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만세

[덕후만세·(1)] 파주 세계민속악기박물관 이영진 관장

재밌고 신기함에 '호기심 자극'… 세계 누비며 채집한 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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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궁금했다. 덕후의 DNA는 타고나는 것일까. 경주마처럼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며, 월세를 왜 내는지 모를 정도로 길바닥 생활을 마다하지 않고 덕질을 했던 지난날의 나는 과연 덕후라고 할 수 있을까. 아, 물론 지금도 취미라는 이름의 덕질은 이어나가는 중이다. 하지만 진정한 덕후들의 세계는 여전히 미지의 대상이다.

덕후들에게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크고 작은 힘이 있다. 그리고 상당한 단계에 이르렀을 때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뮤지엄'을 만들기도 한다. 경제관념이 약간 없고, 이상한 기질이 있으며, 이성적 판단이 잘 안 되는 그 괴짜 같은 덕후 관장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기획을 준비했다.

세상의 모든 덕후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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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손을 씻었어요." 파주 세계민속악기박물관 이영진(사진) 관장이 말했다. 더는 악기 수집을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과연 가능할까 의아해 하던 순간 이 관장이 다시 말한다. "그런데 중요한 게 몇 개 있긴 해요. 파푸아뉴기니에서도 사야 할 악기가 있는데…." 그럼 그렇지. 30여 년을 악기 덕후로 살아온 그에게 수집은 무 자르듯 단칼에 그만둘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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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악기가 있는지 박물관의 벽까지 촘촘하게 메워져 있었다. 모양도 소리도 제각각인 전 세계의 악기가 한 곳에 자리했다. 곰곰이 따져보면 악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와 함께해 왔다. 아름다운 연주로 즐기든, 종교적이거나 주술적인 용도로 쓰였든 인류의 역사에서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지구 상에 6천~7천개의 언어가 있는데, 언어로 민족을 분류했을 때 몇 개 민족(또는 부족) 정도를 제외하고 나머지가 모두 악기를 사용한다고 하니 그 다양성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이미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1천여 개의 악기가, 또 이 관장의 그러한 열정이 박물관의 가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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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 관장이 네팔민속악기박물관에서 MOU를 체결하는 모습. /세계민속악기박물관 제공

1천여개로 박물관벽까지 가득 채워

 


이 관장의 악기 사랑은 1989년 사업차 모스크바 출장을 가면서 시작됐다. 그곳에서 이 관장은 주변 나라들에 여행을 다니며 생전 처음 본 악기들을 마주했다. 책에서도 본 적 없는 재미있고 신기한 악기들이라니 흥미가 절로 생길만하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줄 두개짜리 발현악기인 '두타르'를 인생 첫 악기로 수집했다.

월드클래스 정도로 가려면 이런 악기는 있어야지 했던 것들은 거의 다 모았다.

"예전엔 허겁지겁 막 사댔죠. 주문한 악기가 매일 하늘에 떠 있을 지경이었으니까." 정신없이 모으다 보니 같은 악기를 또 샀다는 말에 얼마나 이 일에 푹 빠져있었는지를 가늠케 했다. "미친놈이지. 자랑할 게 아닌데"라며 툭 던진 그의 이야기에서 모든 것을 쏟은 지난 날에 대한 묘한 감정들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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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악기 구입을 위해 악기연주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이영진 관장의 모습. /세계민속악기박물관 제공

이 관장의 악기에 대한 사랑은 전 세계를 넘나들었다. 독일에서 살 때는 원하는 악기를 사러 헝가리까지 여러 번 다녀왔다. 왜 자꾸 와서 그러냐고 호텔 관계자가 물어보며 악기상을 소개해 줄 정도였다.

인터넷이 없었던 그 시절에는 세계 곳곳에서 나온 악기 책을 보며 수집할 대상을 찾았다. 그 나라에서 부르는 악기를 정확하게 소개하기 위해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 등 16개 언어에 대한 공부도 쉬지 않는다.

우즈벡에서 '두타르' 인생 첫 수집
모으다 보니 같은 물건 또 사기도
"다른 문화 이해하며 어울렸으면"


이 관장은 특히 음악에 대한 편견이 없어야 함을 강조했다. 과연 교과서에 나온 대로 음악을 배웠더라면 이렇게까지 전 세계 다양한 악기를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모을 수 있었겠냐는 것.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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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민속악기박물관에 있는 베트남 악기 '단다'.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힘들게 들여온 악기로는 입구에서 볼 수 있는 '단다'가 있다. 베트남 소수민족들이 사용하는 이 악기는 돌 실로폰이다.

단다는 역사가 수 천 년은 족히 되는데, 박물관에 전시된 악기는 1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8개의 돌 조각으로 구성돼 있다. 베트남에서 음계도 적고 돌별로 소리도 녹음해서 보내줘 이 관장이 직접 조립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세계민속악기 전문가. 세상을 폭넓게 사고하도록 돕고 싶다는 그의 어깨는 상당히 무거워 보였다.

"음악을 만국공통어라고 하지만 나라마다 각자의 음악이 있어요. 다른 사람의 문화를 이해하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제가 악기를 수집한 보람이죠. 이제는 이것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길고 가늘게 가야죠."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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