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그저 한마디씩 해야 하는 위치의 사람들이 그가 속한 단체에 맞는 단어들을 찾아 나열식으로 늘어 놓은 것은 아닐 것이고, 꼭 이루고 싶은 열망이 그 안에 담겨 있을 터지만 새해 의욕적인 출발과는 달리 연말 국민들의 평가는 냉담하다.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는 것이 기득권이지만, 이를 내려놓지 못하는 부류가 적지 않고, 리더 스스로 또는 그 측근들이 발목을 잡아 그 타령의 세월만 보내고 있다.
흑뱀띠 해인 계사년, 알을 많이 낳아 다산성·재물·풍요를 상징하며, 지난 허물을 모두 벗고 함께 상생하는 의미가 있다. 또한 하늘의 물기운과 땅의 불기운, 즉 하늘의 물이 땅의 불을 끄는 형국을 뜻하기도 한다. 올해 인천의 형국이 꼭 그렇다. 개항 130주년을 맞아 또 다른 형태의 발전된 개항을 준비하고 있다.
큰 그림을 그려 보면, 아시아 최초·최대 규모의 국제기구인 GCF 사무국을 유치, 인천의 격을 한 단계 끌어 올리면서 국제기구 도시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 인천을 하나로 묶을 동력인 아시안게임이 내년으로 다가와 있고, 특히 올해가 인천이라는 이름을 얻은 정명 600년이 되는 해로 '인천'명의 정체성을 찾는 의미있는 활동이 1년 기획을 시작한 경인일보를 필두로 정·관계, 학계, 문화계 등 각계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다양성과 재물·풍요를 약속하고, 도약을 위해 묵은 허물을 벗는 작업들이 하나하나 진행되는 등 성과물을 얻기 위한 기초작업이 시작되는 해가 올해라 할 수 있다. 하늘의 기운을 담은 생명수(水)가 메마른 땅을 촉촉히 젖게 하는 긍정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진행되고 있는 외형이 아무리 훌륭해도 이를 완성시키기 위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면 겉만 휘황찬란한 속 빈 강정으로 전락할 수 있다. 기득권을 내려놓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최근 인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 중 정치권의 한 사례를 보면 긍정이 부정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우를 낳게 하고 있다. 물론 인천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국적인 사안이지만 인천에서 추진되고 있는 엄청난 역사가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어 바로잡아야 한다.
정치권발 변하지 않는 구태인 외유다. 그들은 전문성 강화와 제도 개선 등 좋은 취지의 미사여구를 붙여 정당화하고 있다. 이를 매년 지켜보고 있는 이들은 답답한 마음에 대책을 요구하지만, 바뀌는 건 일부의 정치인뿐 그대로다.
선거철만 되면 유권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바른 투표가 변화를 이끄는 힘이라는 원론적인 홍보를 정당들이 앞다퉈 하지만 그 그룹에 속한 일부가 앞장서 언행불일치의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 변하지 않는 현실이다. 상생, 소통, 공존, 통합, 격차해소 등을 새해 벽두 신년사에 매년 반복해 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바뀌지 않으면 예약된 미래와 희망을 놓치게 된다.
"하늘과 땅 사이에 풀과 나무는 모두 하나의 기운이다. 그러나 그 뿌리·싹·꽃·열매들 사이에 혹은 수월하게 나고 맺히고 열리며, 혹은 더디게 나고 맺히고 열리는 등 어느 하나 똑같은 것은 없다. 그런데 밤나무는 어떤 식물보다도 더디다.
하지만 이것을 심어 자라게 하기는 어려워도 자라기만 하면 쉬 튼튼해지고, 잎이 매우 더디게 나오지만 나오기만 하면 쉬 그늘을 만들어주며, 꽃이 아주 늦게 피지만 쉬 왕성해지고, 열매가 마냥 늦게 맺히지만 맺히기만 하면 쉬 열매를 거둘 수 있다."
고려 후기 문인 백문보(白文寶)의 시문집 담암일집(淡庵逸集)에 담긴 명문이다. 더디 가도 옳게만 간다면 그 끝은 대기 만성으로, 원하는 일이 이뤄진다. 하지만 기득권을 잔뜩 움켜쥔 채 놓지 않으려는 형국이 지금 인천의 정치권이라면, 꽃 열매도 그늘도 만들 수 없다.