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감학원 특별기획

[선감학원 특별기획·(下)] 단속만 집중 '거주지 파악' 부실… 장례·애도 없이 시신 암매장

'목숨 건 탈출' 비료 포대 쓰고 갯벌로
입력 2022-10-24 20:43 수정 2023-01-16 10:32
지면 아이콘 지면 2022-10-2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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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일 안산 선감동 선감묘역에서 진행 중인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희생자 유해 시굴 작업. 2022.9.29 /김동한기자 dong@kyeongin.com

절차도, 책임도 없는 주먹구구식 암매장

선감학원 사망 아동들은 강제 노역과 폭력에 노출돼 병에 걸려 죽거나 탈출을 감행했다 실패해 '익사'했다.


경인일보가 확보한 '선감학원 퇴원사유' 자료에 따르면 '사망'이라 기재된 아이들은 총 24명이었지만, 피해자와 근무자 진술을 통해 이보다 훨씬 많은 최소 수백명의 아동들이 선감도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파악됐다. 

사망 24명 적혔지만 수백명은 될듯
질병·탈출 생 마감땐 친구 손에 묻혀

현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150구 이상 묻혀있다 판단해 유해발굴을 추진 중인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공동묘역 부지는 당시 원생 사이에서 '공동묘지'라 불렸던 언덕이다. 죽은 아이들은 어떠한 장례 절차나 죽음을 애도하는 의식도 없이 이곳에 묻혔다.

"도망간 지 열흘만에 시신으로 떠밀려온 동기가 있었어요. 공동묘지에 그 친구가 묻혔는데, 장마가 오거나 바람만 엄청 세게 불어도 묘지 흙이 다 쓸려 내려 시체들이 다 밖으로 나와 버렸어요."(1966년 10월 수원 일대 경찰의 부랑아 단속에 걸려 선감학원에 입소된 이모씨)

암매장은 책임지는 이 없이 아이들 손에 맡겨졌다. 지옥 같은 선감도 안에서 같은 날 잡혀들어와 '동기'라는 연대를 쌓고, 같은 방을 쓰며 동고동락한 '친구'가 시신이 돼 돌아와도 슬퍼하거나 거부도 하지 못한 채 경기도 공무원의 지시에 따라 삽을 들고 나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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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일 오전 안산시 선감동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희생자의 유해 매장지 선감묘역에서 관계자들이 희생자의 유해 시굴을 하고 있다. 2022.9.29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죽은 친구의 시신을 아무렇게나 땅에 파묻도록 방치한 국가가 원망스럽고, 이 시신을 묘지까지 들고 날라 땅에 파묻는 자신이 마치 공범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두려움과 친구의 죽음을 슬퍼할 틈도 없이 새로운 아이가 죽어 돌아왔다. 그나마 해줄 수 있는 건 산에 핀 꽃 한송이 꺾어 놓아주는 일 뿐이다.

"선생님(직원)이 불러 따라갔더니, 탈출한 지 2주 만에 죽은 원아 시신을 저한테 묻으라 했어요. 묻을 때 경찰이나 의사는 없었어요. 그냥 나를 부르면 '또 묻으러 가는구나' 하고, 그냥 열심히 묻었어요."(1956년 9살의 나이로 구두닦이를 하다 선감학원에 잡혀 온 강모씨)

찾을 수도, 찾아 나설 수도 없는 선감의 아동들
부랑아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끌려온 아동 상당수가 가정이 있었다. 아동들을 잡아간 공무원도, 선감학원 직원들도 돌아갈 집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수용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다. 당시 경기도가 작성한 문서를 보면 '가정통신문'을 일부 가정에 발송했다고 적혀 있지만, 실제는 대다수 반송되거나 도착하지 못했다.

경기도는 부랑아를 단속하는 데만 급급해 아동들의 정확한 거주지를 파악하는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경기도 공무원들은 잡아온 아동들의 진술에만 의존해 주소를 작성했는데 잡혀올 당시 대부분 10세 전후의 어린 아이들이 정확한 집 주소를 기억해 내기엔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렇다 보니 원아대장에 적힌 아동들의 주소는 대부분 경기도 인천시(현 인천광역시), 부천시, 서울시 사당동과 같이 불명확하게 작성됐다. 도 직원들이 형식적으로 보낸 통신문 역시 주소불명으로 반송되기 일쑤였고, 가정에 통보되지 않은 건 철저히 주소를 제대로 말하지 못한 아동의 책임이었다. 일부 아동들은 자신의 학교까지 기억해 부랑아가 아님을 증명했지만, 묵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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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노역과 폭력에 의해 죽거나 목숨을 걸고 탈출하다 익사해 숨진 선감학원 사망 아동들이 묻힌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공동묘역 부지.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가평에 집이 있고, 가평에 국민학교를 다닌다고 분명히 얘기했어요. 학교에 전화 한 통이라도 했으면 잡혀가지 않았을 텐데, 그저 구두닦이로 보인다는 이유로 연락 하나 보호자들에게 돌리지 않았어요."(1973년 13살의 나이로 선감학원에 입소된 한일영씨)
집있는 아동 상당수 가족에 미고지
가정통신문도 주소 불명 반송 일쑤
부모가 찾아도 '모른다' 국가가 차단
부모들은 사라진 아이를 애타게 찾으러 나섰다. 경찰서에도 가보고 시청, 읍면동사무소 등 닿을 수 있는 국가기관에 도움을 청했다.

'아이가 일주일 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시청 직원이 우리 아이를 데려가는 걸 누군가 봤다고 한다' 등 구체적 정황까지 말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모른다"였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작성한 '선감학원 아동인권침해사건 보고서'의 연구책임자인 정진각 안산지역사연구소 소장은 "인권보고서 작성 당시 한 피해자 부모가 수원시청 공무원이 아이를 잡아가는 걸 이웃이 봤다고 듣고 곧바로 시청에 실종 신고했다. 그러나 시청은 그런 아이 모른다, 일없다는 식으로 내쫓았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사실상 선감학원에 잡혀온 이상, 아동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도, 부모가 아이를 찾아내는 방법도 모두 철저히 국가가 차단했다.

/특별취재팀

※선감학원 특별취재팀
정치부 공지영 차장, 신현정·고건 기자, 사회교육부 배재흥·김동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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