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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대용 한국청년입법정책학회 이사장·변호사
이상한 나라다. 현수막을 함부로 설치하면 처벌을 받는데 갑자기 정치인들은 예외로 하는 법이 만들어졌다. 물론 정치적 현안이 기재된 현수막에 대해서만 예외가 적용되기는 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일상이 정치적 현안에 대한 입장 표명이니 정치인들이 설치하는 현수막은 사실상 처벌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현수막을 설치하는 장소나 현수막의 내용이 매우 고약하다. 차량들과 보행자들이 많이 다니는 사거리에 무분별하게 설치되어 다양한 안전사고를 유발한다. 비방, 모욕, 욕설로 가득 찬 현수막이 아이들이나 학생들이 다니는 통학로에 설치되어 우리 미래세대들의 정신건강을 해친다. 지역사회나 주민들에게 고의적으로, 무차별적으로, 지속적으로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이다. 모 언론이 최근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정당현수막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국민이 무려 80.6%에 달한다. 이 정도면 사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반대하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러면 정치권이 앞다투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더불어민주당의 모 의원은 8월17일 무소속 국회의원에게도 예외를 적용하자는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다. 정당에 소속된 정치인들만 혜택을 받는 예외를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무소속 정치인들에게까지 확대하자는 것이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국민들의 뜻과 바람을 무시하는 정치인들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인천시가 앞장서서 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인천시는 현수막으로 인해 초래되는 안전사고나 도시환경 저해 등의 문제를 지적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왔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 최초로 조례를 제정하였다. 인천 지역 군수·구청장들도 현수막 정비에 대한 결의문을 채택했고 연수구에서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일제 정비를 추진했다. 정당현수막 난립 문제와 관련하여 직접 조례를 개정하고 나아가 조례에 저촉되는 현수막에 대한 일제 정비를 추진하는 지자체는 인천시가 유일하다. 인천에 사는 주민으로 아낌없는 박수와 응원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현안 기재된 게시물 처벌 예외 적용
무분별 설치·비방욕설 노출 '구시대적 병폐'
현행 옥외광고물법, 시민과 차별 평등권 침해
'현수막 일제 정비' 인천시 유일 추진 응원

그렇다면 정치인에 대해 예외를 인정해 주고 있는 현행 옥외광고물법은 왜 문제인가. 그것은 이 예외가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인 평등권, 환경권,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가의 국민안전보장 의무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첫째, 현행 옥외광고물법은 정치인과 일반 시민을 차별하여 헌법 제11조의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 소상공인이 사업을 광고하기 위해 현수막을 걸려면 지자체 허가 또는 신고 후 수수료를 내고 지정 게시대에 설치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반면 정당현수막은 예외를 적용받는다.

둘째, 정당현수막은 헌법 제35조의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환경권을 침해하고 있다. 무분별하게 난립한 정당현수막이 거리의 미관을 크게 해쳐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한다. 특히 아이들의 교육환경에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자체는 학생들의 교육환경을 보장하기 위하여 학교 주변 및 어린이보호구역에 설치된 불법 현수막, 전단 등 옥외광고물에 대하여 정비작업을 매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당현수막은 예외를 적용받는다.

셋째, 무분별한 정당현수막은 보행자와 차량 통행에 지장을 주어 안전을 위협하고 있고, 이를 방치하는 것은 헌법 제34조 국가의 국민안전보장 의무에 위배 된다. 대다수 정당현수막은 횡단보도 등이 위치한 교차로에 설치되고 있고 이럴 경우 횡단보도를 통과하려는 차량, 특히 전고가 낮은 승용차 운전자의 시야가 방해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다양한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G7에 속하는 선진국 중 현수막 정치를 하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가 G8에 속하는 나라가 될 수도 있다는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상황에서 후진적인 현수막 정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정당현수막에 대한 해결책은 명확하다. 현수막 정치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사라져야 할 구시대적 병폐이다.

/백대용 한국청년입법정책학회 이사장·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