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억울해." 주인공 유코(홍민아)의 대사에는 한 보다는, 유쾌함과 왠지 모를 광기가 담겨있었다. 관객들은 100분 내내 웃으며 극을 따라가지만, 극장을 나설 때는 유머에 숨은 의미를 곱씹으며 자리를 떠나게 된다. '억울한 여자'는 '억울'이란 단어가 품은 중압감을 가볍게 풀되, 주제 의식에는 이를 묵직하게 담아낸 연극이다.
지난 24일 수원SK아트리움 소공연장에서 수원시립공연단의 2023년 첫 정기공연 '억울한 여자'가 무대에 올랐다. '달콤쌉싸름한 블랙코미디'라는 소개답게 연인과 부부, 엄마와 딸, 친구들과 단체로 온 중년 관객 등 남녀노소로 만석이었다. 지난 2008년 초연 때 '한국연극 베스트7'에 선정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점도 한몫했다.
홀로 '떨매미'를 찾아 나선 여인
관심 깊어질수록 주변인과 관계 균열
연극은 도쿄에서 한참 떨어진 어느 한적한 소도시의 오래된 커피숍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언뜻 보기엔 평화롭고 느긋해 보이지만, 궁금증을 자아내는 수수께끼 같은 요소들이 중간중간 등장한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으나 마을 경제에 도움을 주는 '에너지 연구소', 그런 에너지 연구소와 관련이 있는 듯한 비정상적 희귀종 '떨매미', 유코의 남편 다카다(송진우)가 집필한 동화책에 등장하는 '외로운 사자'.

평소 좋아하던 그림책 작가 다카다와 재혼하게 되면서 극의 배경이 되는 장소로 이사 온 주인공 유코. 그가 수수께끼 존재 '떨매미'에 관심을 보이면서 주변 인물과의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남편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은 떨매미를 찾으려는 유코를 이상하게 몰아간다. 튀는 행동을 저지하려는 주변 인물들의 눈초리가 거세질수록, 유코는 '떨매미'에 더욱 강하게 매료돼 집착의 끈을 놓지 않는다.
'떨매미'와 '에너지 연구소'는 유코의 집착과 광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반면, 이를 저지하는 주변 인물들은 평화로운 일상을 흔드는 유코를 이상하게 몰아간다. 하지만 일상을 지키려는 주변 인물들도 불륜을 통해 남몰래 일탈을 꿈꾸는 등 일상을 벗어나려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모난 돌 정맞는다'는 현실적 공감
작품성 인정… 남녀노소 관객 만석
'억울한 여자'에서 유독 눈에 띄는 부분은 대사 중간중간 등장하는 다카다의 그림책이다. 그림책의 주인공 '외로운 사자'는 자신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날카로운 발톱을 뽑아내는 등 세상에 자신을 맞춰간다.
언뜻 친절한 듯 보이나, 다수 의견에 반하는 순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주변 사람들. 그리고 따가운 시선이 거듭될수록 보란 듯이 집착하며 주류에 역행하는 유코가 펼치는 이야기는 '모난 돌이 정을 맞는' 현실에 대한 공감을 웃음 속에서 이끌어낸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