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15 평택 고복수평양냉면] 평택에 뿌리내린 평양냉면의 맛은?

오랜시간 평택시민에게 사랑받은 '고복수 평양냉면'

고박사->고복례->고복수… 상호에 얽힌 아픔

다른 집보다 '짙은 맛', "밍밍하다고 평양냉면 원조 아냐"

"바뀌는 평양냉면 트렌드, 현대 문화에 맞는 냉면 맛 개발할 것"
입력 2021-06-24 15:18 수정 2021-08-22 16:03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



제 짧은 경험상 사람들이 평양냉면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대부분 비슷합니다. 보통 이런 식이죠. 냉면을 좋아하는 지인의 손에 이끌려 평양냉면의 맛을 한 번 봅니다. 마주앉은 지인은 맛깔나게 먹는데, 초심자인 당사자는 도통 무슨 맛인지 고개만 갸웃거려집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지인은 "몇 번 더 먹다 보면 평양냉면 맛을 알게 될거야"라고 살짝 무시하는 말만 늘어놓죠.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맛이 계속 생각납니다. 이렇게 또 한 명의 평양냉면 애호가가 생겨납니다.

얼마 전 한 식사 자리에서 평양냉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함께 자리한 사람도 위와 같은 경로로 평양냉면을 좋아하게 됐답니다. 그러면서 꼭 가봐야 할 평양냉면 가게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심심하고 밍밍한 평양냉면 맛을 좋아하게 될 날이 올까?"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우연의 일치인지 평양냉면을 맛볼 기회가 곧장 찾아왔습니다. 오늘은 평택에서 3대째 계승되고 있는 '고복수 평양냉면'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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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앞에서 손 흔들고 있는 고복수 대표. 2021.6.18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고복수 평양냉면의 역사는 19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창업주인 고학성 대표가 평안북도 강계에 차린 '중앙면옥'이라는 가게가 시초입니다. 그의 아들인 고순은 대표는 중앙면옥의 전통을 계승해 1973년 평택역 인근 명동 골목에 '고박사 평양냉면'을 개업했습니다. 지금은 손자인 고복수(65) 대표가 '고복수 평양냉면'이라는 이름으로 가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평택 시민들은 '고박사'라는 이름을 더 친숙하게 느낄 텐데요. 상호에 얽힌 사연이 있습니다. 고복수 대표는 고박사 브랜드를 좀 더 키워보고자 사업 확장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이런 와중에 '고박사' 상호의 권리를 동업자 앞으로 변경했다 일이 틀어지면서 되찾지 못한 것이죠. 고박사에서 누이의 이름을 딴 고복례로 상호를 바꿔 운영하다 다시 고복수라는 이름을 걸고 장사를 이어나가고 있는 겁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7년부터 가게 일을 배웠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즈음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하네요. 그때 가게를 찾은 한 손님이 한 조언 덕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중앙대학교 안성 캠퍼스가 막 만들어지고 교수님들이 가게에 많이 찾아왔어요. 이 교수님들이 저한테 일본 얘기를 많이 했어요. 일본에서는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도 부모님 가업을 계승한다고. 쓸데 없는 짓 하지 말고 부모님의 좋은 기술 승계하라고요. 이 말이 무척 와 닿았죠."

한창 냉면집 운영이 잘 될 때는 직원만 30명 정도 됐다고 하는 데요. 그 역시 여느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청소와 배달 일 등을 하며 아버지께 기술을 전수받았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자전거로 배달을 해야 해서 배달하는 직원만 10명씩 있고 그랬어요. 지금은 기계가 반죽을 하지만 예전에는 일일이 손으로 다 해야 했죠. 3층짜리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서빙하는 직원도 많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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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고복수 대표. 냉면 맛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2021.6.18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 밍밍하면 평양냉면?

그렇다면 고복수 평양냉면집의 냉면 맛은 어떨까요. 고 대표는 다른 평양냉면보다 맛이 '짙다'라고 표현했습니다. 고복수 평양냉면은 한우 육수 베이스에 동치미를 더해 국물 맛을 냅니다. 동치미의 익힘 정도와 한우 육수와 동치미를 적절한 비율로 섞어 국물 맛을 내는 게 이 집만의 비법인 셈입니다.

국물을 마시면 동치미 맛이 입안을 메우지만, 그리 톡 쏘진 않습니다. 그러면서 진한 육향이 밀려 옵니다. 평양냉면의 담백함은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고 대표의 설명처럼 마냥 밍밍하진 않은 것이죠. 메밀로 만든 면은 찰기가 충분하면서도 이로 끊어 먹기 편합니다. 여름과 겨울 등 계절에 따라 메밀의 비율을 달리해 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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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복수 평양냉면. 2021.6.18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평양냉면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 특히 젊은 분들은 저희 집에 와서 냉면을 드시면 '평양냉면 맛이 이런 거구나' 라는 걸 빨리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보통 평양냉면을 먹으면 맹물 같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맛이 밍밍하다고 해서 평양냉면의 원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정작 옥류관 냉면은 그렇지 않거든요."

고 대표의 아들은 이 가게만의 맛을 이어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용인에 가게를 새로 열어 직접 운영해 보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죠.

"내 밑에서 일을 배워야지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자기만의 가게를 운영해보겠다고 하는 거예요. 내 품을 떠나 직접 음식을 만들고, 가게도 경영해 보겠다니 참 대견했죠.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씩 가게에 들러 교류하고 있어요. 3~5년 정도 하다 돌아오라고 그랬어요."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그의 좌우명입니다.

상호에 얽힌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는 지금도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수도권에 있는 평양냉면집이란 냉면집은 전부 찾아가 맛을 비교해보고, 개선점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평양냉면에 어울리는 '김치'를 연구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하네요. 냉면의 트렌드가 계속 바뀌고 있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냉면을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도 큽니다.

"과거에 고박사 냉면을 많이 사랑해줬던 손님들에게 (상호 문제 등으로) 실망 시켜드린 점 죄송합니다. 고박사 냉면 맛에 버금가는 고복수 냉면 맛을 시민들과 냉면 애호가들에게 대접하기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고복수평양냉면 주소: 평택시 조개터로1번길 71.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명절 휴무). 전화번호: 031)655-4252. 메뉴: 냉면 1만원, 비빔냉면 1만원, 녹두빈대떡 8천원, 왕만두 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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