 겁니다. 예전엔 이 집에서 서남향으로 10여㎞ 거리에 있는 팔미도까지 한눈에 보였다고 하는데, 이 집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요?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가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두 번째로 들려드릴 인천항이야기는 '도선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뜬금없이 집 얘기를 해서 조금 당황스러우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 집은 바로 한국인 첫 도선사 유항렬(1900~1971)이 살던 집이었습니다. 그는 이 집에서 망원경으로 인천항에 입항할 선박이 오는지를 지켜봤다고 하네요.

한국 최초의 도선사 유항렬과 관련한 얘기는 잠시 뒤로 접어두고, 본론인 '도선사'에 대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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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중구 내동에 있는 유항렬 주택. 유항렬은 한국인 최초로 도선사 면허를 받은 인물이다. /경인일보DB

■도선사가 뭔가요?



도선사는 선박이 항구를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입항과 출항을 도와주는 선박의 안전길잡이 입니다.

영어로는 '파이럿(Pilot)'이라고 하는데, 흔히 비행기 조종사를 파일럿으로 알고 있지만 선박에서 먼저 쓰였다고 하네요. 웹스터 사전에서 파일럿을 찾아보면 ①배를 조종하기 위해 고용된 사람 ②항구 안팎 또는 지정된 해역에서 선박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 ③항공기 또는 우주선을 비행할 자격이 있거나 비행할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나와 있습니다.

우리나라 항구에 입항하는 500t 이상의 외항선은 반드시 도선사가 탑승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 주요 항구도 도선법에 따라 외항선에는 반드시 도선사가 탑승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수로의 폭, 수심 등이 항만마다 다른 만큼, 선박의 안전한 입출항을 위해선 해당 항만에 대한 이해가 높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 역할을 도선사가 하는 겁니다.

도선사가 되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우선 6천t 이상 선박에서 일정 기간 선장으로 일한 경력이 필요합니다. 또 해양수산부가 주관하는 도선사 시험에 합격해야 하는데, 합격 이후에도 6개월간 실무수습을 받아야 합니다. 입출항하는 선박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을 하는 만큼, 그 자격이 쉽게 주어지진 않겠죠. 전국적으로 260여 명의 도선사가 있다고 합니다. 인천항에선 30여 명의 도선사가 활동 중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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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사가 탑승한 선박이 인천항 갑문을 통과하는 모습. /경인일보DB

■안전한 입출항 책임

도선사는 입항을 앞둔 선박까지 이동한 뒤 줄사다리를 타고 배에 오릅니다. 이후 조종실에 승선했다는 보고를 VTS에 보고하고 본격적인 도선을 하게 됩니다.

레이더 등 첨단 설비를 활용하면서 배의 방향과 속도를 선원들에게 지시합니다.

인천항은 항로가 길고, 조류가 빠른 데다 안개도 자주 발생해 도선이 까다로운 항만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특히 너비 36m 너비의 인천항 갑문은 최대 난코스에 해당합니다. 대형 선박의 경우 갑문에 일자로 진입하지 않으면 갑문 콘크리트 벽에 부딪쳐 배가 훼손될 수 있는데, 1m만 차이가 나도 갑문에 충돌할 수 있다는 게 현직 도선사들의 설명입니다.

갑문을 통과하면 또 다른 관문이 남아 있습니다. 인천 내항은 다른 항만보다 부두가 좁고 접안돼 있는 배들이 많아 긴장을 늦출 수 없는데요, 도선사는 선박의 접안과 이안을 돕는 '예선'과 수시로 통신을 주고받으며 배를 안전하게 부두에 붙이게 됩니다.

도선사의 역할은 여기서 마무리됩니다. 출항할 땐 역순으로 도선사가 활동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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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 갑문에 있는 도선사기념비. /경인일보DB

■기원전 1천년부터 기록된 도선

도선사의 역사는 기원전 1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대 페니키아(현재 레바논 부근)의 다니아라는 항구에서 도선 서비스가 존재했다고 전해지는데요, 우리나라 최초 도선은 800년대 일본 교토의 승려가 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라는 책에 기록돼 있다고 합니다. 신라의 '유당사선'이 한반도 남해안을 통과할 때, 도선사가 승선했다고 하네요.

조선 시대 편찬된 경국대전엔 '조운(漕運)의 경우 선박마다 도선에 능한 사람 2~3명을 승선시켜 지휘하게 하라'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도선이라는 개념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근대적 개념의 도선 서비스가 도입된 건 일제 강점기였던 1915년이었습니다. 당시 일제가 도선사의 역할 등을 정의한 조선수선령이란 걸 공포한 건데, 조선총독부 해사국이 도선사 시험을 주관하고 면허도 발행했습니다. 해운행정이 일본인에 의해 이뤄진 만큼, 초기에는 일본인들이 도선업을 독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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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항렬 도선사. /경인일보DB

■한국인 도선사의 탄생
일제 주도의 도선사 면허가 발행된 지 20여 년이 지난 1937년. 한국인 최초의 도선사가 탄생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유항렬이 그 주인공인데요. 당시 일제의 견제를 극복하고 도선사 면허를 얻게 됐다고 합니다.

그는 이후 인천항에서 도선사로 활동하면서 정년퇴임 때까지 약 30년 동안 3천척에 이르는 입출항 선박을 도선했다고 합니다. 해방 직후엔 인천항을 지키며 구호물자를 실은 화물선과 미 군함 등 50여 척을 안전하고 신속하게 도선했다고 합니다. 이 공로로 당시 미군정 항만 당국자로부터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는데요. 한국전쟁 중 1·4후퇴 때에는 인천항에서 철수하는 유엔군 군함과 여타 선박들을 마지막까지 도선한 후 피난길에 나설 정도로 장인 정신과 민족의식이 투철했다고 합니다.

2012년엔 대한제국 최초의 근대식 군함 양무호의 함장을 맡았던 신순성(1878~1944)과 함께 해기사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기도 했습니다.

해방과 전쟁을 거친 우리나라가 도선사 국가시험을 처음 시행한 건 1958년입니다. 도선사 선발을 위한 시험 제도를 규정한 법은 있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우리나라 1호 국가 공인 도선사는 배순태(1925~2017) (주)흥해 전 회장입니다. 그는 유난히 최초라는 기록이 많은데, 선장으로 근무할 당시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했고, 1974년 완공된 인천항 갑문에 처음 배를 통과시킨 선장으로도 기록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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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사가 도선할 선박에 탑승하는 모습. /경인일보DB

■위험 감내하는 선박 안전길잡이

도선사는 운항 중인 선박에 타고 내려야 하기 때문에 배에 별도로 마련된 출입문을 이용해야 합니다. 별도의 출입문이 없는 경우 줄사다리를 타고 배에 올라야 하는데, 갑자기 파도가 치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면 배와 배 사이에 끼이거나 바다로 떨어지는 등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게 됩니다. 1985년, 2004년 등에 도선사의 해상 추락 사고가 있기도 했습니다.

한국도선사협회가 인천항 갑문에 세운 도선사 기념비는 유항렬 도선사가 인천항에서 도선 업무를 개시한 것을 기념하기도 하지만, 1957년 업무 중 순직한 김선덕 도선사를 추모하기 위한 의미도 담겨있다고 합니다.

자신이 위험에 처할 수 있음에도 오늘도 선박 안전을 책임지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도선사분들을 응원합니다. 

/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

※이글은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2019년 펴낸 책 '인천항 이야기' 내용을 발췌·요약·재구성한 겁니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책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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