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오늘도 나름의 성공을 꿈꾸며 새로 가게 문을 엽니다. 쓰디쓴 현실을 마주한 누군가는 눈물을 머금고 가게 문을 닫고 있을 테죠. '자영업자의 무덤'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들의 몸부림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을 겁니다. 코로나19라는 잔혹한 '적'과 싸우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속은 이미 새까맣게 타 버렸습니다.
자영업자 무덤에서 살아남은 백년가게
지난 10개월간 경인 지역 백년가게 20곳 소개
'실력·신념·끈기' 백년가게 관통하는 세가지 키워드
돈이 전부가 아닌 '평범한 성공' 이야기
지난 10개월간 경인 지역 백년가게 20곳 소개
'실력·신념·끈기' 백년가게 관통하는 세가지 키워드
돈이 전부가 아닌 '평범한 성공' 이야기
경인일보는 지난 10개월간 경인 지역 '백년가게'를 조명하는 시리즈를 연재했습니다. 코로나19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국의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시작한 기획물입니다. 1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경인 지역 백년가게 20곳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께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업력이 성공의 기준이라면 백년가게는 이미 성공을 거뒀습니다. 자영업자의 폐업 문제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상황에서 최소 20년 이상 업력을 쌓은 가게들이죠. IMF 등 각종 경제 위기부터 코로나 시국에 직면한 현재까지, 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실력·신념·끈기
왼쪽부터 부산한복 1~3대 대표./부산한복 제공,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
손님들은 딱 하루 한복을 입는 건데, 그 중요한 순간에 입을 때만큼은 최고로 예뻐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노리개라든가 기본적인 소품 하나하나 챙기는 것에도 정성을 다하고 있어요
지난 10개월간 바버숍, 태권도장, 사진관, 열쇠가게 등 다양한 업종의 백년가게 대표들을 만났습니다. 업종과 삶의 궤적은 서로 다르지만, 오랜 기간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실력과 신념 그리고 끈기. 백년가게 시리즈를 관통하는 세 가지 키워드입니다.
소비자는 돈을 지불하고, 가게로부터 합당한 서비스를 제공받습니다. 어떤 가게든 소비자의 기본적인 만족감을 충족하기 위해선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췄다고 판단해 가게 문을 열었어도 음식점이라면 음식의 맛을, 사진관이라면 사진의 품질을 향상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매장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신태민 기능장./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이발소를 운영하다 새롭게 트렌드를 접목시켜 바버숍 문을 연 건 5~6년 전 일이에요. 매장 운영을 마치고 서울에 올라가서 교육을 받았죠. 집에 도착하면 새벽 3~4시가 됐어요. 그렇게 7~8년 정도를 했죠
백년가게 시리즈의 첫 번째 주인공인 안산 '할리바버샵'(지금은 서수원으로 이전) 신태민 대표는 원래 이발소를 운영했습니다. 이용사 자격증 취득 시험의 감독관을 맡을 정도로 이용업계에선 알아주는 실력자였죠. 이런 그도 빠르게 변화하는 이용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서울을 오가며 수년간 새로운 이용 기술을 배웠다고 합니다. 느즈막이 도전에 나선 끝에 요즘 유행하는 '바버숍'을 새로 차릴 수 있었던 겁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이광신(왼쪽), 이공섭 부자./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
30년 넘게 저희 사진관을 찾는 손님들은 아버지를 먼저 찾아요. 그런 게 조금 부담이죠. 아버지가 계실 때는 그냥 자연스럽게 촬영하는데, 저만 있을 때는 항상 '젊은 아들이 잘 찍을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하시죠. 그래서 처음에는 사진 찍기가 겁나기도 했어요
화성에서 '봉담디지털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이공섭 대표는 '시골 사진관은 사진을 못 찍을 거야'라는 주변의 편견과 맞서 싸웠습니다. 왠지 화성이면 사진을 잘 못 찍을 것 같다고 생각해 수원이나 인접 대도시 사진관으로 가는 손님들이 더러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전국에 회원 3만명을 둔 사진 관련 협회의 부회장까지 지내면서 본인의 실력을 증명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재궁태권도장 이영남 총관장. 도복을 입은지 벌써 45년이란 오랜 지났지만 그의 태권도 사랑과 열정은 초심 모습 그대로 인듯 했다./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
제가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를 길러냈듯이 제 자식들은 실력과 인성을 갖춘 훌륭한 지도자가 돼 대통령까지 배출하는 도장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들에겐 확고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신념은 대개 막중한 책임감을 동반하곤 하죠. 이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군포 '재궁태권도장'의 이영남 관장은 도장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밤에는 경비원으로 일했습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관원이 대폭 줄면서 도장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국기(國技)인 태권도를 계승·발전시키는 것을 자신의 소임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업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였습니다.
웃고 있는 김광종 대표./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
남들한테 대우받는 직업은 아니에요. 천한 직업이에요. 저는 천한 직업이 됐든 뭐가 됐든 돈이나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시작했어요. 그래도 때로는 제가 출장 가서 문제를 해결해주면 사람들이 고맙다고 해요. '참 좋은 기술 배웠다'고 알아주는 분도 계셔서 뿌듯하죠
남양주 '호평열쇠도장'의 김광종 대표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이야기 했습니다. 전북 고창군 시골마을 출신인 그는 0.5평짜리 자투리 공간에서 열쇠업을 시작했습니다. 어렵게 장사를 시작했는데, 인근 경쟁업체에서 보낸 사람들이 매일 깡패처럼 입구를 막고 업무를 방해했다고 합니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2~3일간 칼을 품고 다녔습니다. "상대방에서 그렇게 하면 너 죽고, 나 죽자 해야겠다 싶어서 그랬어요." 생계가 막막했던 당시를 떠올리며 그는 눈물을 보였습니다.
평범한 성공이란
가게 앞에서 손 흔들고 있는 고복수 대표./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
당시에 중앙대학교 안성 캠퍼스가 막 만들어지고 교수님들이 가게에 많이 찾아왔어요. 이 교수님들이 저한테 일본 얘기를 많이 했어요. 일본에서는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도 부모님 가업을 계승한다고. 쓸데 없는 짓 하지 말고 부모님의 좋은 기술 승계하라고요. 이 말이 무척 와 닿았죠
어떤 어려움을 겪든 '계속 한다'.
백년가게 대표들의 끈기와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돋보였습니다. 이들이 걸어온 세월에는 여러 희로애락이 깊게 배어 있을 테죠. 기쁜 일 만큼 힘들고 고된 일도 많았을 겁니다. 평택의 '고복수평양냉면'은 상호와 관련한 법적 분쟁에 휘말려 원래 쓰던 '고박사'라는 상호를 쓰지 못하게 됐습니다. 사업을 확장하던 와중에 실패를 겪은 터라 3대째 냉면집을 운영하고 있는 고복수 대표의 상심도 무척 컸습니다. 그는 그럼에도 변함없는 '맛'을 약속하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그의 좌우명입니다.
오산 할머니집 박명희 4대 사장./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
그냥 그런거 있잖아요. 항상 그곳에 가면 거기에 있는 곳. 그런 가게가 되고 싶어요. 오래 전에 오셨다가도 '그 집 참 좋았는데' 하며 찾으면 그 자리에 있는 가게. 그렇게 남고 싶습니다
소머리 설렁탕을 판매하는 오산의 '오산할머니집'은 무려 80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지금은 4대 박명희 대표와 그의 아들 김상겸 씨가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더 많은 손님을 받기 위해 메뉴를 다양화하거나, 자리를 옮길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가게를 잊지 않고 찾아주는 동네 주민들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대신 번거로울지라도, 전통 방식 그대로 음식을 만듭니다. 가스 불이 흔하지 않던 시기, '음식에 더운 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가 따라내어 덥히는' 토렴 방식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습니다. 오랜 전통에서 나오는 가게의 정체성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이죠.
백년가게의 모토는 '보통 사람들이 일군 귀한 이야기'였습니다. 다소 부자연스러운 조합일 순 있으나, '평범한 성공'과 관련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가 성공의 기준이라면 이들 역시 성공을 향해 달려나가는 수많은 자영업자 중 하나일 겁니다.
기억에 남는 손님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힌 김은순 대표./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
모두가 대박을 원하는데, 대박보다 평범함 속에 일상의 소소한 행복도 좋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성공에 비중을 크게 두면 정작 소중한 것을 잃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앞으로도 정직하게 이 자리를 지키려고 해요
수원의 진천생고기 김은순 대표가 '폐암'에 걸린 아픈 몸을 이끌고 아내와 함께 가게를 찾아온 손님을 생각하며 진한 눈물을 보이고, 인천의 부산한복 전영순·이은진 모녀가 들려주는 한 편의 영화 같은 인생 역경은 돈이 주는 성공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만들었습니다.
매일 아침 가게 문을 열 수 있고, 가게 문이 열길 기다리는 손님이 있다는 것. 이런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지극히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백년가게 시리즈 연재를 마칩니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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