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병호 국회의원
며칠 전, 모처럼 짬이 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봤다. 언론이 연일 극찬하고 1천만 관객을 넘어섰다기에, 나만 못보면 뭔가 뒤처지는 느낌이 들고, '얼마나 잘된 영화면 국민 넷 가운데 한 명이 봤을까?'하는 호기심도 발동해 지인과 함께 영화관을 찾았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아니면 내가 영화에 문외한이어서 그랬는지, 내 입장에서는 그저 '영화 관람료가 아깝지않을 정도'였다.

스토리가 탄탄한 것도 아니고, 불과 몇 장면에서 폭소를 자아낼 뿐, 배꼽을 잡고 웃을 정도의 코미디극은 더더욱 아니었다. 다만 1인2역을 소화한 배우 이병헌의 연기는 돋보였다.

며칠 뒤 우연히 뉴스를 보면서 내 짧은 영화평이 완전 엇나간 것은 아니라는 것이 확인했다. 최근 MBC는 관객 1천만명을 넘긴 영화 '광해…'를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상영관에 몰아줘서 거둔 성적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보도했다.

전국 700여개 상영관에서 개봉된 '광해…'는 10월 셋째 주말에는 상영관이 900개를 넘었다. 전국 영화관의 절반에 육박하는 스크린을 '광해…'가 독점하니 관객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언론은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확대 재생산을 반복했다. 그래서 나같은 사람도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영화관으로 가서 보게 만든다.

반면,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는 베니스영화제 최고상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세계인의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60만 관객도 못 채우고 조기 종영했다. 스크린을 못 구해서 관객에게 다가갈 기회를 충분히 잡지 못해서다.

'광해…' 1천만 돌파의 불편한 진실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속성상, 기업은 이익 극대화를 위해서 매진한다지만 근래 4~5년간의 대기업의 행태는 '개그콘서트'의 정여사 표현을 빌리자면 '해도 너~무 한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고래는 깊은 바다에서 놀아야 한다. 고래와 같은 대기업은 자동차산업·선박·반도체·생명공학 등 많은 자본과 기술이 필요하고 또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분야에 매진함이 옳다. 지금은 고래가 송사리나 피라미들이 사는 시냇물까지 내려와서 노는 형국이다.

80년대 우리가 국가권력에 의한 '독재'와 맞섰다면, 지금은 자본권력의 '횡포'와 맞서야 하는 형국이다. 이 자본권력은 국가권력까지도 좌지우지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될 수 있기에 우려가 점점 커진다.

이즈음 30년에 만들어진 헌법 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이 더욱 돋보이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모든 후보들이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까닭은 자본권력의 '횡포'에 '자유민주주의'까지 위협을 받고 있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바 크다.

이처럼 '광해…' 1천만 관객 돌파에는 대기업의 독점과 탐욕이 영화계, 나아가 문화계의 질서까지 왜곡시키는 불편한 진실이 놓여 있음이 새삼 안타깝다. 영화 '피에타'를 보지 않고 '광해…'의 관객이 되어 1천만 관객속에 포함된 내가 조금은 후회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