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일보 이은 경기매일 건물 사무실 변모
인천신문 사옥 부지는 스포츠센터로 이용
경인일보 인계동 20층 신사옥 '내달 입주'


경기매일신문, 인천신문, 경기일보, 경기신문 등의 사옥은 경기·인천 언론의 상징 건물이기도 하다.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지난 17일과 22일, 두 차례에 걸쳐 언론계 원로들과 함께 그 현장을 돌아봤다.

대중일보의 뒤를 이은 경기매일신문 사옥은 인천시 중구 중앙동 4가 8의 33에 있다. 건축물관리대장을 보면 1971년 3월 24일 신축했고, 건물 구조는 '철근콘크리트조 스라브즙 7층'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건물 소유자는 송수안 발행인의 아들인 송영호였다. 경기매일신문은 경기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이 건물을 신축했다.

당시 경기매일 사진기자였던 이강희(76)씨는 "건물을 새로 지을 때 부평 미군기지에 있던 장비가 와서 (기존)건물을 철거해 주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건물을 신축할 당시 경기매일 직원들은 건너편(중구 중앙동4가 2의 7) 건물을 사용했다고 한다. 1층이 인쇄소, 2층이 사무실이었다. 현재는 식당과 노래방,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1960년 8월 창간한 인천신문 사옥터는 현재 스포츠센터 건물이 서 있다. 중구 사동 14였는데, 1969년 12월 사동 16의 1로 지번이 바뀌었다.

창간 당시 사옥 서측(부두 쪽)은 공터였고, 동측은 허름한 집들이 다닥다닥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인천신문은 2층 건물이었고, 1층은 인쇄실로 2층은 편집국 등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인천신문은 1968년 8월 경기연합일보로 이름을 바꾼 뒤 경영진이 교체됐고, 1969년 4월 경기도 수원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경기일보 사옥은 현재 중구 답동사거리 부근 새마을금고 건물이다. 당시 이 건물과 땅의 소유주는 국제실업으로, 이 회사는 1966년 창간된 경기일보의 자본주였다. 5층 건물 중 지하실에 윤전기가 있었다.

국제실업 회장실(1층), 국제실업 사무실(2~3층), 경기일보 편집·업무국(4층), 경기일보 사장·임원실(5층)로 사용됐다고 당시 경기일보 기자였던 김창수(75) 인천언론인클럽 부회장은 설명했다.

1973년 언론사 통폐합 당시 경기일보는 인천시 남구 인천기계공고 부근에 언론사 맞춤형 사옥을 신축 중이었다고 한다. 김창수 부회장은 "통합되면서 새 건물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1945~50년 대중일보 당시 인쇄소로 사용된 건물이 현재 내리교회 입구(인천시 중구 인현동 55)에 남아 있다고 이강희씨가 소개했다. 현재는 노래방이 들어서 있다.

이 건물은 1942년 이종윤씨가 신축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일제 때 선영사라는 인쇄소를 경영했던 이종윤은 대중일보 창간 당시 공무국장을 지낸 인물로, 경기매일신문에서 부사장을 역임했다. 이 인쇄소가 대중일보의 '산파'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70~80년대 경기신문 사옥은 수원시 팔달구 교동 136의 4에 자리잡았다. 경기신문은 2층 건물을 4층으로 증축했고, 인근 주택을 매입해 주차장으로 사용했다.

현재 지하 1층~지상 4층의 이 건물에는 미술학원, 음악학원, 한의원, 식당, 카페, 조선일보 수원지국 등이 입주해 있다.

다른 건물과 비교할 때 지하실 층고가 높은 편인데, 이는 윤전기 때문이었다. 1989년 인계동으로 사옥을 이전했다. 인계동 사옥은 흥화건설이 지었는데, 교동 사옥과 건축비용을 맞바꿨다고 한다.

이 인계동 사옥 자리에는 호텔을 겸한 지하 5층 지상 20층 건물이 새로 들어섰고, 경인일보는 다음달 이 빌딩에 입주한다.

1973년 출범한 경기신문 인천분사 사무실은 동양석유주식회사 건물 2층이었다. 현재 중구 선린동에 있는 중국요리집 본토 자리다. 이후 경기신문 인천분사는 동양석유 건물에서 수년간 운영된 뒤 현 인천일보 자리로 이전했다.

/김명래·민정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