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주기…인양할 수 없는 슬픔을 헤아린 詩 ‘뒤집힌 꽃잎’ 제10회 박영근 작품상 수상작 선정 [인천문화산책]

입력 2024-04-30 10:51 수정 2024-04-30 15:45
<뒤집힌 꽃잎 - 바다의 노래> 박한 作

별이 떠 있나요 기다리는 곳에
밤새 이슬들이 무겁진 않나요
난 떠나온 곳에 바람만 외웠어요
파도를 아무리 뒤적여봐도 소용없어요
.
여긴 들어오지 마세요
어둠과 날숨들이 엉킨 이곳은
뒤집힌 꽃잎
.
종이 치질 않네요 아직 밤인가요
늦지 않았다면 이제 사과할게요
별을 바라보며 사랑을 꿈꿨고
누군가 그리울 땐 꽃을 꺾었죠
.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나는 분명 봄이었는데
겨울나무들처럼 온몸을 잃어버린
뒤집힌 꽃잎
.
난 이제 알았어요
별이 이토록 어둡다는 것을
그리고 내 영혼이 이렇게 무겁다는 것을
.
어머니, 울지 말아요
난 이제 그만 어두워질게요
다만 내 이름은 꽃잎이라 기억해줘요
깊은 바닷속, 종소리 들리지 않겠지만
이 수업도 어쨌든 끝이 나겠죠

담담한 어조의 이 시를 읽고 무엇이 떠오르나요? 꼭 2주 전 4월16일은 세월호 참사 10주기였습니다.

박한 시인의 시 ‘뒤집힌 꽃잎 - 바다의 노래’가 제10회 박영근 작품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고 30일 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가 발표했습니다.

박영근 작품상은 박영근(1958~2006) 시인 기념사업의 하나로, 올곧은 정신으로 치열하게 시를 쓰고 있는 시인들을 지원하고 격려하고자 2014년 제정됐습니다. 전년도에 발표된 작품 중 박영근 시인의 시 정신을 잇는 빼어난 작품 1편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어요.

박영근 시인을 잘 모르는 분이라도 그의 시 ‘솔아 푸른 솔아 -백제6’는 알겁니다. 가수 안치환이 이 시를 개작해 부른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도 유명하죠.

박영근 작품상의 열 번째 수상작 ‘뒤집힌 꽃잎 - 바다의 노래’는 박한 시인의 첫 시집 ‘기침이 나지 않는 저녁’(삶창·2023)에 수록됐습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을 화자로 삼은 시네요.

올해 박영근 작품상 본심 심사위원은 이설야 시인, 오창은 문학평론가, 박일환 시인이 맡았습니다. 예심에서 본심으로 올라온 작품은 30편가량이었다고 합니다.

박영근 시인이 가난과 외로움, 절망에 맞서가며 남긴 고투의 흔적들인 시편과 그 바탕이 된 시 정신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는 큰 기준으로, 일반 독자는 물론 시단에서도 아직은 덜 알려진, 그러나 빼어난 성취를 이뤘다고 판단되는 작품에 수상의 영예를 안겨 주자는 게 심사위원들 생각이었다네요.

심사평은 이렇습니다.

“‘뒤집힌 꽃잎’이라는 상징을 통해 압도적 비극을 상기시키는 그날의 진도 앞바다로 독자들을 데려간다. ‘꽃잎’이 주는 작고 여린 이미지와 ‘뒤집힌’이라는 조난의 이미지가 상호 침투하며 만들어 낸 비극의 정황은 동시대인들을 아프게 한다. (중략) 당사자가 아니면 체득하거나 결코 인양할 수 없는 슬픔의 깊이가 있음을 알려주는 시편에 박영근 작품상이라는 이름을 얹어 주기로 한 까닭이다. 올해가 세월호 참사 10주기라는 점에서 더 각별한 선택이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박한 시인.

박한 시인.

1985년생 박한 시인은 2018년 지용신인문학상에 ‘순한 골목’이 당선됐으며, 2019년 경기문화재단 유망작가로 선정됐습니다. 지난해 첫 시집 ‘기침이 나지 않는 저녁’을 출간했고요.

시인의 수상 소감도 들어 볼까요.

“박영근 선생님의 시를 좋아하고 또 사숙했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작고하셨지만 그분의 정신이 제 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과 사양지심이 동시에 떠올랐습니다. 이 상을 등불 삼아 앞으로 이어질 문필의 고적함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더욱 분투하겠습니다.”

시상식은 오는 11일 오후 4시 인천 부평구 신트리공원 내 박영근 시비 앞에서 개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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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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