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를 하루아침에 빼앗겼습니다."

파주시의 한 CJ대한통운 A택배 대리점에서 배송 업무를 하던 김모(46)씨가 자신의 배송구역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접한 건 이달 15일이다. A대리점 측이 김씨와 상의 없이 다른 기사를 기존 김씨 구역에 새로 배치하겠다고 일방통보하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됐다.

김씨는 "대리점 소장이 (내가) 직접 쓰지도 않은 위조 계약서를 들이밀며 막무가내로 구역에서 빠지라고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바뀐 구역은 재개발로 공터가 된 지역이 큰 부분을 차지한 탓에 기존 배송량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번 명절도 그렇고 세 아이의 가장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울분을 토했다.

배송량 준 재개발공터로 배치
'허위계약서' 내밀며 일방통보
대리점 "동의 따라 함께 작성"

27일 CJ대한통운 A대리점과 김씨 등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2021년 A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택배 기사 일을 시작했다. 이듬해 A대리점 소속으로 김씨와 다른 구역에서 일하는 다른 기사가 빠지면서 김씨는 9월까지 자신의 배송 구역을 맡아왔다.

문제가 터진 건 지난 8월 김씨와 대리점 측이 택배분류작업을 놓고 마찰을 빚으면서다. 김씨는 당시 분류작업비를 온전히 받지 못했던 점, 분류작업이 택배 기사의 업무가 아닌 점 등을 주장하며 작업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러자 A대리점 측은 김씨에게 계약서를 꺼냈다. 김씨는 당시 계약서의 존재를 처음 알았으며 대리점 측이 허위로 작성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씨는 "주변 지역의 택배 기사 얘기를 들어보니 다들 최저 시급 이상의 분류작업비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온전히 받지 못했다"며 "무엇보다 배송 전 분류작업을 하며 업무 과중에 시달렸는데 하지 않아도 되는 업무인 것을 알고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문재인 정부 당시 여당과 CJ·롯데·한진·로젠 등 4개 택배사, 택배노조 등은 택배 분류작업은 택배 기사 업무가 아니고,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60시간 이내여야 한다는 내용의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도 했다.

이에 대해 A대리점 측은 지점의 형편상 택배 기사가 분류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며, 계약서도 동의에 따라 작성했다는 입장이다. A대리점 관계자는 "2022년 8월 표준계약서로 변경이 필요해 해당 기사와 택배 구역 등이 담긴 계약서를 작성했다"며 "소장을 제외하고 기사가 1명밖에 없었던 지점이라 택배 기사가 직접 분류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 김씨가 그걸 알고도 분류 작업에 나서지 않아 그런 결정(구역 재배치)을 했다"고 해명했다.

김씨는 생존권을 박탈당할 위기에 놓였다며 원청 사업자인 CJ대한통운이 대리점의 부당노동행위와 사안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인일보는 이날 A대리점 사안과 관련, CJ대한통운 측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대리점 측과 대화해보라"는 답변 외에 별다른 입장을 들을 수 없었다.

한편 CJ대한통운이 하청 업체인 대리점에 노무를 제공하는 택배 기사들과 단체교섭을 해야 한다는 법원의 1심 판결이 지난 1월에 나왔다. 이에 CJ대한통운은 택배 기사는 원청과 직접적인 계약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에 교섭 의무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불복해 2심이 진행 중이다.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