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 단원구에 속하는 선감도는 시화방조제가 건설되면서 대부도와 연결됐다. 갯벌이 발달해 어패류 생산량이 많고 낙조가 아름다운 섬에 일제는 부랑아 수용시설을 만들었다. 악명 높은 선감원이다. 일제는 원주민을 강제로 내쫓은 뒤 전국 부랑아로 지목된 소년, 청년들을 잡아들여 강제수용했다. 거리 불량아들을 감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은 항일 독립운동 행위, 정치범, 사회주의자 등을 격리하는 시설이었다. 이유도 모르고 끌려오는 청년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강점기 말인 1942년도에 지어진 선감원은 해방 이후에도 존속되다 1982년에야 폐쇄됐다. 광복이 되자 관리권을 넘겨받은 경기도는 '선감학원'이라 명칭을 바꾼 뒤 20살 미만의 소년들을 수용하는 부랑아 시설로 운영했다. 이후 30년 넘게 선도 수용시설로 운영되면서 강제 노역과 고문 등 비인권적 행위가 자행됐다. 육지와 격리된 섬 수용소는 철창 없는 감옥이었고, 수용자들에겐 악몽과도 같은 고통의 날들이었다. 그런데도 당시 정부는 이미지 홍보를 위해 선감원을 모범적 복지 시설이라고 국정홍보 기록영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일제부터 시작된 잔혹한 인권말살행위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에도 40년 가까이 이어졌는데, 한동안 실상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대로 묻힐뻔한 사건이었으나 선감원 부원장의 아들인 일본인이 1989년 '아, 선감도'란 제하의 소설을 발표하고 위령비 건설에 적극 나서면서 알려지게 됐다. 이어 방송과 신문 등 국내 언론매체들의 다큐멘터리 제작 또는 기획보도가 잇따르면서 관심이 증폭됐다. 충격적인 사실이 폭로되면서 사회적 반향이 확산했고, 마침내 2014년 위령비가 세워졌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달 피해자 150여명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선감동 일원에서 유해시굴을 했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지난 19일 시굴 현장을 찾아 희생자들 봉분에 국화꽃과 빵을 올렸다. 피해자와 유가족이 동행, 당시의 비극적인 상황을 전했다고 한다. 김 지사는 이날 "도를 대신해 유가족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며 "진상 규명과 피해자에 대한 지원 대책, 추모 공간 조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선감원을 인권의 소중함을 알리는 역사의 장으로 조성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홍정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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