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태생으로 음악에 우연적 요소를 도입한 '4분33초'(1952년)로 유럽음악계에 큰 영향을 끼친 케이지는 작곡가가 할 일이란 청중으로 하여금 자신이 사는 세계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예술과 삶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케이지는 작품을 통해 우리들의 삶 자체를 확인시켜야 한다는 당대 예술가로서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1951년 여름, 음렬음악의 대표주자인 불레즈는 다름슈타트 국제하기강습회에서 그 유명한 '쇤베르크는 죽었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강연을 한다. 제목에서 엿보이듯이 쇤베르크의 작곡사상과 단절을 공표하는 강연이었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으며, 불레즈의 강연이 시사하듯 1950년을 전후해선 음악의 모든 요소들을 규정한 음렬음악의 시대이다(하지만 작품의 결과물은 혼란스럽고 우연한 소리들의 집합으로 다가온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선 우연적 요소를 끌어들여 규정적이지 않은 음악을 만드는 '우연성음악'이 나타난다. 'Experimetal Music'을 저술한 니만은 케이지와 불레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케이지와 불레즈가 주고받았던 당시의 편지는 그들 사이의 일치(비록 일치는 바로 그 다음부터 완전한 통제와 통제의 포기로 갈라서긴 하지만)를 보여준다.'
우연성을 통해 개인적인 취향과 기억, 이전의 예술들로부터 자유로운 일관성을 음악 작품에 부여할 수 있다고 본 케이지와 과거의 잔재와 결별하고 '예술에 있어서 객관성의 극한'을 보여준 불레즈의 견해가 일치한다는 것이다.
음악에서 우연이라는 요소가 케이지에 의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바로크 시대에 바소 콘티누오(계속저음)나 즉흥연주, 고전주의 시기의 협주곡에 나타나는 카덴차 등에서 우연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케이지는 동양 문화에 민감한 LA 출신이다. 선불교와 주역에 영향을 받은 케이지는 1951년 우연성음악의 대표작 'Music of Changes'를 발표했다. 주역의 원리로 작곡된 이 작품에서 작곡가는 피아노의 음향 재료를 하나의 차트로 만들어 펼쳐놓고 세 개의 동전을 여섯 번 던져 템포, 음가, 강약, 소리 등을 결정했다. 'Music of Changes'는 피아노 음향의 재료들을 규정하는 수많은 가능성 중 또 다른 방편을 알려준 것이다.
음렬음악과 우연성음악은 펜데레츠키와 리게티의 음색음악(음향작곡)으로 파생된다. 음렬음악과 우연성 음악이 매개 변수에 대한 통제와 우연의 과정을 거쳐 한 음 한 음의 처리에 관심을 집중한 음악이었다면, 음색음악은 전체적인 효과에 관심을 집중한 음악이었다고 보면 된다. 즉 음색음악은 여러 음의 집단적 움직임에 집중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발전한 구체(具體)음악과 전자음악 등의 영향이 더해지면서 펜데레츠키와 리게티는 음향

수 개월전 이 글을 도입하면서 밝힌 '공포영화에서 만날 수 있는 소름 돋우는 효과음'도 두 작곡가의 다양한 작업에 기인한다.
다음 글에선 펜데레츠키와 리게티가 걸어간 '음악의 길들'을 탐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