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영의 인사이트

[신지영의 인사이트] 그 많던 10년 공공임대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공공임대 아파트는 주택정책 핵심 '중산층 주택 사다리'

2009년 성남 판교에 처음 등장…10년 공임 16만여호 건설

분양전환 시기에 분양가 갈등 불거지며 주민들 줄소송

결국 2019년에 10년 공임 정책을 더 이상 진행 않기로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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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의 한 10년 공공임대 분양전환 임대주택 거주자들이 분양전환가 산정방식을 수용할 수 없다는 현수막을 들고 있는 모습/경인일보DB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란 카피와 더불어 한국의 천민 자본주의를 웅변하는 문구로 자주 소환되는 말입니다. 한 사회의 가장 어두운 면은 역설적이게도 그 사회에 미처 물들지 않은 어린이들이 가장 먼저 알아차립니다.

'휴거'(휴먼시아 거지), '엘사'(LH아파트에 사는 사람)와 같이 어린이들이 임대주택을 비하하는 뜻으로 사용했던 단어들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준다'는 저 문장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이런 말이 가능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 자산을 증식하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 부동산(아파트)이기 때문이고, 그 자산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낮은 계층에 속할 수 밖에 없다는 어두운 진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유현준 홍익대학교 교수를 인터뷰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아파트 소유가 중산층 형성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현재의 청년 임대주택 정책은 '계속 월세로 살라'는 의미일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작은 집이라도 소유하기만 했다면 최소한 인플레이션에 준하는 자산 상승을 맛볼 수 있지만, 집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은 자산이 늘어나지 않고 월세 지출이 이어져 시간이 흐를수록 계층 상승의 가능성은 적어진다는 점을 지적한 말입니다.



이번 인사이트에선 더 이상 짓지 않는 '분양전환 10년 공공임대'를 얘기해보려 합니다.

■그 많던 10년 공공임대 어디로 사라졌나

분양전환 10년 공공임대주택(이하 공임)은 지난 2009년 성남 판교에 처음 등장합니다. 10년 동안 임대로 거주하고 임대 기간이 끝나면 분양으로 전환이 가능한 임대주택을 뜻합니다. 분양전환을 위한 거주의무가 10년 짜리가 있고 5년 짜리가 있는데 수도권은 대개 10년의 거주의무가 주어졌고 5년 공임은 주로 지방 위주로 건설됐습니다.

2018년 기준으로 10년 공임은 16만7천978호, 5년 공임은 7만3천472호가 만들어졌죠./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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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공임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시장 수요가 많은 중소형 평수(60~85㎡미만) 공급량입니다. 10년 공임의 55.4%, 9만3천143호가 중소형 평수로 공급됐습니다. 국민임대는 전체 공급량(2018년 기준 52만4천391호) 중 58%(30만4천119호)가 40~60㎡ 미만으로 지어졌습니다. 영구임대는 전체 공급량(2018년 기준 21만7천31호) 중 무려 94.2%가 40㎡ 미만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미 지어진 주택을 매입해 임대로 재공급하는 '기존주택 매입임대' 역시 40~60㎡미만이 전체 공급량의 45.9%를 차지합니다.

60~85㎡는 평으로 환산하면 18~24평형 아파트를 말합니다. 2인 가구부터 4인 가구까지 보편적으로 거주하는 가장 수요가 많은 평형이기도 합니다. 영구임대는 최저소득계층, 국민임대는 저소득 서민, 기존주택 매입임대는 청년 및 신혼부부를 타깃으로 합니다. 그렇다면 10년 공임은 어떤 계층이 정책 목표일까요. 바로 '예비 중산층'입니다. 임대료를 감당할 경제력은 있으나 주택 구매력은 없는 계층. 예비 중산층이 새로 지은 도시의 교통이 좋은 곳에 자리 잡을 수 있게 해줬던 게 10년 공임 제도였습니다.

당장 목돈이 없어도 10년 동안은 임대료만 지급하고 거주하다가 10년 동안 돈을 모아 '분양 전환'을 하면 내 집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중산층으로 가는 '주택 사다리'가 바로 10년 공임 정책의 목표였던 셈이죠. 10년 공임은 2019년으로 종료됩니다. 더 이상 분양전환 주택을 공급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10년 공임이 없어지게 된 배경에는 바로 경기 남부의 대장주, 판교와 광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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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공공임대 아파트 사실상 공급 중단, 기존 입주민 과의 갈등 해결은 여전히 숙제. /경인일보DB

■그 많던 10년 공공임대 왜 사라졌나

앞서 판교에서 10년 공임이 처음 공급됐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따라서 10년이 지나 분양 전환도 판교에서 처음 이뤄졌습니다. 문제는 바로 분양전환 가격이었죠. 10년 공임의 분양전환은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합니다. 2009년 입주 당시엔 3억원 후반대였던 판교의 한 10년 공임은 10년 뒤 8억원 이상으로 가격이 뛰었습니다. 그 사이에 판교의 부동산 시세가 크게 늘어난 영향이었습니다.

분양전환가를 둔 갈등은 판교 뿐 아니라 수원 광교에서도 극심했습니다. 광교 역시 조성 당시보다 부동산 시세가 크게 뛰어 분양전환가가 높게 산출됐기 때문입니다.

주민들은 줄이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판교와 광교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들도 열성이었습니다. 분양가 산정 방식을 바꾸는 내용의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 여럿이 발의됐고, 분양 전환 대상자에 대해서 대출 한도 규제를 풀어주는 당근책도 나왔습니다. 5년 공공임대는 조성원가+감정평가 금액의 산술평가로 분양전환가를 정하는데 왜 10년 임대만 감정평가를 기준으로 하는지가 문제 제기의 핵심이었습니다. 조성원가를 계산식에 넣게 되면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했을 때보다 가격이 낮아질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런 갈등의 근본 원인은 판교와 광교의 가격 자체가 너무 높아졌다는 데 있습니다. 분양 전환의 갈등은 완전히 봉합되지 않았고, 여진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9년 당시 8억원 이상으로 분양전환가가 정해진 판교의 한 10년 공임은 최근 시세가 12억원까지 올랐습니다. 지난해 기록적인 부동산 시세 상승의 영향이었죠. 분양 전환가에 불만을 가지는 거주자의 주장에도,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삼은 정부의 정책 설계에도 모두 합리성이 있습니다. 할 만한 주장이고 할 만한 반박이었습니다. 결과는? 10년 공임을 두고 벌어진 논란의 끝은 결국 2019년 이 정책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결론이 내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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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공공임대 분양전환가에 불만을 가진 주민들이 LH경기지역본부 앞에서 청약통장을 불태우고 있다/경인일보DB

정부가 내놓은 표면적인 이유는 30년 이상 장기임대를 늘리기 위해 10년 임대와 같은 단기 임대는 지양하겠다는 것이었고, 실제 이유는 판교와 광교를 중심으로 제기된 수 많은 항의와 민원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부동산 정책 중 문재인 정부가 온전히 계승한 사례는 희귀합니다. 바로 '행복주택'이 그 희귀한 사례에 해당합니다. 박 정부의 공약 '행복주택'은 문 정부에서 이어져 많은 행복주택이 예정돼 있고 건설되며 입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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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주택 건설. /경인일보DB

임대주택 중 하나의 유형인 행복주택은 (2018년 기준) 공급 물량의 97%가 40㎡ 미만으로 공급됐습니다. 평형으로 환산하면 12평 원룸입니다. 제 주위의 많은 청년들, 제가 취재 중 만난 2030세대는 "평생 원룸에만 거주해야 하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행복주택은 광교와 같은 신도시 한 가운데에도 역세권과 같은 지가가 높은 지역에도 종종 건설됩니다. 가족으로부터 처음 독립한 2030세대는 원룸 행복주택에 입주해 '오늘의 집'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자기 만의 공간을 꾸미는 뜻깊은 경험을 하며 그렇게 꾸민 공간을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바로 그 인스타 게시물에는 '#다음엔 투룸으로 #나도 언젠가 아파트로' 같은 해시태그가 숨겨져 있다고 느낍니다.

지난해 6월 발표된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월세에서 전세로, 월세에서 자가로, 전세에서 자가로 이동하는 '주거 상향이동' 가구 비중이 28.6%로 하향 이동 가구(8.2%)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아직까지 주거 계층 사다리가 작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지난해는 모두가 알고 있듯 기록적인 부동산 시세 상승이 나타났고, 이대로 있단 영원히 주택을 살 수 없다고 느낀 2030세대의 '패닉바잉'이 수도권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났습니다. 그 여파는 여전합니다.

따라서 올해 6월 발표될 지난해분의 주거실태조사에선 '주거 상향이동'이 여전히 활발했던 것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주거 계층 사다리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한 '전세'는 점차 소멸하고, 패닉바잉 수요가 몰리며 자가 주택 가격은 오를 때로 올랐으며 10년 공임과 같은 정책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나라의 공식 조사에서도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자가로 이동을 '주거 상향'이라고 명명합니다. 선진국에선 국민 절반 이상이 '임대'에 거주하고 있다고 말하는 정치인이 늘고 있고, 모두가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고 말해 큰 물의를 일으킨 위정자도 있었습니다.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임대료가 저렴한 임대주택' 자체가 나쁜 정책은 아니지만, "영구히 임대주택에 거주하게 해주겠다"는 말이 옳은 것만도 아닙니다. 현 시대의 청년들에게 중산층 진입의 사다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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