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수요광장] 껍데기만 남은 행진곡

입력 2023-05-30 19:48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5-3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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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로 시작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대 이후 운동권의 애창곡이다. 이제는 정부 공식행사에서도 불린다. 한동안 이 노래가 좌우를 구분하는 기준인 적도 있었다. 한편에서는 애국가처럼 엄숙하게 불렀다. 다른 한편에서는 힘찬 손짓과 함께 투쟁 의지를 상기하며 노래했다. 이 노래는 특히 386세대와 소위 '진보' 진영에 큰 영향을 주었다.

군부독재시절의 민주주의 운동은 탄압받았다. 운동가는 개인의 영달을 포기하고 대의(大義)를 추구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사랑, 명예, 이름 따위를 버리라고 노래한다. 하지만 돈은 거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주먹 쥐고 노래 부르던 사람들은 돈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돈은 땀 흘려 벌고, 아껴 모은다. 그러나 그들의 방식은 다르다. 단위도 예사롭지 않다. 


"사랑·명예·이름도 남김없이…"
민주주의 정신 노래 부르던 이들


국회의원 김남국의 투자 방식은 무척 흥미롭다(투자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투기가 적절하다). 그는 코인 투기의 귀재다. 매도 타이밍을 기막히게 포착했다. 수익률도 상상 초월이다. 보통사람은 감탄할 뿐이다. 그는 국회 회의 시간에 코인을 거래한 의심도 받고 있다. 회사원도 근무시간에 주식 거래하면 퇴직 사유가 될 수 있다.

일제 강제징용배상금 중 20%를 달라고 피해자지원시민단체는 요구하고 있다. 사전에 피해자와 약정이 이루어졌다. 돈을 받지 말라고 종용했지만, 배상금이 나오자 분배를 요구한 것이다. 석연치 않다. 그들은 분배금이 단체의 활동에 쓰인다고 주장한다. 당사자 외에 다른 사람이 배상금을 수령한다? 브로커의 느낌이다. 변호사의 성공보수와 무엇이 다른가.



법원에서 유죄판결이 내려진 국회의원 윤미향의 후원금 횡령사건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은 거액을 기부했고, 서민들은 소액 후원금을 보냈다. 법원은 일부 금액의 횡령을 인정했다. 유죄로 판결이 났지만 그들은 당당하다. 대의를 위한 활동에 소소한 금전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 단체의 회계처리와 감사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아직도 일부 국민들은 후원금의 일부를 누군가의 생활비, 자녀유학비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거두지 않는다.

386 정치인의 하나인 송영길 전(前) 의원은 당대표 경선에서 돈봉투를 뿌린 혐의로 조사 중이다. 학생운동 경력은 그의 주요한 정치 자산이다. 그 역시 '사랑, 명예, 이름도 남김'없이 살자고 노래불러왔다. 측근은 구속되었지만 본인은 몰랐다고 주장한다. 과연 무관할까. 국민들은 의심하고 있다. 책가게를 개업한 문재인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서점에서 일하는 청년에게 보수를 지급하지 않기로 했었다. 논란이 되자 이를 철회했다. 누구보다 청년을 걱정했고, 최저임금을 강조했던 대통령이었다.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악덕 사장'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 살 수 없다고 강조한다.

386 송영길 前 의원 돈봉투 혐의
문재인 책방 '열정페이' 논란 등
돈 밝히는 정치인들 행동 '위선'


누구보다도 돈을 좋아하고, 재산 축적에 열심인 그들이다. 그렇지만 자신을 물욕이 없는 사람으로 코스프레 한다. 헤진 운동화와 낡은 가방이 상징이다. 그들의 위선은 오래된 전통이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은 마이너스 재산을 신고했었다. 그러면서 대형 평수의 아파트에 살았다. 가난은 부끄럽지 않다. 그렇다고 자랑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수십 년 한 사람의 재산이 마이너스라면 의문이 생긴다. 중년 이후에도 빚으로 살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 사람에게 국가경영을 맡길 수 있겠는가.

광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이 있다. 먹고 살기 힘들면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지만 진정한 선비는 그렇지 않다(無恒産而有恒心者, 惟士爲能)고 맹자도 말했다. 돈을 밝히는 우리의 정치인들은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한 듯하다. 그러나 청빈과 고고함을 가장하며 선비인 척한다. 그러면서 후원금을 열심히 모금한다. 가난마케팅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주의의 정신을 생각하면서 다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한평생 나가자는 뜨거운 맹세"의 동지들은 사라졌다. 알맹이가 없어진 자리에 껍데기만 남았다. '껍데기는 가라!'

/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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