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쓸쓸한 그림 이야기┃안민영 지음. 빨간소금 펴냄. 248쪽. 1만7천원

작가는 한 명이지만 전혀 다른 두 개의 작품 세계가 검색어의 초성에 따라 나뉘어 펼쳐지며 그의 반쪽만 접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납·월북 예술인에 대한 언급이 해금된 1988년 이전 이쾌대는 남한에서 아예 지워져 있었다. 이쾌대의 이름은 '이○대'로 표기됐다. 북에서도 이쾌대의 이름은 오랫동안 지워진 이름이었다. 1953년 남측 포로수용소에서 나와 북으로 건너가 활동한 그의 이름은 1960년대 자취를 감추고 1999년이 지나서 다시 등장한다.
월북 이후 일제치하 3·1운동을 소재로 그린 군상 '3·1봉기'가 동유럽에 전시되는 과정에서 작품 속 태극기가 북한 내부에서 비판받으며 문제가 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저자 "월북·재일조선인·남한 출생 해외활동 작가
의도적으로 잊혔거나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은 이들
한국 근현대 역사와 미술의 숨은 조각 나누고 싶어"
책 '어느 쓸쓸한 그림 이야기'(빨간소금 刊)는 이쾌대를 포함해 임군홍·변월룡·박경란·신순남·전화황·김용준·이응노·도미야마 다에코 등 9명의 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북으로 향했거나, "한반도에서 살지 않았으나 우리 역사의 한편에 있는 이들"이다. 그래서 책에는 '경계의 화가들을 찾아서'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쾌대·임군홍·김용준은 월북화가, 변월룡·신순남은 '고려인' 화가, 전화황은 재일조선인 화가, 박경란·이응노는 남한에서 태어나 각각 북한과 유럽에서 할동한 화가, 도미야마 다에코는 일본인으로서 한국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화가다.
책은 인천지역 교단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현직 교사 안민영이 썼다. 저자 안민영은 이들에게 '경계의 화가'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고향에 따라, 활동 지역에 따라, 성별에 따라 다른 경계와 마주하고 그들이 느끼는 불안함과 두려움, 아득한 감정이 책을 통해 전해진다.
책 속에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그림들이 많다. 이쾌대의 군상 '3·1봉기'(16쪽 그림)나 박경란의 '딸' 등이다.
안민영은 "의도적으로 잊혔거나, 존재했으나 보이지 않았던 미술가들을 이 책을 통해 소환해 보고 싶다. 한국 근현대 역사와 미술의 숨은 조각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책 머리에 글을 남겼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