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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인 휴먼다큐

[50인 휴먼다큐·34]사라져가던 옷칠문화 부활시킨 칠예가 전용복씨

옻나무 진액의 전통 빛깔… 세계를 물들인 예술 한류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김영준기자 기사모음

   

[경인일보=김영준기자]옻은 옻나무의 진액이다. 15년 이상 자란 옻나무에 상처를 내면 그 상처의 치유를 위해 나무가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따지면 일종의 '딱지'인 셈. 100일간 20회에 걸쳐 채취하는 옻은 종이컵 한 컵 정도의 적은 양이라 더없이 귀할 뿐 아니라 최고의 도료이며 접착제다.

옻칠로 완성된 작품은 만 년을 견딘다. 신비한 재료가 아니면 이렇게 견딜 수 있겠나. 그렇기에 단 한 방울도 헛되게 사용하면 안 된다. <전용복 저 '한국인 전용복' 중에서>옻칠의 종주국인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의 사라져가던 옻칠 문화를 부활시킨 주인공으로 통하는 대한민국의 칠예가 전용복(57)이 인천에 정착했다.

전용복은 1991년 세계 최대 규모의 옻칠 예술품인 도쿄 메구로가조엔(目黑雅敍園)을 복원한 한국인이다. 일본인이 경복궁을 복원한 격이다.

이후 전용복은 일본 최대의 옻칠미술관인 이와야마 칠예 미술관을 개원하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5억원대 옻칠 시계를 만들었다. 일본 언론은 그에게 '세계 최고의 칠예가 한국인 전용복'이라는 칭호를 붙여줬다. 그런 전용복이 20여년 일본 활동을 접고 지난 봄 영구 귀국해 인천 가좌동에 본사를 둔 한 가구사와 공동협약을 맺고 옻칠예 연구소를 개관했다. 가을 햇살이 알맞게 내리쬐던 어느 날 연구소에서 이 위대한 장인을 만났다.

   

■ 옻칠에 빠지다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피란민이 모여 살던 부산의 한 판자촌에서 태어난 전용복은 유난히 손재주가 좋았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판자로 된 담장에 분필 조각으로 그림을 그렸으며, 초등학교 입학 무렵에는 목재소에서 헌 나무토막을 주워 와 토끼집과 개집을 손수 만들기도 했다.

"그 무렵 엉뚱한 구석이 많았던 것 같아요. 나뭇가지나 깨진 항아리 따위로 마음 내키는 대로 꾸며놓고는 '내 작품'이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는 "우물 속에 돌멩이를 빠뜨리고는 파문이 이는 모습을 넋 놓고 보기도 했으며, 소나무 판자에 동심원으로 퍼져 있던 나이테와 나무의 질감도 생생히 떠오른다"며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그가 정식으로 옻을 접한 건 1976년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유독 옻칠한 장롱에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목재 회사에 취직, 4년간 몸을 담기도 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예린칠연구소'를 설립, 칠예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내 느낌을 표현하는데 소재에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며 "붓 대신 자개로, 캔버스 대신 가구 위에 펼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용복은 어느 날 한 자료집에서 토기 위에 옻칠을 한 '와태칠 기법'을 접하게 됐다.

가구보다 도자기를 더 예술성 있는 작품으로 여기던 차에 여러 사람의 손길을 거쳐야 하는 가구보다는, 구상한 내용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작업을 모색하던 중 와태를 알게 된 것이다. 옻을 소재로 한 몇 번의 개인 전시회는 반향을 일으켰고, 1986년에는 한국현대공예미술전에 와태칠 작품을 출품해 대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그는 점차 가구에서 멀어지고, 어느덧 창작에 전념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 전용복이 복원한 메구로가조엔

전용복은 1980년대 일본의 옻칠 문화를 접한 이후 현지의 장인과 도쿄예술대학 등을 수차례 방문해 옻칠에 대해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무역업을 한다는 한 일본인이 아서원이라는 음식점에서 '오젠'이라는 밥상을 수리하기 위해 가져왔다.

그 일본인은 도쿄예술대에서 전용복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다고 했다.

무심코 밥상을 살펴보던 중 눈이 번쩍 띄었다. 밥상의 윗부분에 고운 빛깔의 나전으로 두 마리의 학이 아름답게 입혀져 있었던 것이다.

"하늘로 비상하는 학의 모습을 표현한 자개의 주름질 기법이 완벽한 한국식이었어요. 더구나 학의 날개 부분은 자개의 무늬를 살려 운동감을 주고 있었죠."

낡은 자개를 떼어내고 귀 부분을 손질해 새 밥상으로 만들었다.

"밥상을 보내고 며칠 지나지 않아 일본에서 매우 만족한다는 전화가 왔어요. 곧이어 수화기를 통해 지난번과 똑같이 수리해야 할 밥상이 무려 천 개가 있다고 했습니다."

동네 중국집쯤으로 생각했던 아서원은 일본에서 그토록 유명한 메구로가조엔(1931년 건립)이었다. 이 같은 인연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는 일이 1988년 일본에서 생긴다. 일본 장인 3천여명을 제치고 메구로가조엔의 실내 장식 복원 공사 총책임자가 된 것이다. 지진으로 인해 손상된 작품을 부활시키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연인원 10만명, 1년 동안 국내 생산량은 500㎏이며 일본 생산량은 1t에 불과한 옻을 3년간 10t을 사용하는 등 1조원의 비용이 들어간 방대한 작업을 한국에서 데려간 장인 300명과 함께 3년 만에 완벽하게 복원해 내는데 성공했다. 이후 2004년엔 세계적인 규모의 칠예미술관인 일본 '이와야마 칠예미술관'을 7년간 운영했다.

   

■ 전통은 옛 것을 지키는 정신

그는 "전통은 옛 것을 지키는 정신이다"며 "뿌리는 두고 열매는 시대에 맞춰서 변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신석기 시대 민무늬토기 이후, 매 시기를 거치면서 자기가 변화되고 발전하듯이 근간은 유지하되 당대의 결실물들은 지속적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초의 옻칠 엘리베이터, 전자제품, 세계적 명기를 능가하는 옻칠악기에 이어, 글로벌 시계회사 '세이코'의 명품시계 '크레도르' 디자인을 옻칠로 제작해 개당 6억원이 넘는 가격으로 전 제품을 매진시키고, 8억4천만원의 세계 최고가 옻칠작품 시계를 제작한 전용복의 행보는 이 같은 그의 의지에서 비롯되고 있는 셈이다.
   

전용복은 최근 인천에서의 작업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인천에 본사를 둔 바로크가구(BAROQUE C & F)의 김정식 대표이사님은 내 뜻과 의지를 잘 이해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 분과 함께 획기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작품들을 선보일 것입니다."

또한 전용복은 숙원이었던 후학 양성을 위해 최근 서울에 '전용복 옻칠 아카데미-부설 전시관'을 설립하는 등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