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감학원 특별기획

[선감학원, 진실을 묻다] 단속이라는 사형선고 '경기도가 만든 지옥'

입력 2022-10-20 10:00 수정 2024-10-3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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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와 선감도에 수용됐던 원생의 얼굴이 섞여 있다. 누가 부랑아인지 구분할 수 있겠는가? 이 사진에서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4,5번이다.

위에 여러 아이의 사진이 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와 선감도에 수용됐던 원생의 얼굴이 섞여 있다. 누가 부랑아인가. 외형만 보고선 누구도 섣불리 구분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경기도는 길가에서 쓰레기를 줍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길거리 아이들을 무작위로 수집했다. 근거는 허무할정도로 빈약했다. 그저 부랑아처럼 보여서.
선감학원 피해자들은 누명을 썼다. 돌아갈 집이 있고, 보호받을 부모가 있는 데도 '부랑아'로 낙인찍히며 선감도란 이름의 섬에 영문도 모른 채 갇혔다. 하물며 소나 돼지의 등급을 나눌 때도 특정한 기준을 적용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부랑아를 판단하는 기준만큼은 어디에도 없었다. 법률에도, 조례에도 부랑아란 용어를 따로 정의하고 있지 않았다. 경기도는 1982년까지 40년 동안 8~18세 나이의 부랑아 4천689명을 지옥도라 불리는 선감학원으로 보냈다.

이곳에 수용된 원생들은 자신의 처지를 납득할 수 없었다. 집과 부모가 그리웠을 테고, 폭력과 강제노역으로 얼룩진 선감학원 시설에 쉬이 적응하지 못했다. 원생 일부는 목숨을 걸고 바다를 헤엄쳐 섬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한 탈출을 감행했고,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원생들이 속출했다. 대개는 제대로 된 묏자리 없이 아무렇게나 묻혔고, 수십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서야 망자들의 흔적을 찾기 위한 발굴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선감학원은 누구의 책임인가.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지만 가슴 깊이에 묻어왔다. 시대 탓을 했고 먹고 사는 일을 핑계댔다. 그렇게 40년이 흘렀다. 이제 명료하게 다시 묻는다. 선감학원은 누구의 잘못인가.
#1 경기도의 무분별한 부랑아 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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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1976년 5월 경기도 고양군(현 고양시) 사회환경국 사회위생과 '부랑아 특별단속' 공문. 경기도지사 발신 문서로, 거리를 배회하는 부랑아들을 선감학원에 이송할 것을 경기도가 명령했다.

경기도, 1976년부터 사흘간 시군 전지역 단속
특별취재팀, 당시 공문서 확보해 분석한 결과
부랑아라는 존재 인식… 단속의 허술함 드러나
대대적으로 붙잡아 들인 이유 '도시 미관' 위해

경인일보는 경기도의 부랑아 단속이 얼마만큼 허술하게 이뤄졌는지 보여줄 수 있는 당시 공문서를 확보했다. 해당 문서에는 도가 부랑아라는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잘 드러난다.


도는 1976년 7월6일부터 8일까지 사흘 간 시군 전 지역을 대상으로 부랑아 단속에 나섰다. 이에 앞서 도는 각 시군에 '부랑아 단속'이란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부랑아 단속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도시 환경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실시하고 있는 부랑아 및 비행소년 선도 사업을 추진하여 많은 성과를 거양한바 있으나 아직도 거리를 배회하거나 걸식하는 아동이 근절되지 않고 있어 다음과 같이 지시하니 자체 계획을 보강하여 단속 및 선도에 철저를 기하도록 할 것."

당시 도가 부랑아를 대대적으로 붙잡아 들인 이유는 다름 아닌 도시 미관을 위해서였다. 집이 없는 아이를 보호하거나, 가출한 소년을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도의 시각에서 부랑아는 그저 도시를 더럽히는 존재였을 뿐이다.



도는 부랑아 단속을 1년 내내 실시했을뿐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특별 단속'까지 벌이며 길거리 청소에 열을 올렸다. 실제로 도는 1976년 5월4일부터 14일간 '유원지 및 관광지 일원'에서 부랑아 특별 단속을 진행했다. 이 때 각 지역에서 붙잡힌 부랑아들은 월 2회 도로 인계돼 '선감학원'으로 이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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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1976년 7월 경기도 고양군(현 고양시) 사회환경국 사회위생과 '부랑아 단속' 공문. 특별단속을 지시한지 2달여만에 경기도가 '도시 환경 정화'를 위해 부랑아를 단속할 것을 전 시군에 지시했다.

단속 대상은 '부랑아 껌팔이 구두닦이 및 거리요보호아동'이었다. 부랑아를 단속하는 공무원들은 그러나 부랑아를 판단하는 기준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단속을 지시하는 공문에 적혀 있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동복리법이나 동법 시행령 또는 시행규칙도 부랑아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명시하지 않았다. 이는 부랑아를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경기도 선감학원 조례'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도는 껌팔이나 구두닦이 등 가정의 생계를 위해 길거리에서 생계활동을 하던 아이들 또한 부랑아로 싸잡아 단속했다. 부랑아에 대한 기준이 분명하지 않으니, 이른바 '가두직업소년'은 부적절한 부랑아 단속의 주요 타깃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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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선감학원에서 지도를 받고 있는 원생들의 모습. /선감역사박물관 제공

초등학교 졸업 후 가정형편이 어려워
다음 해로 입학을 미루고 수원에서 낮에는 구두를 닦고
밤에는 극장에서 장사를 하며
홀어머니와 동생들의 가장 역할을 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수원극장 앞에서 구두를 닦고 있었는데
시청직원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따라오라고 하길래
따라갔더니 집에 가지 못하게 했다
(1973년 8월 선감학원 수용된 김모씨)
#2 경기도 부랑아 단속 직원 "외모로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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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최헌길 경기도지사가 선감학원을 시찰하는 모습. /선감역사발물관 제공

눈에 보이는 직관적 요소에 기대 '단속' 이뤄져
직원들, 성과 위해 상세 기준 없이 자의적 판단
아동복리법을 위반해 강제 이송한 정황도 발견
보호자에 대한 통보 등 절차 없이 곧바로 수용

길거리에 나가 부랑아를 직접 단속하는 직원들은 성과를 숫자로 증명해야 했다. 부랑아를 판단하는 상세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도 성과를 위한 단속을 해야했고, 그 기준은 다분히 자의적이었다. 경인일보는 과거 도의 직원으로, 부랑아 단속 업무를 담당했던 실무자들의 진술을 확보했다. 부랑아로 분류되면 인신구속에 가까운 불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 선정 방식에 신중을 기울였어야 하나, 피해자들의 고통에 상응해 결코 조심스럽지 못했다.

부랑아는 배고프다든지, 걸인 비슷하게
'나 밥 좀 주세요' 하는 애들이 부랑아인 거고
불량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풀이하면 가정이 불우해서 떠돌아다니는 아동이다
제 판단은 집이 아니고 외부에서 잔다든지
밥을 어디로 얻어먹으러 다닌다든지
의복이 남루하다든지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외모적으로 판단한다
(1970~80년대 경기도 부녀아동과 근무자)

이 직원의 증언은 과거 부랑아 단속이 주로 눈에 보이는 직관적 요소에 기대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부랑아를 판단하는 기준에 개인의 주관이 크게 작용하는 탓에 실무자마다 부랑아를 선정하는 기준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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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손재식 경기도지사가 선감학원을 방문해 원생들과 시설을 시찰하고 있다. /선감역사박물관 제공

구걸하고 뭘 자꾸 달라고 하거나
행인 주머니에 손이 들어가고 그런 애들이죠
가게에서도 음식을 훔치고 그런 애들
(단속 실무자 권모씨)
더욱이 도가 아동복리법을 위반해 부랑아를 단속하고, 아이들을 선감학원으로 강제 이송한 정황도 발견된다. 지난 1961년 제정된 아동복리법은 관내 요보호아동을 발견하면 일시보호를 한 뒤 지자체에 보고하고, 보호자에게 통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부랑아 단속을 통해 선감학원으로 보내진 피해자들은 공통적으로 보호자에 대한 통보 등 절차 없이 곧바로 선감학원에 수용됐다고 증언하고 있다. 과거 도에서 아동복리지도원으로 근무했던 한 직원은 "부랑아 같은 경우는 보호자 통지가 힘들었다"며 "부랑아는 단속하면 쫓기듯이 애들에게 인정사항을 묻고 명단만 작성해서 선감학원으로 보내는거라서 우리 쪽에서 보호자 통지를 하기는 어려웠다"고 진술했다.
#3 만들어진 부랑아, 거짓으로 쓰여진 원아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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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1982년 선감학원 운영대책 '귀가 대상 명단' 보고서. 당시 경기도는 부모 형제 등 가정이 있는 아동들조차도 '부랑아'라 낙인 찍고 부모 동의 없이 강제로 선감학원에 수용했다.

결국 당시 도는 실무자의 자의적 기준으로 부랑아를 선별했고, 이들 보호자에게 선감학원 입소 사실조차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여기에 선감학원은 입소 전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음에도 떨어져 살았다고 원아대장을 허위로 기재하는 등의 비상식적인 행태를 보였다.

 

진실화해위원회에 '선감학원 사건 진실규명'을 신청한 신청자 166명의 진술과 이들의 원아대장을 비교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의 원아대장에 '부모동거'로 표기된 이들은 13명인데 반해, 부랑아 단속을 당하기 전 실제 부모와 동거하던 이들은 52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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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박태원 경기도지사가 선감학원을 시찰하는 모습. /선감역사박물관 제공

3형제 모두 선감학원에 수용됐던 정씨 형제의 사례를 보면 이 같은 허점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첫째 원아대장에는 '어려서 부모를 사별', 셋째 원아대장에는 '부친이 사망하고 모친은 행방불명'으로 작성돼 있고, 둘째 원아대장에만 유일하게 부친의 인적사항이 기재돼 있었다. 같은 부모를 둔 3형제의 가정상황이 저마다 다르게 쓰여진 것이다.


이처럼 부모가 있던 아이들을 고아로 둔갑시키면서까지 선감학원에 수용했던 도는 시설 폐쇄를 앞둔 1982년 7월 원생 10여명을 귀가시켰다. 이처럼 부모와 가족이 있는 아이들을 충분히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음에도, 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특별취재팀

/선감학원 특별취재팀 정치부 공지영 차장·신현정·고건기자, 사회부 배재흥·김동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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