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안게임으로 들썩이는 항주(항저우)는 타국의 낯선 지역일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의 뿌리를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데에 특별함이 있다.
'항주시 장생로 55호.' '대한민국임시정부 항주유적지기념관'이 자리한 곳이다. 항주는 산과 호수, 탑과 다리가 어우러져 '지상 위의 천국'이라 칭송받는 중국 7대 고도 중 하나다. 현재는 고층 건물이 즐비해 중국의 발전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기념관은 현대 항주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오래된 건물이었다.
'장생로 55호' 옛 실제 청사 사용
수립 등 업적 중국·한국어로 설명
지난 23일 오후 1시 30분께 찾은 기념관에는 중국인들도 여럿 보였다. 기념관 관계자가 한국인임을 알아채고 반갑게 맞았다. 기념관 관계자는 중국인들도 대한민국의 역사 유적지인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했다.
이곳은 과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청사로 잠시 사용됐던 곳이다. 당시 중국 국민정부의 주선으로 이곳에 청사를 마련하고 1934년 11월까지 사용했다. '호변촌 23호'라 해서 현재 기념관 건물의 일부분만 실제 청사였다고 한다.

기념관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관한 설명으로 가득했다. 임시정부의 수립을 포함해 임시정부가 했던 일 등을 중국어와 한국어로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1919년 4월부터 중국 상해에 자리를 잡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1945년 광복을 맞는 해까지 중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있는 항주 지역에서는 1932년 5월부터 1935년 11월까지 있었다.
청사를 매번 옮겨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항주 시기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많은 일을 했다.
1933년 5월 김구와 장개석의 회담을 통해 중국 국민정부의 지원을 약속받았고 1934년 4월 국무위원 명의로 국내외 주요 거점에 외교 대표부를 설치하는 '외무부행서 규정'을 발표하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항저우/김형욱기자 uk@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