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남매를 키우고 있는 정민경(45)씨의 이야기는 결국 '체감'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부가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21~2025)에 편성한 재원은 2021년 기준 73조원가량이다.
여기에서 육아 지원 등 저출산 정책과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예산만 약 46조원이다. 말 그대로 '억' 소리나는 규모다. 정부의 보육예산도 지난 20년 간 큰 폭으로 확대됐으나 같은 기간 출산율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 그래픽 참조
그런데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부모들은 이 많은 돈이 대체 어디에 쓰이는지 늘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정부와 지자체의 육아 관련 정책에 부모들의 욕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 장벽에 둘러싸인 육아 정책
육아 정책의 기본적인 목표는 부모의 양육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아동수당과 같은 현금성 지원을 통해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거나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 촘촘한 보육 체계를 구축해 부모의 시간적 부담도 경감할 수 있다.
초저출산 국면이 장기화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인 현시점에선 국가가 부모의 육아 부담을 덜어준다는 다소 소극적인 접근보다, 부모들이 필요로 하는 정책을 먼저 발굴하는 적극적인 접근 방식도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에선 갖가지 제도적 장벽 탓에 부모들의 육아 부담이 줄지 않고 있다.
민경씨 가족은 부부와 6남매를 더해 모두 8명이다. 자녀 수를 떠나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 자동차는 꼭 필요한 이동수단이다. 다둥이 가족은 더욱 그렇다. 민경씨 가족의 경우 온 가족이 어딘가로 이동할 때 매번 대중교통만 이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데 이 자동차 때문에 민경씨 가족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현재 자동차를 보유한 다자녀 가구가 주거급여를 받으려면 '가구원이 6인 이상 이거나 3명 이상의 자녀를 둔 가구로서, 배기량 2천500cc 미만 7인승 이상으로, 차령 10년 이상 또는 차량 가액이 500만원 미만인 자동차'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국산 RV차량을 보유한 민경씨 가족은 해당 기준을 맞추지 못한다.
생계급여는 다자녀 가구에 대한 별도 기준조차 없다. 소득·재산 기준에는 적합하더라도, 차량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민경씨 가족이 거주하고 있는 수원시는 다자녀 가구에 대한 '기초수급 차량기준'이 완화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6남매 민경씨네, 차량기준 못맞춰
다자녀가구 주거급여 지원 못받아
소득·재산 부합해도 '제도적 장벽'
수원시, 작년이어 올해도 완화건의
시는 '자녀를 출산하지 않는 것이 큰 문제인 반면 낳은 자녀들을 잘 키우는 것 또한 저출산 해소를 위한 최대 관건'이라고 봤다. 어린 자녀들을 양육하고 있는 부모들이 여러 제약 때문에 실생활에서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수원시는 더 많은 다자녀 가구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상 생계·주거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차량 기준을 완화해 달라고 최근 정부에 공식 건의했다. 생계급여에는 다자녀 가구가 적용받을 수 있는 차량 기준을 새로 만들었고, 주거급여의 경우 차량 가액을 기존 500만원에서 1천만원으로 올리는 등 일부 기준을 완화했다.
수원시 관계자는 "작년에도 정부에 비슷한 내용으로 기준을 완화해 줄 것을 건의했으나, 예산이 맞물려 있고 기준을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다자녀 가구들을 상담하다 보면 경제적 어려움이 많은 게 사실인데,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기준 때문에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 정책과 현실의 괴리
정부는 나름의 목표와 기준을 세워 육아와 관련한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민경씨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현실과 동떨어진 기준을 가지고 추진되는 정부의 정책은 현실 부모들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지 못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발간한 '2018~2022 육아정책 분석과 과제(Ⅲ)'는 부모 1천731명을 대상으로 정부의 육아정책 수립 실태를 묻는 설문조사 결과를 담았다.
설문에 참여한 부모들에게 '우리나라 육아 정책 의제에 육아 관련 사회적 이슈나 문제, 그리고 부모들의 욕구가 반영되고 있는지'를 물은 결과 전체 응답자의 10명 중 4명은 '그렇지 않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했다. 반면 긍정적인 답변은 18.6%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정책이 의도하는 서비스 성과가 잘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엔 전체 응답자 중 40%가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고, '어느 정도 적절하다'거나 '매우 그렇다'는 응답은 16.8%에 그쳤다.
결혼 전부터 결혼, 임신 전, 임신, 출산, 육아, 가족에 이르기까지 개인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워나가는 과정 하나하나에 예산을 들여 지원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 방향성을 고려하면 다소 아쉬운 결과다.
부모의 체감도가 이렇게 낮다는 건 정부가 저출산 관련 정책에 투입한 막대한 예산과는 무관하게 정책의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걸 시사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결과를 정책의 방향성과 연결지어 분석하는 의견도 있다. 올해 육아 지원 등을 포함한 저출산 정책에 편성한 예산은 46조원가량이다. 이 중 절반 이상은 주거비 등을 지원하는 '간접 지원'에 쓰인다. 고용, 교육과 관련한 예산까지 포함하면 간접 지원 비율은 60%를 넘는다.
결국 출산과 육아 등 부모들이 실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직접 지원' 정책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이 편성된다. 이는 결국 부모들의 육아 정책 체감도 하락으로 이어진다.
육아정책硏 설문 '정책 긍정적' 답변 18.6%뿐
40%가 '의도한 서비스 성과 잘 이뤄지지 않아'
올 저출산 예산 46조중 절반 이상 '간접 지원'
실생활 필요한 '직접 지원' 적어 체감도 하락
육아정책연구소의 '2018~2022 육아정책 분석과 과제(Ⅲ)'에 따르면 2019년 부모들이 꼽은 '저출산정책에서 가장 성과를 보인 과제' 1순위는 '아동수당 도입 및 연령 확대'였다.
아동수당에 불만족한 의견의 73.2%도 '현금 지원수준이 낮아서'였다. 상대적으로 직접 지원 예산의 비율이 적은 탓에 부모들의 선호도가 반영된 육아 지원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육아정책연구소 김근진 부모교육연구팀장은 "저출산 정책에 들어가는 예산은 상당히 많지만, 절반 이상이 주거지원과 같은 간접 지원 예산이다 보니까 실제 출산과 육아를 하는 부모들에 대한 직접 지원 비율이 낮아지는 추세"라며 "저출산 예산 대비 부모들이 체감하는 효과가 낮아지는 데는 이런 측면들이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김 팀장은 "아동수당은 2018년에 도입해서 점차 지급 대상 연령을 올렸다. 부모들의 평가가 좋은 지원 정책에 속하는 편인데, 금액이 높지 않기 때문에 부모 입장에선 체감도가 낮다"며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 등 양적 측면의 보육서비스는 확대되고 있으나 질적 측면에서 부모들이 만족할 만큼의 보육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불만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
글 : 손성배, 배재흥기자
사진 : 김금보기자
편집 : 김동철, 장주석차장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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