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최원식 '철도원 삼대' 대담] 무명의 노동자에게 바치는 이야기 "원로의 길보다… 현역으로 죽겠다"

소설속 주요 배경 인천 찾은 한국문학의 거장, '막역한 석학'과 막힘없는 대화

철도원 삼대 북콘서트
지난 3일 오후 인천시 중구 한중문화관 공연장에서 열린 '철도원 삼대' 북 콘서트에 참석한 황석영 작가와 최원식 교수가 책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1.12.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입담이 좋기로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황석영 작가가 지난해 쓴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창비)를 들고 지난 3일 한국근대문학관 북 콘서트 참석을 위해 소설 속 주요 배경인 인천을 찾았다. 북 콘서트 사회를 맡은 문학평론가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는 황석영 작가와 막역한 사이이기도 하다.

이날 한국문학 거장과 석학의 대담은 인천에서 출발해 작가론, '포스트 코로나'까지 이어질 정도로 넓고 깊었다.

최원식 교수는 황 작가가 방북 혐의 등으로 수감됐다가 1998년 출옥한 직후부터 '철도원 삼대' 구상을 들었다고 한다. 황 작가는 이야기를 구상해 완성하기까지 30년이 걸렸다고 했다. 내년은 황석영 작가 등단 60년이 되는 해이자 그가 한국 나이로 80세가 되는 해다.



황석영 작가와 최원식 교수가 북 콘서트에서 나눈 이야기를 정리·요약했다.

# '철도원 삼대' 황석영 작가
국민학생때 인천으로 가출… 난생 처음 바다구경
포스트 코로나 이후 또다른 사회 개조·변혁 시작
다음번에는 '타 인간중심주의' 성인동화 쓸까…

#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
'장소'가 갖는 혼이 사로잡는 민담 전승 종합작품
등장인물 '주안댁' 등 묘사 여기 사람도 놀랄정도
계속 모험하는 작가… 90세까지 세권 더 '인상적'

 


황석영 작가 철도원 삼대 북콘서트12
황석영 작가가 "내 문학이 인천이랑 맞는다. 38도선 넘은 피난민도 많고 인천의 근대가 개항 이후 근대라는 점에서 황석영과 맞는다. 인천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냈으면 한다"고 말하고 있다. 2021.12.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최원식 교수(이하 최) :
1970년대 문학은 황석영의 등장과 김지하의 등장으로 정리할 정도로 시와 소설 양쪽에서 시대를 교체했다. 황석영은 지금까지 업적으로도 대작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든이 가까운 작가가 '철도원 삼대' 같은 굉장한 작품을 써낸 것은 대단하다. 백낙청 선생은 80세 가까운 작가가 이런 작품을 낸 것은 세계문학 사상 유례가 없다고 했다.

■ 황석영 작가(이하 황) :
황석영이 청년 작가였는데, 뒷간을 갔다 오니 인생이 다 지나버렸다. 원로라고 꽃 달고 심사 다니고 인사받고 다니고 하는 길이 있는데, 죽는 날까지 글을 쓰겠다 작심한 바 있어 현역으로 죽겠다.

작가의 말년은 또 하나의 위기다. 자기가 여태 쌓아올린 업적, 그것이 만들어 낸 매너리즘이 있다. 원로작가라는 것이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것과 똑같다. 더 나아가야 하는데, 저를 한 걸음 더 내딛게 한 작품이 '철도원 삼대'다.

생물학적 건강 상태를 따지면 90세까지 쓸 수 있을 것 같다. 한 10년 부지런히 '철도원 삼대' 같은 두께로 3권 더 쓰면 황석영이 생각하는 소설의 양식, '민담 리얼리즘'을 나름 형성하면서 죽을 수 있지 않을까.

■ 최 :
작가는 두 유형이 있다. 어떤 작가는 계속 나아가고 어떤 작가는 정립한 것을 깊이 파고 들어가는 맛이 있다. 황석영은 계속 모험해서 위기를 돌파해 나가는 작가다. 90세까지 세 권을 더 쓴다는 말이 인상 깊다.

영등포가 인천 때문에 생겼다는 새로운 견해도 줬다. 대작가는 자기 인물들이 살 세계를 만드는데, 이 작품은 황석영 문학 중에서도 장소가 강하다. 특히 장소가 갖는 혼이 사로잡았다.

■ 황 :
식민지 근대의 산물인 만주국의 수도 심경(장춘)에서 출생해 평양을 거쳐 서울 영등포에서 유년을 보내고 자랐다. '철도원 삼대' 같은 세계가 저의 본령이다. '장길산'은 공부하고 자료를 뒤지고 현장 답사해서 노력한 것이다.

저는 근대 도시의 자식이라서 농작물이 어떻게 돼서 벼를 심고 모를 내고 이런 과정을 몰랐다. 영등포 같은 도쿄 변두리의 개화 근대, 사이비 근대 모양을 보면 향수를 느낀다. 영등포와 인천은 대단히 인상적인 장소다.

식민지 근대를 극복하기 위해서, 제국주의처럼 뺏는 그런 근대가 아니라 빼앗기는 입장의 '저항 근대'가 발생한 나라 중 유일하게 한국이 선진국이 됐다.

■ 최 :
염상섭의 장편소설 '삼대'(1931년)가 한반도 근대 입구라면 '철도원 삼대'는 근대의 출구라고 평가한다. 또 '철도원 삼대'에는 처음으로 출생지인 만주 심경(장춘)이 그려진 것 같다.

■ 황 :
'철도원 삼대'는 만주 이야기를 한 권 정도 써서 3권짜리 소설이 원래 계획이었다. 자료를 구성하고 보니 최소 8권이 나와 옛날 대하소설 쓰던 때로 돌아가야 했다. 만주 얘기는 쓸 게 너무 많아서 이 부분을 확 뺐다.

다음 작품은 포스트 코로나 이후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타 인간중심주의', 열반경으로 성인 동화를 쓸까 한다.

그리고 '만주 15만원 사건'(1920년 간도 항일단체가 무장투쟁을 위해 은행에서 군자금을 탈취한 사건)의 주역인 한 연변 청년이 카자흐스탄으로 도망가서 말년 무명으로 돌아간 홍범도와 3년을 함께 지낸 이야기에 대해서도 하나 쓰겠다.


■ 최 :
인천이 소설에서 굉장히 중요한 장소다. 국민학교(초등학교) 때 인천으로 가출했었다고 들었다. (웃음) 등장인물 주안댁에 대한 묘사 등 인천사람들도 놀랄 정도로 인천 이야기가 생생하다.

■ 황 :
우리 가족이 월남한 피난민이라 6·25 났을 때 남쪽으로 내려가려고 인천으로 가다가 (인민군에) 점령당했다고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 부모님이 인천에 대해 잘 알았고 황해도 친척도 인천에 살았다. 어머니가 동창들과 놀러 나가면 월미도로 갔다. 영등포 사람들은 인천을 왔다 갔다 했다.

국민학교 4학년 때 부모님에게 야단맞고 큰누나 가방에서 돈을 갖고 튀었다. 영등포역에서 인천 가는 기차 타고 내려와서 난생처음 바다를 봤다. 이 근처(북 콘서트를 진행한 중구 한중문화관) 부둣가에 시장이 있었다.

시장 좌판에서 하루 잤는데, 좌판 주인이 깨워 자기 사는 이 근처 동네로 날 데려갔다. 그 사람 별명이 주안댁이었다. 날 우리 집으로 데려다 주면서 어머니와 "언니 동생"하고 지냈다. 인천은 부분 부분 잘 알고 있다.

고등학교 때 송도해수욕장으로 수영하러 오기도 했고, '심청'을 쓰면서 자료를 많이 뒤졌다. 남들은 인천사람만큼 안다고는 하는데, 사실은 슬쩍 커닝해서 아는 척하기도 했다.

황석영 작가 철도원 삼대 북콘서트10
최원식 교수가 "대작가는 자기 인물들이 살 세계를 만드는데, 이 작품은 황석영 문학 중에서도 장소가 강하다. 특히 장소가 갖는 혼이 사로잡았다"고 말하고 있다. 2021.12.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최 :
이 작품은 영등포에 바쳐 봉헌됐는데, 다른 말로 바꾸면 노동자에 봉헌됐다. 우리 문학에서 빠진 노동자, 사건의 조서와 법정 기록에 이름만 남아있는 무수한 민중의 조합인 무명의 한국 노동자들에게 헌정한다.

또 원래 정통 리얼리스트였던 황 선생이 우리의 이야기, 민담 양식을 들여다보면서 왕년의 리얼리즘과 농업적 기반의 민담 전승을 이 작품에서 종합했다.

■ 황 :
석방 이후 숙제 안 한 사람처럼 늘 뇌리에 있던 작품이다. 이걸 쓰면서 노동자의 얘기와 노동운동의 세계가 (한국문학에서) 빠져 있는 이유를 알았다. 근대 산업화 식민지 시대부터 사회주의가 들어와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에 포함됐다.

민중운동의 출발이 사회주의적 이념에서 조직되고 지도되면서 성장했고, 일제가 그걸 철저하게 억압했다. 그 운동의 최정점은 당 건설, 공산당을 조직하는 운동으로서 전제하는 민중운동이다. 이걸 건드리려 하니까 빨갱이가 되고 어려웠던 것이다. 미흡하긴 하지만 제가 제 역할로 벽돌 한 개를 비어있는 곳에 채워넣었다 생각한다.

■ 최 :
(청중 질문 대독) 유례없는 코로나19 팬데믹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 사회 말단이 힘든 현실이다. 그들을 그릴 계획이 있나.

■ 황 :
산업의 전환기가 더 심화할 것이고 새로운 공동체주의를 생각해야 한다. 일자리가 변형되고 줄어들고 없어지고 있다. 재난지원금이 출현했다. 4차 산업혁명과 5차 산업이 오면 어떤 것은 굉장히 번성하고 어떤 것은 없어지고, 인간이 어느 정도 개입하고 일을 통해 먹고 살 수 있는가 생각해야 한다.

현재 자본주의 체제가 가능할 것인지 서구 좌파나 진보 지식인들이 논쟁하고 토론하고 있다. 그러한 변화의 과도기이고, 이행기의 고통을 얼마만큼 줄이고 빨리 벗어날 수 있는지가 과제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또 다른 사회 개조, 사회 변혁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 최 :
20세기가 1차 세계대전을 고비로 시작됐다고 생각하고 21세기는 무엇을 고비로 시작될 것인지 들여다보고 있다. 1차 대전의 폭발 속 발생한 러시아혁명이 20세기를 주조했다면, 팬데믹이 일어난 2020년이 21세기를 만들어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황 :
(끝으로) 인천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내 문학이 인천이랑 맞는다. 38도선 넘은 피난민도 많고 인천의 근대가 개항 이후 근대라는 점에서 황석영과 맞는다. 인천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냈으면 한다. 수백억원 들여서 문학관 짓고 그런 짓은 안 한다. 창고 하나 있으면 될 것 같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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